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 9일(제5일) - 1. 세비야 전성기 상징, 황금의 탑(Torre del O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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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유럽(스페인 포르투갈)

스페인-포르투갈 9일(제5일) - 1. 세비야 전성기 상징, 황금의 탑(Torre del Oro)

by 정산 돌구름 2019. 4. 7.

스페인-포르투갈 9일(제5일) - 1. 세비야 전성기 상징, 황금의 탑(Torre del Oro)


 

2019년 4월 2일, 5일차는 호텔에서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8시30분 호텔을 나선다.

먼저 과달키비르 강변에 있는 황금의 탑을 잠시 둘러보고 스페인 광장으로 향한다.

 

세비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매력적인 탑, 황금의 탑(Torre del Oro)

1220년 이슬람교도가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

강 건너편에 '은의 탑'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배를 막았다.

이곳에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난 것과 관련되어 현재 해양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은 처음 탑을 지을 당시 금 타일로 탑의 바깥을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황금의 탑(Torre del Oro)은 13세기 이곳을 지배하던 무어인들에 의해 알모아데(Almohad) 왕조 때에 세워졌으며, 세비야를 둘러

싸고 있는 도시 성벽의 일부이다.

열두 면으로 된 이 감시탑의 목적은 이 땅을 되찾아 자신들의 종교로 되돌리고자 했던 무어인의 적인 기독교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요새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이 탑은 과달키비르 강변 한쪽에 있는 항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의 다른 편에도 비슷한 탑이 세워졌으며, 두 개의 탑 사이에 쇠사슬을 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적의 침입으로부터 이 항구 도시를 지켰다.

맞은편에 있던 탑은 지금은 없다. 16세기가 되자, 토레 델 오로는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그 일부분이 파손되었다.

1755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더 큰 피해를 입어 엉망이 되었는데, 이 지진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으며,

스페인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1760년대에 들어 탑은 수리되었고 증축되었다.

탑 꼭대기에 빙 둘러 흉벽이 조성되어 전보다 한 채의 성과 같은 외관을 갖추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18세기와 19세기 두 차례에 걸쳐 이 탑은 개발업자들에 의해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두 번 다 여론의 반대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무사히 살아남았다.
토레 델 오로는 연한 색의 벽돌과 돌로 축조되었으며, 왜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이 탑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금박으로 덮여 있어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빛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이보다 후에 스페인 함선들이 신세계에서 황금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이 탑을 황금 저장소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어인들이 통치하던 시대 이후부터 토레 델 오로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감옥, 예배당, 화약 저장고, 그리고 항구의 관리 사무소가 들어섰던 적도 있다.

오늘날 이 탑에는 작은 해양 박물관이 있다.

 

★ 콜롬비아 커피의 도시, 세비야(Sevilla)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로 과달키비르강 어귀에서 87km 상류 연안에 있다.

로마시대에는 지방 중심지로 번창하고, 그 뒤 서(西)고트(5~8세기)·무어(8~13세기)의 지배를 받았고, 12세기에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모은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의 탑 등이 건조되었다.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에 속했고, 15세기 말에는 신대륙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아 에스파냐 최대의

성당과 대학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대형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디스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 뒤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보수적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대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한 하항()으로 셰리주()·과일·코르크·올리브유·광석 등을 수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업이 발달하였고, 그 밖에 담배·섬유·농기구·도자기 등 제조업이 활발하다.

한편 세비야는 화가 D.R.de S.벨라스케스의 출생지이며, 무리요가 활약한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풍()의 거리 모습과 건물, 성주간()의 그리스도교 전례()와 투우() 등 관광적 요소가 풍부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었다.

 

 

 

 

 

 

 

 

 

 

 

 

 

 

 

 

 

 

 

Voy A Quitarme El Anillo / Marise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