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행]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주성 천년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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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기행]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주성 천년여행길..

by 정산 돌구름 2019. 11. 28.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성 홍주성 천년여행길..


 

2019년 11월 25일(월), 충남으로 떠난 4박5일 캠핑여행길에 찾은 홍성의 홍주성..

오서산 산행 후 홍성으로 이동하여 홍주성을 보고 인근 홍성온천에서 온천욕을 한다.

어둠이 내려 남당항으로 이동하여 셋째날 밤은 남당항에서 머부른다.

 

홍성(洪城)은 고려시대에 운주로 불린 이후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운주에서 홍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에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쳐 홍성이 되었다.

홍성에는 생가가 남아 있는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뿐 아니라 고려 말 명장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홍성 홍주성(洪州城)은 길이 약 1,772m의 성벽 가운데 약 800m의 석축 성벽이 남아 있다.

현재 동문인 조양문()과 서문·북문, 그리고 아문과 산성이 포함되어 있다.

처음 축조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조선초 지방행정구역의 개편으로 각 관읍의 읍성을 새로운 규식에 맞추어 수축하게 하였을

때 이 성도 1451년(문종 1년)에 새로 수축되었다.

이때에는 문이 4개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래는 3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구조상 남문이 없는 것은 특이하며 북문에는 문루가 없다.

그 때는 성 둘레 4,856척, 높이 11척이었으며, 성첩 608개, 적대 6개가 설치되었고, 성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 기록되어 있다.

이후 현종 때 한계수가 중수하였고, 1824년(순조 24년)에 진장 김계묵과 목사 이헌규가 수리하였다고 수리기적비에 전한다.

이후 1870년(고종 7년) 목사 한응필이 조양문·경의문·망화문·관영을 지었는데 이 중 조양문 현판은 대원군이 친필을 하사하였다.

현재의 조양문은 1975년 완전 해체, 복원된 것이다.
이 성은 1895년 동학농민운동 때 많은 동학교도가 처형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1905년의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안병찬 등이 이듬해 5월19일 1,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당시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6문의 화포로 공격하여 덕산으로 퇴각시키고 점령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1978년10월7일 이 지역에서 발생한 강도 5°의 지진으로 성곽의 일부가 붕괴되어 1979년부터 복원작업에 착수하여 1982년

부분적인 보수를 완료한 바 있다.

조양문은 홍주성의 문루 가운데에 가장 중심이 되는 문이며 유일하게 복원된 것으로 사적 제201호이다.

주문이 동문인 점은 대개 남문이 주문인 다른 성들에 견주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