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기행]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진 칠갑산 장곡사(長谷寺)..
2018년 8월 6일,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장곡리 15)에 있는 장곡사를 찾았다.
장곡사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에 포함되어 있다.
장곡사(長谷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칠갑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장곡사지(寺誌)에 의하면,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창건 후 여러 차례 중건·보수되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의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777년(정조 1년)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1866년(고종 3년)과 1906년, 1960년 등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인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고, 대웅전이 두 개인 사찰로도 유명하다. 경사진 지형에
들어선 사찰은 위쪽에 상대웅전, 아래쪽에 하대웅전을 배치하였는데,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대웅전이 두 개가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경사지 위와 아래에 거의 일직선상으로 배치되고, 하대웅전 왼쪽에 있는 70여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상대웅전에 이르게 된다.
건물이 자리 잡은 방향은 각각 동남향과 서남향으로 서로 다르며 석가여래를 모시는 일반적인 대웅전과 달리 상대웅전에는
약사여래와 비로자나불,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보물 제162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된 상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 건축이나 도중의 여러 번의 개수로 형식상의
많은 변형을 가져왔다.
공포는 공간포와 호형 첨차 등을 갖는 다포집계의 수법을 따르고 있으나 평방없이 창방만 갖는 주심포의 특징도 혼용되고 있다.
양측 박공면에 사용된 대들보 모양이나 기둥 위의 주두에 굽받침을 준 것 등은 고려시대의 오래된 형식을 보이는 부분이다.
바닥에 마루 대신 전돌(흙으로 구워낸 벽돌)을 깔았다는 점이 특이한데, 전돌 중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팔엽
연꽃무늬 전돌도 포함되어 있다.
건물내에는 국보 제58호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보물 제174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등이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181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된 하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소규모의 다포계 단층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좁은 터에 가파르게 쌓은 2중 잡석 기단위에 서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창호는 정면 어칸에 4짝격자살분합문, 좌우 협칸에 2짝격자살분합문으로 구성하였다.
안팎 2출목의 공포를 4면에 돌려 가면서 짜 올려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 수리할 때 추녀 부재가 놓여 있었던 점으로
보아 원래 팔작집이던 것을 후에 맞배집으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기둥은 4모기둥과 원기둥이 섞여 있다.
외부 공포의 쇠서가 하향곡선을 그리며 밑으로 뻗어 있는 점, 내부 공포의 살미를 교두형으로 만든 점 등에서 조선 중기 이전의
기법을 볼 수 있다. 당초를 초각한 보아지나 화반에서도 견실한 멋이 풍긴다.
후불벽을 가설하지 않은 채 벽에 기대어 후불탱을 걸고 불단 위에 금동약사불좌상을 봉안하였으며 천정에 소규모의 감입천정을
구성한 것이 주목된다. 천정은 소란반자를 대들보 상면에 가설하여 전체를 평천정으로 만들었다.
대들보 위에 팔작집 경우처럼 충량을 걸쳤는데 반자 속에 감추어지게 처리하였으며 천정 내부의 구조는 밑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아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엽에 지어진 건물로 생각된다.
상대웅전 영역에는 응진전, 삼성각, 염화실 등의 건물이,
하대웅전 영역에는 운학루, 범종루, 설선당, 봉향각, 심검당, 지장전, 금당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장곡사에는 국보 2점, 보물 4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보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17세기에 제작된 불화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국보 제300호)’이 있다.
보물로는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과 ‘장곡사 하대웅전(보물 제181호)’을 비롯, 고려시대 유물인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와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이 있다.
‘철조약사여래좌상 석조대좌’와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석조대좌’는 상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은 하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장곡사 설선당(說禪堂)은 충남도유형문화재 제151호(1997년12월23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하대웅전 왼쪽에 있다.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으며, 정면 4칸으로 기둥이나 창방을 보면 정면 3칸으로 보이지만 원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一자형 건물로 추정한다.
후에 왼쪽 끝에 부엌을 확장하면서 뒷면으로 3칸의 승방을 덧붙여 현재의 ㄱ자집 형태로 변경된 듯하다.
앞면에 편액 ‘說禪堂’이 걸려 있어 선실(禪室)인 동시에 승방임을 알 수 있다.
북측 3칸은 기둥, 창방(昌枋 대청 위 장여 밑에 대는 넓적한 도리), 도리(道里 보에 직각으로 걸어 처마지붕을 꾸미는 가로대),
공포(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추어 댄 나무부재)가 정교하게 꾸며졌다.
남측 2칸은 보수 또는 개축한 것이다. 가구(架構)는 1고주(高柱) 6량집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을 이룬다.
건축양식은 주심포집 계통으로, 공포의 짜임은 헛첨차 없이 주두와 엇물려 바깥으로 2출목을 두었는데, 밖으로 나온 쇠서(전각의
기둥 위에덧붙이는 소의 혀 모양의 장식)의 곡선이 마치 다포식 초기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장곡사 철불좌상(鐵佛坐像)은 장곡사 상대웅전에 있는 철조약사불좌상으로 국보 58호이다.
정교한 석조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크기로 보아서 원래 이 불상의 대좌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불상에는 호분이 발라있으나 동그란 불안(佛顏)에 작고 아담한 불신(佛身), 우견편단식으로 입은 대의(大衣)의 주름이
발아래에서 부채꼴로 접히는 여래상 형식에서 통일신라 9세기 이래 유행하였던 불상유형이 고려시대 초기에도 지속되어 더욱
양식화가 진전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불상의 뒷면에 있는 목조주형광배는 후보된 것이다.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遮那佛坐像) 및 석조대좌는 보물 제174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되었다. 철조 및 화강석으로 전체 높이 2.26m, 불상 높이 61cm이다.
나발의 머리에는 작은 육계가 거의 구별할 수 없도록 되었으며, 그 아래 이마는 매우 좁지만 턱으로 내려올수록 가늘어져 삼각형의 얼굴이 되었다. 눈은 바로 떴으며 작은 코, 다문 입들은 수척한 삼각형의 얼굴과 함께 무척 빈약해 보인다. 어깨는 넓지만 결코 당당한 것이 아니며 매우 부자연스럽다. 수척하고 평범한 얼굴, 부자연스러운 자세, 지권인(智拳印), 간략한 옷무늬 처리, 허술한 바른쪽 처리 등 9세기 때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이 대좌는 본시 이 불상의 대좌가 아니라 석등(石燈)의 대좌인데 후대에 이 불상의 대좌가 되었다.
장곡사 미륵불괘불탱(彌勒佛掛佛幀)은 국보 제300호(1997년9월22일)로 세로 8.69m, 가로 5.99m의 삼베 바탕에 채색되었다.
철학(哲學), 천승(天勝), 신밀(信密), 일호(一湖), 해종(海宗) 등의 화승(畵僧)이 1673년(현종 14년)에 그렸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이 괘불탱은 화기에 ‘영산대회괘불탱(靈山大會掛佛幀)’이라 쓰여 있고 본존은 ‘미륵존불
(彌勒尊佛)’이라 하였다.
연꽃을 들고 있는 화려한 보관불(寶冠佛)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둘러 선 군도식 구도이다.
즉,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독립된 존상으로 비교적 크게 표현되었고, 미륵존불의 협시로 6대보살, 6대여래, 10대제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천자(天子)와 천동(天童), 아사세왕(阿闍世王)과 위제희(韋提希) 왕비, 용왕과 용녀 등이 둘러 서 있다.
정면 입상의 보관불을 그린 후, 남은 공간에 많은 권속들을 배치한 군도 형식은 단독 형식보다 선행한다.
보관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불 등 4구의 화불(化佛)이 묘사된 보관불은 천개(天蓋), 그리고 원형(圓形)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갖추었다.
비만한 원통형 체구는 오른쪽 어깨가 넓고 왼쪽 어깨가 좁아 어색하지만 얼굴은 온화하다.
6대 여래(六大如來)는 노사나불(盧舍那佛),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다보여래(多寶如來), 석가문불(釋迦文佛), 약사여래(藥師
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 이고, 6대 보살(六大菩薩)은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 법림보살(法林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다.
보통 상단부에 등장하는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 그리고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은 이 괘불탱에서는
사천왕과 함께 하단부에 배열되었다. 범천은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홀(笏)을 든 왕의 모습이다.
이 괘불탱의 주조색은 홍색과 녹색이며 그밖에 가볍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하늘색과 금니(金泥)를 대신한 황색(黃色) 등을
사용하였다. 신광의 모란 덩굴무늬 및 화면 테두리의 연속 꽃문양이 화려하다.
보물제337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된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金銅藥師佛坐像)은 장곡사 하대웅전의 본존이다.
1955년의 복장조사 때 조성발원문을 적은 묵서(墨書)가 발견되어 충목왕(忠穆王) 2년(1346)에 조성된 것이 알려졌다.
이 약사불은 존안이 단아하고 부드러우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섬세한데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왼손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으며, 가슴에는 대의(大衣)의 선이 둥글게 파여 있고 가슴 왼쪽에 승각기 장식이 보이고 있다.
이 불상은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이나 서산 부석사(浮石寺) 금동관음보살좌상, 고창 선운사(禪雲寺) 도솔암의 금동지장
보살좌상 등과 유사한 조각양식을 보여주므로 14세기 전반에 불상양식의 유파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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