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제75호, 영월 한반도지형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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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제75호, 영월 한반도지형을 가다..

by 정산 돌구름 2018. 8. 14.


명승 제75호, 영월 한반도지형을 가다..


 

2018년 8월 11일, 캠핑카 여행길에 찾은 명승 제75호, 한반도지형에 가다..

한반도지형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주차장에 차를 두고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소나무숲길을 걷는다.

약 800m 가량을 걸어서 오르면 전망대가 있고 10m 아래에 또다른 전망대가 있다.

한반도지형을 보고 서강길을 따라 내려선다.


명승 제75, 영월 한반도지형..

영월 한반도지형은 명승 제75(2011610)로 지정되었다.

평창에서 영월로 흘러오는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수되어 서강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명승이다.

강원도 영월의 서강(西江)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지형이 한반도의 모습과 닮아 한반도지형이라 부른다.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류하여 서강을 이루는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평창강 끝머리에 형성되어 있다.

영월군 한반도면의 옛 명칭은 서면이었으나 이곳 지형으로 인하여 2009년 서면에서 한반도면으로 행정구역명이 변경되었다.

한반도지형을 휘돌아 흐르는 평창강 너머에는 선암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감입곡류의 차별침식과 퇴적에 의하여 생성된 지형으로, 공격사면과 활주사면을 관찰할 수 있다.

감입곡류란 산지의 깊은 골짜기를 구불구불 휘감아 흐르는 하천으로 하천지반이 융기하여 하방 침식작용이 강화될 때 형성된다.

여기서 공격사면은 하천에 의하여 침식을 받는 쪽의 경사면으로 가파른 절벽을 이루는 부분, 활주사면은 하천에 의하여 퇴적이

이루어지는 완만한 경사면으로 모래·자갈 등의 퇴적물이 쌓이는 부분을 말한다.

한반도지형의 기반 암석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54,000만년전~45,000만년전)에 퇴적된 석회질 퇴적물의

암석화 작용으로 형성된 석회암이다.

여러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이 석회암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한 후 용해되면서 기복이 심한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졌고,

이 지형이 하천(평창강)의 침식작용을 받아 한반도의 모습과 흡사한 현재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카르스트 지형과 감입곡류는 한반도지형뿐 아니라 한반도면 일대에 잘 발달되어 있다.

한반도지형과 주변의 옹정리·신천리 일대에는 하천습지인 한반도 습지(2772,000)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수달·

돌상어·묵납자루 등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비롯하여 약 87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반도습지는 20121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고, 20155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바 있다.

자연과학 학습장이자 생태적 보전가치가 큰 습지인 동시에 계절마다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명승지이다.

석회암으로 구성된 바위절벽에는 돌단풍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강물 속에는 쉬리, 어름치, 민물조개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백로, 비오리, 원앙 등의 조류와 수달

등과 같은 희귀동물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오간재 전망대는 한반도지형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으로서 이곳에서 바라보면 지형의 모습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

한반도지형은 임시 다리인 섶다리를 건너서 진입할 수 있는데, 큰물이 나서 섶다리가 떠내려가면 옛 교통수단인 줄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선암마을에는 선암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역말이기도 했다.













































태백으로 넘어가는 만항재에서.

만항재(晩項峙)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태백시가 만나는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남한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줄기가 태백산(1,567m)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다.

태백과 정선을 잇는 두문동재에 터널이 뚫려 시간이 단축되면서 길고 험한 만항재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물다.

만항재 아래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 마을이 있다. 고개 중턱에는 만항소공원이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