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무등산 원효사(元曉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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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무등산 원효사(元曉寺)..

by 정산 돌구름 2020. 3. 1.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무등산 원효사(元曉寺)..


2020년 2월 29일(토), 무등산 등산길에 찾은 원효사..

무등산 북쪽 기슭 원효계곡에 자리한 원효사(元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산자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 원효당, 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고려 충숙왕 당시의 이름 있는 화엄종승()이 창건한 뒤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980년대 통일신라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기 때문에 고려시대 창건설화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의 역사는 입증할 길이 없으나 명종 때 문정(文定)왕후가 섭정하면서 불교가 진흥하자 사세가 다시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靈圭)대사가 수도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 증심사를 중창하였던 석경(釋經)이 직접 기와를 구워 중창하였다.

그 뒤 인조14년(1636년)에 신원(信元)이, 숙종 11년(1685년)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정조 13년(1789년)에는 회운(會雲)이, 순조 31년(1831년)과 헌종 13년(1847년)에는 내원(乃圓)이 각각 중수하였다.

육당 최남선이 1925년 봄에 국토순례할 때 원효사를 탐방하며 천년고찰 원효사의 모습을 심춘순례에 기혹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광주광역시의 무등산 개발에 힘입어 1954년부터 중창에 착수하였다.

이 때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웅전, 선원()과 요사() 등을 중건하였다.

19805월 대웅전 해체 복원 공사때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6고려시대 철불두상(鐵佛頭像)과 고려자기 토기불두(土器佛頭) 및 고려와 조선시대에 만든 기와 와당 도자기 등이 출토되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

이들 출토 유물 32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

절 주변에는 하대석과 옥개석편만 남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재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 3층 석탑,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會雲堂浮屠  원효사부도) 등이 산재해 있다.

원효봉 한 기슭에 있는 원효사 동부도(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7) 현존하는 부도중 조각기법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사면에 동물모양의 해학적 모습이 특이하다 

1980 법타스님이 대웅전, 요사채, 명부전을 신축 복원하였고, 1989년부터 현지스님이 성산각, 개산조당, 요사, 종각, 누각 등의 건물이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

~^^~ 

 

 

원효사 일주문..

 

 

원효사 입구 부도군..

부도는 총 6기로 가운데 탑은 1927년 절을 중수한 원담화상(圓潭和尙)의 탑이다.

 

 

석종형 부도 2기 중 1기는 원효국사부도탑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장방형석재를 지대석으로 하여 석종형 탑신을 받게 하였는데

현재의 지대석은 원래의 탑재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석종형 탑신 중앙에 “원효국사탑(元曉國師塔)”이란 탑호를 음각하였으며, 상륜부의 처리는 지극히 형식적이다.

회운당 부도와 함께 19세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보여지며, 지대석을 제외한 총고는 105㎝이다.

또 다른 1기는 회운당부도로 원효국사 부도탑과 함께 입구의 부도전에 위치한 석종형 부도이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장방형 지대석 위에 석종형 탑신을 받게 하였는데 이 지대석 역시 원래의 탑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탑신 중앙에 “회운당(會雲堂)”이란 당호가 음각되어 있다.

그런데 탑신부의 하단 직경이 상단에 비해 유난히 작아져 안정감을 잃었으며, 지극히 형식화된 상륜부의 처리수법과 함께

조선 말기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지대석을 제외한 총고는 95㎝이다.

회운대사는 1789년(정조 13)선방을 중창하였으며 1802년(순조2)에는 대웅전을 중창한 인물이다.

 

 

원효사 회암루(晦巖樓)..

 

 

 

 

회암루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건너편의 의상봉..

 

 

 

 

대웅전(大雄殿)..

1980년 법타스님이 신축복원한 정면 5, 측면3칸의 다포양식이며, 팔작지붕이.

 

 

 

대웅전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삼존불과 후불화로는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배부 벽화로는 사문유관상도(四門遊觀相圖)가 그려져 있고, 아미타후불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1983년 제작된 동종이 하나 있다..

 

 

석가모니불은 화려한 연꽃대좌에 결가부좌하여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을 하고 있다.

좌우보살은 화려한 천의에 연꽃을 쥐고 있다.

 

 

원효사 성산각(星山閣),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1994년 개축하였다..

 

 

안에는 산신탱. 칠성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앞에 조그만 석불좌상 16구가 자리하고 있다..

 

 

 

 

원효사 약사전..

 

 

 

 

개산조당과 성산전 사이에 자리한 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북향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 아난존자 등 삼존상과 시왕상, 판관, 녹사, 사자, 덩자, 목조지장입상,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은 정면 1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905월에 건축되었다.

 

 

원효사 창건주로 숭상되는 원효국의 진영은 세가지 형태로 모셔졌는데 각각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조성되어 있다..

 

 

1710년 추월산 만수사에서 조성되어졌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원효사에 소장되고 있는 광주 유형문화재 제15호인 원효사 소장 만수사 범종이 있다.

총고 86㎝․구경 63인데 용뉴부(龍鈕部)20, 종신부는 66인 범종이다.

용뉴는 각각 여의주을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용머리 위에도 불꽃에 휩싸인 1개의 여의주을 장식하였다.

용두의 표현이나 천판에 드리운 발의 조각기법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또한 소리를 내는 음관으로써 용동시설 대신 천판상부에 원형의 음공(직경 2)을 마련하였다.

종 위쪽 띠에는 범자(인도어) 문양 띠를 둘렀으며띠 아래에는 사각형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이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되었다.

유곽과 4구의 보살상 사이에 왕실의 안녕을 비는 글이 새겼다.

유곽 안에는 연꽃무늬의 바탕에 연봉오리 모양의 9개의 유두가 도드라지게 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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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범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