경남도 기념물 제139호, 고성 소을비포진성(所乙非浦鎭城)..
2020년 12월 11일, 2박3일의 사량도 섬여행을 마치고 고성 용암포로 나와 소을비포진성에 이른다.
포구의 주차장에는 캠핑카 3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차박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널따란 주차장과 그 옆의 공터, 깨끗한 화장실이 있어 차박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이다.
다만 화장실이 1칸 밖에 없어 아침에는 분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내린 잔잔한 포구, 여행 3일차는 고요한 소을비포진성이 있는 자란만에 머문다..
고성 소을비포진성(所乙非浦鎭城)은 조선시대 수군들이 전투를 위하여 해안 벽에 쌓은 성곽으로 경상남도기념물 제139호( 1994년7월4일)로 지정되었다.
소을비포성은 해안에 돌출한 구릉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8부 능선상에 해안 경사를 따라 타원으로 축조한 석축성이다. 조선 전기에 설치된 소을비포진이 있었던 곳이며 성곽 축조 및 개영 시기는 성종에서 선조 연간(年間)으로 추정된다.
현재 200m 정도는 주춧돌이 지상에 남아 있고 높이 3.3m, 길이 5m 정도는 원형의 성지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대형 바윗돌을 이용하여 담장식으로 쌓았으며 사이사이를 작은 돌로 채워 성돌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였다. 성벽의 석재 일부는 인근의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조선 전기의 성 축조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주변은 바다로 둘러싸여 천연 해자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좌이산과 사량진 봉수대가 가까이 있다.
세종30년(1448년)에 세종실록 권121 최초로 소을비포가 등장하며 당시 군함 제작에 쓰일 소나무 재배지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사량진이던 지명을 세조 1년(1455년)에 소을비포로 바꾸었다. 포(浦)를 수호하는 수군만호영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소을비포성은 현의 서쪽 47리에 있으며, 성종 22년(1491)에 쌓았다. 둘레는 835척(250m)이다. 소을비포성에는 조선시대에 규모가 작은 지역의 수장인 종9품 권관이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대동지지에 전한다.
군사를 불러 모으는 곳인 소모진을 선조 37년에 거제로 옮겼다가 선조 39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겼다. 이때 지명을 소비포에서 지금의 이름인 소을비포로 바꾸었고 내륙으로 깊게 들어간 항구의 동쪽 구릉 능선 끝자락에 소을비포성을 만들었다. 평면 형태는 반원형이며, 둘레 330m, 체성의 폭은 5~6m이다. 체성을 쌓은 방법은 조선시대 읍성의 쌓은 방법과 비슷하다. 문지 3곳과 치성, 성내에는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그중 공방의 흔적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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