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 9일(제4일) - 4. 리스본의 중심지, 로시우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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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유럽(스페인 포르투갈)

스페인-포르투갈 9일(제4일) - 4. 리스본의 중심지, 로시우 광장

by 정산 돌구름 2019. 4. 7.

스페인-포르투갈 9일(제4일) - 4. 리스본의 중심지, 로시우 광장


 

2019년 4월 1일, 4일차는 이른 새벽에 호텔을 출발하는 바쁜 일정이다.

4시30분에 기상을 하여 5시에 호텔(HOTEL CARAZON DE FATAMA)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5시30분 호텔을 출발한다.

새벽의 어둠 속에 2시간 20여분을 달려 7시50분 유럽의 최서단인 까보다로까에 도착한다.

까보다로까를 보고 8시15분 출발, 1시간여를 달려 리스본 타호강 인근에 도착한다.

타호강 인근의 벨렘탑을 보고 인근 제로니모스 수도원에 이른다.

수도원 외관을 보고 다시 리스본 시가지로 향한다.

 

★ 리스본의 중심지, 로시우 광장(praça do Rossio, 호시우 광장)

정식 이름은 '동 페드로(Don Pedro) 광장'이지만 페드루 4세 광장(Praça de D. Pedro IV)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간단히 호시우라고도 한다.

광장 중앙에 솟아 있는 원기둥 정상에 동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있다.

동 페드로 4세는 독립 브라질의 첫번째 왕이다.
광장은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로 모든 공식행사가 열려왔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리스본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다양한 노선의 버스와 트램이 많아 교통이 편리하며 리스본 시민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 포르투갈어 Lisboa)은 리스보아현의 중심도시이자,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도시다.

고지대인 알투 지구와 중심부의 저지인 바이샤 지구로 나뉜다.

두 지구는 공공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으며, 북서로 뻗어 있는 시가지에는 12개 이상의 언덕이 있다.

1966년에 완성된 서유럽 최장의 현수교인 "4월25일 다리"는 처음으로 건너편 연안과 연결하여 지역 개발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현재 중심도로의 대부분은 1755년의 대지진 후 재상 조제 폼발 후작의 지휘로 부흥과 재개발이 적극 추진되어 정비된 것이다.

헤스타우라도르스(Restauradores) 광장에서 북서로 향해 폼발 후작 광장까지 뻗은 나비 90m, 길이 1.5km의 리베르다드 거리는

리스본의 중심가이며 1880년 개통하였다.

바이샤 지구는 문화·상업·행정·교통의 각 시설이 집중해 있는 곳으로 호시우 광장과 코메르시우 광장이 있다.

호시우 광장 동쪽의 구릉 위에 상 조르지 성이 솟아 있다.

영국과 역사적 관련이 많으며, 리베르다드 거리 북서쪽의 에드워드 7세 공원은 영국왕의 포르투갈 방문을 기념한 것이다.

서쪽 끝의 벨렝 지구에는 마누엘 양식의 벨렝 탑이 서 있고, 그 북동에는 16세기 마누엘 양식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다.

국립고미술관, 굴벤키안미술관, 해양박물관, 고고학·인류학박물관 등 문화시설도 많다.

리스본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우선 기원전 1200년경 영국의 콘월 지방을 왕래하던 페니키아인이 세운 항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당시 타구스 강(테주 강) 하구에 세워진 이 항구 도시는 페니키아어로 ‘안전한 항구’를 뜻하는 ‘알리스 웁보(Allis Ubbo)’라 이름

지어졌다고 추정되며, 여기서 리스본이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는 로마 이전의 타구스강의 이름인 리소(Lisso) 혹은 루카오(Lucio)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로마시대에는 올리시포(Olisipo) 혹은 그리스어로 올리시포나(Olissipona, Ολισσιπόνα)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고,

올리시포나는 이후 민중 라틴어에 정착했다.

제마제국 당시 카이사르에 연유하여 펠리키타스 율리아(Feilcitas Julia)라고 불렸다.

서고트족의 지배를 거쳐, 716년부터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었다.

1143년 카스티야왕국에서 독립한 포르투갈 국왕 아폰소1세는 북방 십자군의 지원을 얻어 1147년10월24일 리스본을 해방시켰다.

1249년 아폰소3세의 알가르베 정복에 의해 포르투갈 레콩키스타(Reconquista 헤콩키스타)가 완료되자 남부의 중요성이 높아져

13세기 중엽부터 리스본은 코임브라를 대신하여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었다.

그 이후 리스본은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계지로서 발전, 1383∼1385년 포르투갈 독립의 위기 때에는 리스본의

부르주아가 독립을 지키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리스본 시정은 24인의 길드 대표로 구성된 24인회에 의해 이루어졌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에 힘입어 번영하였다. 그때까지 상 조르즈 성에만 있던 국왕은 테주 강가에 왕궁을

세웠으며 이어서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 탑 등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건조물이 세워졌다.

1755년11월1일 낮 9시 40분, 포르투갈 서부 지역에 진도 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포르투갈 남서쪽으로 200km 떨어진 대서양 해저로 추정된다.

시가지 대부분이 폐허화되자 폼발 후작은 시가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하고 가옥의 배열도 이른바 폼발 양식으로 통일하여

리스본은 계몽사상을 구현한 근대도시로 변모하였다.

 

 

 

 

 

 

 

 

 

 

 

 

 

 

 

 

 

 

 

 

 

 

 

 

 

 

 

 

 

 

 

 

 

 

 

 

 

 

 

 

 

 

 

 

 

 

  Rosas & Promessa / Katia Guerrei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