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탐방, 진안 마이산(광대봉~봉두봉~암마이봉)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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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9

100대 명산 탐방, 진안 마이산(광대봉~봉두봉~암마이봉)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9. 4. 17.

 

100대 명산 탐방, 진안 마이산(광대봉~봉두봉~암마이봉) 산행


화창한 날씨의 화요일 아침, 각화동 농산물시장 앞에서 광주명산트레킹클럽산악회와 합류한다.

8시25, 각화동 농산물시장을 출발한 버스는 광주-대구간 고속도로에 들어서 강천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남원JC에서 순천-왕주간고속도로를 타고 임실IC를 빠져나와 17번국도와 49지방도를 달려 산행 들머리인 강정리에 도착한다.

10시10, 강정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가파르게 올라 합미산성에 올라선다.

주능선을 타고 광대봉에 올라서는데 맑고 더위까지 느껴지는 날씨에 땀이 솟아난다.

광대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멀리 마이산까지 펼쳐지고 다시 가파른 암벽을 타고 내려서 능선을 이어간다.

오르내리는 암릉을 따라 탕금봉에 올라서고 다시 오르내림은 계속되어 고금당을 거쳐 비룡대에 올라선다.

비룡대 아래 그늘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봉두봉에 올라선다.

건너편의 헬기장이 봉두봉 정상이었는데 지금은 2쉼터가 있는 능선봉이 봉두봉이라고 한다.

헬기장에 있던 봉두봉 정상석은 산산조각이 나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 암마이봉 암벽에 서면 암벽을 우회하여 암마이봉에 오르는 길이 새롭게 나있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암마이봉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 전북이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마이봉에서 은수사로 내려서 탑사를 보고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탑사에서 저수지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는 길은 벚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픙경을 자아낸다.

암릉을 따라 걷는 힘든 산길이었지만 미세먼지 없는 맑고 포근한 날씨에 벚꽃이 만개하여 눈이 호강한 하루였다.

 

○ 산행일자 : 2019년 4월 16일(화)

○ 기상상황 : 맑은 후 흐림(오전에는 맑은 날씨였지만 오후에는 점차 구름이 많아짐 12~23℃)

○ 산행팀원 : 광주명산트레킹클럽 45명 - 회비 25,000원

○ 산행코스 : 강정리~합미산성~광대봉~탕금봉~비룡대~봉두봉~암마이봉~은수사~탑사~탑영제~남부주차장(전북 진안)

○ 산행거리 및 시간 : 13.08Km(트랭글GPS), 6시간5분 소요

강정리(10:10)~합미산성(10:25)~495봉(10:45)~광대봉(11:15~20)~탕금봉(12:10)~고금당(12:25~30)~비룡대(13:00~05)~점심(13:10~35)~탑영제 갈림길(13:45)~호남정맥 갈림길(13:53)~봉두봉(14:00)~헬기장(14:10)~암마이봉 갈림길(14:15)~암마이봉삼거리(14:40)~암마이봉(14:55~15:10)~갈림길(15:20)~북부주차장갈림길(15:25)~은수사(15:30~35)~탑사(15:40~45)~탑영제(16:05)~금당사(16:10)~남부주차장(16:15)

○ 주요봉우리 : 마이산(암마이봉 687.3m, 숫마이봉 681.1m), 광대봉(608.8m), 봉두봉(540m), 탕금봉(528m)

○ 교통상황

- 각화동(08:25)~호남고속~광주-대구고속~강천산휴게소(08:50~09:10)~순천-완주고속~임실IC~17번~49번~강정리(10:05)

- 남부주차장(17:30)~뒤풀이(17:35~18;45)~49번~17번~임실IC~순천-완주고속~광주-대구고속~각화동(20:20)

○ 산행지 소개

전북 진안군 진압읍에 있는 마이산(馬耳山 해발 687.3m)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에 있는 산이다.

영취산에서 장안산, 마이산을 거쳐 완주 주화산까지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63.3km)을 경계로 남쪽은 섬진강, 북쪽은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진안에 이르러 북쪽 금남정맥과 남쪽 호남정맥으로 나누어진다.

전북 진안은 호남의 지붕이라고 불릴 만큼 평균 해발이 290m인 고원지대이며, 이 고원지대의 상징이 마이산이다.

마이산은 687.3m인 암마이봉과 681.1m인 숫마이봉이 마치 말귀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은 장수군 원수분 마을의 신무산 북쪽 뜬봉샘에서,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봉 원산암 뒤 천상데미 기슭 데미샘에 발원한다.

마이산은 산 전체가 지방기념물 제66호로, 그리고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탑사는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령 방면 합미산성 일원까지 포함하여 1979년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10월 명승지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은 가까이서 보면 곳곳에 크고작은 구멍들이 벌집같이 뚫려있고 산덩어리 전체가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수성암으로 형성되어 있다.

아주 옛날 이 지역은 호수였는데, 그 증거로 바위에서 쏘가리 형태의 민물고기 화석과 고동, 조개화석 등이 발견되어 암질이 담수성 역암으로 판명됐고, 지각변동에 의해 바닥이 솟아 봉우리가 된 것이다.

내부에서 표면으로 진행한 풍화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타포니(Tafoni) 지형이라고도 한다.

마이산은 신라 때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 조선초에는 속금산이라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부터 마이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마이산은 음과 양을 갖춘 부부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안읍내 어느 방면에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은 이름이 철에 따라서 네 가지이다.

봄에는 멀리서 마이산을 바라보면 안개가 끼어 마치 호수 같고 봉우리가 구름위로 떠올라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오를듯한 기상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바위산에 조금씩 자라는 초목이 단풍을 이루니 가을을 만끽할 수 있고 바위등선에 나무들이 줄서있어 말의 목등에 난 털과 같아 말목과 흡사하다 하여 마이봉이라고 부른다. 

또, 겨울에 눈이 내리면 정상에는 눈이 없어 꼭 먹물 묻은 붓 두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하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마이산에는 조선태조 이성계가 임실군 성수산에서 돌아가다가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가 있고,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80여개의 돌탑을 거느린 탑사 등이 있다.

입구 3km 진입로에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경에 남부주차장 입구에서 진안군 주관으로 벚꽃축제가 열려 축제 한마당이 되고 있다.

마이산 벚꽃은 해발 400m에 위치해 있어 전국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피는 곳 중에 한 곳이다.

보통 마이산 벚꽃은 진해보다 20일, 서울보다 7일정도 늦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3㎞의 벚꽃길은 만개시에는 장관을 이룬다.

광대봉(609m)은 아래에서 바라다보면 마치 탈을 쓴 광대와 같다하여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금남호남정맥의 굽어진 능선의 좌측에 살짝 비껴서 아름다운 마이산과 벗한 채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마이산을 기점으로 발달된 암봉들이 이곳까지 이어져 높이에 비해 깊은 계곡을 가지고있는 수려한 산이다.

명승 제12호인 마이산은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섬진강과 금강의 발원지이고 도림공원으로 지정된 점, 탑사와 금당사가 유명한 점 등을 감안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어 있다.

또한,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00산’중 13위(1년간 접속통계)로써 벚꽃 산행지와 탑사 나들이로 4월 중순에 가장 많이 찾는다.

블랙야크 선정 100대 명산에도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산행 초입지인 강정리 도로..

 

 

쌍벽루(雙碧樓)는 큰 바위 위에 세워진 일제강점기의 누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건물이다.

또 건물 중앙에 설송 최규상이 쓴 편액이 있다.

 

 

서쪽 암벽에 ‘강정대()’, ‘도은선생장구지대() 규암선생고반지대()’ 등이 새겨져 있다.

글자는 정자를 건립한 전영선이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내용은 도은 전문식()의 장구 지대인 것과

규암 전계종의 고반 지대였음을 기록한 것이다.

이 암각서는 1942년 이 고장의 명필인 박소산에게 부탁해 새겼던 것으로 전한다.

 

 

인근 쌍벽루를 둘러보고 잠시 오르면 묘역에 설치된 이정표로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본다..

 

 

능선에는 아직도 진달래가 곱게 물들어 있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합미산성을 지난다.

합미산성은 마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의 석성으로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611m이다.

성벽은 지대가 낮은 서쪽은 편축, 나머지 쪽은 협축하였으며 높이는 약 4~5m이다.

합미산성은 동서, 남북의 사통 팔달한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본래 마령은 백제 마돌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였고, 마돌현의 치소성의 배후 산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495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광대봉 우회길이 있는 갈림길에서 가파르게 올라선다..

 

 

광대봉 바로 앞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광대봉에서 바라본 풍경, 가야할 암마이봉과 그 뒤로 숫마이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옆으로는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 능선도 선명하다..

 

 

광대봉과 마이산을 담아본다..

 

 

삼각점(임실 204)이 있다..

 

 

마이봉을 배경으로 한 컷..

 

 

광대봉(608.8m)은 아래에서 바라다보면 마치 탈을 쓴 광대와 같다하여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님과 함께..

 

 

당겨본 암마이봉..

 

 

광대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위험스럽게 내려선다..

 

 

보흥사 갈림길에서 고금당 방향으로 내려선다..

 

 

능선에는 아름다운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다..

 

 

암릉을 따라 능선봉에서 바라보면 우뚝 솟은 광대봉이 웅장하다..

 

 

마이산으로 이어지는 가야할 능선..

 

 

건너편의 555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바라보인다..

 

 

가야할 능선..

 

 

오르내리는 암릉이지만 점점 다가오는 암마이봉..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선다..

 

 

탕금봉을 우회하여 돌아와 바로 탕금봉에 오르기로 한다..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선 탕금봉..

 

 

탕금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과 555m봉..

 

 

암마이봉과 탑영제, 그리고 벚꽃이 만개한 남부주차장이 바라보인다..

 

 

암마이봉과 탑영제..

 

 

탕금봉에서 암마이봉을 배경으로..

 

 

 

 

더시 올라온 길로 내려서 능선을 따라가면 탑사 갈림길..

 

 

고금당 우회길을 버리고 올라선 고금당산..

 

 

다시 고금당으로 내려선다..

 

 

고금당에서 바라본 나봉암 비룡대와 암마이봉.. 

 

 

나옹암은 금당사로부터 500여m 떨어진 수직 절벽 위에 위치한 토굴로 고승 나옹선사가 득도(得道)한 곳이다.

이곳은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암(懶翁庵)이라고 한다.

원래 금당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일명 고금당(古金塘)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금당사는 임진왜란 이후 옮겨 지은 사찰이며, 본래의 금당사 즉 옛 금당사는 나옹암의 자리이다..

 

 

금당사는 2002년부터 이 토굴위에 나옹암을 복원하면서 3층 탑 모양의 암자를 짓기 시작했다.

1층에는 요사채가 들어섰고 2층에는 황영조 선수의 이름을 딴 `영조방'이, 그리고 3층에는 기도법당이 꾸며졌다..

 

 

나옹선사가 득도하였다는 나옹암 천상굴..

 

 

나옹(懶翁 1320-1376)은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법명은 혜근(彗)이며, 속명은 아원혜(元惠)이다.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간 인도승 지공화상으로부터 법을 받아 1358년 귀국하여 고려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1371년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보우, 무학등 높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토굴가 등 많은 시와 가사를 남기고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고금당에서 올라섰다가 내려서면 갈림길..

 

 

비룡대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선다..

 

 

나봉암 정상의 비룡대...

 

 

북쪽으로는 연분홍빛의 꽃잔디동산, 그리고 부귀산 능선..

 

 

비룡대에서 바라본 암마이봉과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삿갓봉 능선..

 

 

당겨본 암마이봉, 그 뒤로 숫마이봉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룡대에서.,

 

 

바룡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과 고금당..

 

 

익산-포항고속도로와 진안농공단지..

 

 

비룡대 아래의 나봉암 정상석..

 

 

나봉암을 내려서 그늘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다..

 

 

개구리바위를 지나고..

 

 

탑영제 갈림길을 지난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금남호남정맥 갈림길에 이른다..

 

 

갈림길의 진또배기..

 

 

봉두봉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비룡대와 고금당..

 

 

봉두봉인 제2쉼터.. 

 

 

거대한 암마이봉이 다가온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비룡대와 고금당, 그리고 멀리 광대봉까지 바라보인다..

 

 

탑영제와 남부주차장..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헬기장, 예전에는 이곳에 봉두봉 정상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박살이 조각만이 나뒹굴고 있다..

 

 

암마이봉 갈림길에서 암마이봉으로 향한다..

 

 

거대한 암마이봉 암벽을 우회하고..

 

 

아름다운 현호색...

 

 

길게 내려섰다가 오르면 갈림길 삼거리..

 

 

계단을 따라 암마이봉으로 오른다.

마이산은 2004년 10월, 훼손된 식생을 복원하기 위해 2014년10월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갔다. 

암마이봉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연차적으로 3년여에 걸쳐 5억7,000만원의 사업비로 훼손된 식생을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되도록 복원사업을 실시했다.

2012년부터 2014년 10월까지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비 총14억 4,000만으로 암마이봉 등산로 6개구간 시설물 설치와

천황문, 화엄굴 주변을 정비해 안전 및 편의시설을 갖춰 2014년10월11일 제한적 개방으로 하루 100여명씩이 다녀갔다..

 

 

건너편의 숫마이봉..

 

 

그 오묘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말의 귀를 닮은 두 봉우리 중 암마이봉에 올라선다..

 

 

마이산은 1979년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10월 명승지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정상에서 바라본 북주주차장과 진안읍 시가지..

 

 

 

 

 

 

탑영제와 남부주차장..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숫마이봉 화엄굴(華嚴窟)..

마이산의 중턱 천황문에서 수마이봉 쪽으로 100m가량 올라간 곳에 암벽의 침식 활동으로 형성된 자연 동굴이다.

이 화엄굴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흘러나오며,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약수를 마시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화엄굴은 숫마이봉 복부에 해당하는 지점에 뚫려 있는 굴로 입구는 높이 약 15~17m, 폭 약 4~5m 정도이다.

동굴의 안쪽은 깊지 않으나 막다른 곳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옛날에는 신비의 약수라고도 하여 마시기도 했다.

굴 안은 서늘하고 V자를 거꾸로 세운 듯한 천장에는 길쭉한 천장돌이 박혀 있다.

예전에는 촛불을 밝힐 수 있는 촛대가 있어 치성을 드리는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다시 내려선 갈림길에서 은수사로 향한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인 천황문에 내려선다..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는 이 능선은 금강과 선진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긴 계단을 내려서면 은수사 입구..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인 은수사(銀水寺)는 누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사찰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태조 이성계와 관련지어져 있다.

사찰의 이름은 상원사, 정명암 등 여러가지 명칭이 전해지며 은수사라는 사찰명은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물이 은()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전해지지만 이것도 분명하지 않다..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들어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 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 (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라 한다.

돌배나무들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청실배나무, 개량배에 밀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청실배나무는 태조 이성계가 배를 먹고 뱉은 씨앗이 자라서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이성계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마친 뒤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 씨앗이 싹이 터 이 나무로 자라났다고도 한다..

청실배나무 아래 약수터에는 정화수를 떠놓은 스탠그릇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으면 겨울에는 정화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어붙는 역()고드름이 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마이산 계곡이 협곡이라 바람이 솟구치면서 일어나는 마이산의 진풍경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제386호(1997년12월30일)로 지정된 은수사 청실배나무..

일명 아그배 또는 독배라고도 하며, 아랫쪽에 높이 50㎝ 내외의 원형 석축단이 있고, 윗부분은 1m 너비의 시멘트로 덮여 있다..

 

 

산신각 옆의 아름다운 소나무..

 

 

이성계와 은수사..

은수사(銀水寺)란 이름은 조선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이 지역민들은 은수사를 중심으로 태조의 업적과 명산 기도에 얽힌 전설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마이산제와 몽금척(夢金尺)을

시연한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그리고 은수사..

 

 

은수사에서 다시 내려서면 마이산 탑사에 이른다..

 

 

마이산석탑은 1885년 이갑용(李甲用)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을 생식하며 수도하다가 1900년 무렵부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갑용처사는 1920년대 초에 초가 암자를 지어 돌미륵불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목조함석지붕의

인법당과 산신각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당시에는 절 이름도 없었으나 그가 평생 동안 만불탑을 축성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탑사(塔寺)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갑용처사는 1957년에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동안 108기의 탑을 완성시켰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이 탑들은 ‘마이산탑(馬耳山塔)’이라는 이름으로 전라북도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과 측면 각 3칸이고 오른쪽 옆으로 1칸을 덧붙였으며,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원래는 함석지붕의 목조건물이 인법당 겸 불당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수년전 대웅전으로 수리하여 그 면모를 갖췄다..

 

 

내부의 수미단 위에는 석가삼존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중앙의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로서 왼쪽에는 육환장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보관에 화불이 있으나 지물을 들고 있지 않는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상의 뒤쪽에는 후불탱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는 칠성탱과 신중탱이 배치되어 있다.

칠성탱의 화기에는 ‘탑사 중창불사 1988. 5. 18’이라 하여 1988년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신중탱은 화기에 의해 불기 2520년(1976년)에 주지 원암(圓庵)과 왕선(旺善)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탑사의 탑들은 전체적으로 원추형과 기둥 모양의 탑들은 자연석을 아무런 장치나 이음새 없이 쌓은 것이면서도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천지탑·오방탑·월광탑·일광탑·약사탑·중앙탑·월궁탑·용궁탑·신장탑 등으로 명하였는데 각각 나름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천지탑은 가장 중심되는 탑으로서 말 그대로 천지를 상징하여 음양으로 나뉘어지는데 바라보는 왼쪽이 음, 오른쪽이 양이다.

높이로는 아래가 음이고 위가 양이 되어 음양순으로 올라가는데 서로 흡인력이 생겨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한다.

또한 천지탑 앞에 있는 오방탑은 오행을 상징하며 천지탑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천지탑 주위에 일렬로 세워진 32기의 탑들은 신장탑인데 천지탑을 보호하는 신장 역할을 한다.

그 밖에 대웅전 바로 아래에 있는 탑이 용궁탑이고 그 앞에 중앙탑이 있다.

중앙탑은 일렬로 선 탑 한가운데 있으며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기는 하지만 무너지지는 않아서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결국 이 탑들은 우주 원리와 음약오행설에 바탕을 두어 진법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천지탑(天地塔)은 기단부에서는 한 몸통으로 축조되어 올라가다가 탑 1/2쯤 지점에서 남북으로 나뉘어 두 개의 탑으로 쌓여졌다.

탑의 상륜부는 편편한 돌을 뾰족하게 쌓아올린 첨두원추형 석탑으로 높이가 13.5m에 이른다.

이 탑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막돌허튼층쌓기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설계가 정확하고 결구가 치밀하며 웅장하고 보기에도 튼튼하고 우람하게 하늘높이 솟구쳐 있다.

이 탑은 방위가 매우 특이하게 정북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15도 가량 기울어진 방향으로 수직으로 축조되어 있다.

이렇게 15도 가량 남쪽으로 트여있어 수평으로 탑을 배열하여 이 방향으로 들어오는 살기를 막자고 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웅전 뒤편의 산신각(山神閣)은 정면 1칸, 측면 1칸에 풍판을 달고 있으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자연석 기단에 원형주춧돌과 원형기둥을 하고 있으며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산신각은 대웅전 동쪽에 있으며 지형이 좁아 겨우 안치되어 있는 건물로 편액에는 ‘산신각’이라 써 있고, 주련은 없다.

수미단 위에는 산신상과 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탑사를 둘러보고 내려선다..

 

 

활짝 핀 벚꽃..

 

 

1994년 진안군에서 세운 부부시비(夫婦 詩碑)와 명려각(明麗閣)..

1769년(영조 45년) 10월13일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인 남원부 유천마을(서봉방)에서 태어나 1786년 혼인한 부부(夫婦)시인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砬)과 삼의당(三宜堂) 김해 김(金)씨를 기리기 위하여 부부시비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마이산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으로 되어 있듯이, 밝을 명(明)자도 양의 일(日)과 음의 월(月)로 된 글자인 明으로 하고,

삼의당 김씨의 시(詩) 작품 내용이 참으로 곱고 아름다워 고을 려(麗)자로 하여 명려당(明麗閣)으로 하였다 한다.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砬)은 세종년간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삼의당(三宜堂) 김(金)씨는 성종년간에 사관(史官)을 지낸 김일손의 후손이다.

시비(詩碑) 아래 부분에 두 夫婦가 주고받은 詩 한 귀절을 새겨두었다.

담락당 하립이 삼의당을 위해 지은 시는,

서로 만나다 보니 달나라의 선녀이구려 전생의 인연으로 분명 이 밤 가져온 걸 속세의 중매란 분분할 뿐 우린 천정의 배필이여..

삼의당의 화답 시는,

신랑과 선녀, 한 날 한 시 한마을에 나서 다시 화촉의 인연을 맞았거늘 어찌 다 이 밤의 기쁨이 한낱 우연이리오.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는 우리 역사상, 여성으로서 가장 많은 257편이나 되는 詩文을 남긴 삼의당 김씨이다..

 

 

탑영제에서 바라본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금당사(金塘寺) 금당사(金堂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년)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년)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년) 중국 승려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 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승 혜근(惠勤)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지장전, 삼성각, 대방(大房) 등이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금당사 대웅전 목불좌상..

높이 1.69m로 대웅전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 중 본존불만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경내를 나선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122호인 금당사석탑..

금당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가지역의 벚꽃..

 

 

금당사 일주문을 지나면 대형주차장이다..

 

 

후미가 내려오는데는 예상시간보다 1시간이 늦은 17시30분이 되어서였다.

1시간 이상을 기다리다가 5분여를 차로 달려 입구 주차장에서 뒤풀이를 한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좋은 하루였다..

 

 사랑앓이/조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