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의 풍경이 아름다운 사적 제501호 보령 충청수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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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 풍경이 아름다운 사적 제501호 보령 충청수영성..

by 정산 돌구름 2019. 11. 28.

천수만의 풍경이 아름다운 사적 제501호 보령 충청수영성..


 

2019년 11월 24일(일), 충남으로 떠난 4박5일 캠핑여행길에 만난 보령 충청수영성을 걷는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충청수영성()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이다.

조선 중종 4년(1509년)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서해를 통해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하여 쌓았으며,

1896년(고종 33년)에 폐영되었다고 한다.

오천항()은 백제 때에는 중국·일본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로 알려졌다.

고려 때부터는 왜구가 자주 침범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군선()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 수영()을 설치하여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다.

충청수영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으로 자라()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에 4대 성문과 소서문(西)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 관덕정(), 대섭루(), 능허각

(), 고소대()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과 건물로는 진휼청(), 장교청(), 공해관

()이 보존되고 있다.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규모가 조선초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 142척에 수군 수()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다.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년 )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년)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서해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부 다섯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지휘부로써 충남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 요해처()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1973년12월2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 보령 오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8월24일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