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속을 걷는 문학이야기길, 남원 흥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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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아름다운 길

고전소설 속을 걷는 문학이야기길, 남원 흥부길

by 정산 돌구름 2014. 10. 4.
고전소설 속을 걷는 문학이야기길, 남원 흥부길..

 

○ 탐방일자 : 2014. 10. 4(토)

○ 기상상황 : 맑음(구름 조금 낀 청명한 날씨에 바람 23~25℃)

○ 탐방인원 : 부부

○ 탐방코스 : 아영면사무소~일대지~허기재~흥부우애관~흥부묘~박공원~빈진골~장지터~고인돌~면사무소(전북 남원)

○ 거리 및 구간별소요시간 : 약11.8km, 4시간45분소요

  아영면사무소(09:35)~88고속도로굴다리(09:48)~신지마을(09:52)~일대지(10:15)~강정모퉁이(10:20)~흰죽배미(10:25)

  ~허기재(10:30)~하성경로당(10:33)~흥부우애관(10:38~45)~흥부참샘(10:55)~하성마을(11:05)~흥부생가(11:08~15)

  ~노디막거리(11:25)~화초장바위(11:35)~흥부묘(12:05~10)~박꽃공원(12:15)~빈지골(12:18)~오산마을회관(12:38)

  ~장자골(12:42)~88고속도로 굴다리(12:57)~고인마을(13:08)~면사무소(13:20)

○ 교통상황 : 문흥지구(08:30)~문흥IC~호남고속~88고속~지리산IC~37번~아영면사무소(09:25)

 

 

○ 남원 흥부길 소개

  소설 <흥부전>을 토대로 조성된 흥부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은 길, 가장 아름다운 길로 불리며 2012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공모사업에 <고전소설 속을 걷는 문학 이야기길>로 선정됐다.

  모두 2억원의 국비가 소요된 이 길은 2012년 7월 공사를 시작해 흥부제 행사를 앞둔 10월20일에 첫 선을 보였다.

  주요 코스로는 흥부가족이 허기져 쓰러진 고개 '허기재'와 쓰러진 흥부를 구완한 사람에게 보은한 논 '흰죽배미',

  떠돌던 흥부가 정착하고 복을 받아 부자가 된 곳 '고둔터', 그리고 흥부 생가터인 '발복터'와 화초장 바위, 노디막 거리 등

  소설 '흥부전'의 내용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길은 전체 10㎞구간으로 가족들끼리 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흥부길은 아영면사무소를 시작으로 일대저수지-흰죽배미-허기재-흥부우애관-생금터-화초장바위-빈집골-고인마을 등으로 이어진다.

  흥부전은 조선 후기에 나온 작자·연대 미상의 국문소설로 옛날 놀부와 흥부 형제는 전라·경상·충청도가 만나는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주로 구전설화로 전해지다가 판소리로 불려지면서 내용에 첨삭이 가해지고 세련된 형식을 띠게 되었다.

  판소리에서는 흥보가·박타령이라고도 하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작품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우리 고전문학의 백미이자,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이다.

  흥부전은 비교적 짧고 단순한 줄거리인데도 권선징악에 관해 매우 인상적인 교훈을 던져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Prologue

모처럼 맑은 가을 하늘에 남원 흥부길을 찾았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국비 2억을 들여 만든 길이라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만들어진 이정표는 관리가 되지 않아 비스듬히 쓰러져 있고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은 마음대로 움직여 제멋대로 방향을 알린다.

아무리 잘 만들어져 있고 내실있는 길이라 할지라도 2년도 되지 않아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국가적 낭비라 생각된다.

제멋대로 방치된 표지판을 좀 더 정비하고 관리한다면 이름에 걸맞는 좋은 길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풍성한 가을에 황금빛 들판, 익어가는 과일, 가을 꽃들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영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흥부길 트레킹을 시작한다..

떠나기 전에 화장실을 들려 가려고 주위를 살피지만 어디에도 화장실은 찾을 수 없다..

 

면사무소 앞, 흥부길을 알리는 1번 위치번호 이정표가 있다..   

 

커다란 흥부길 안내도..

 

건너편 2번 표지판 방향으로 이백로를 따라 가면 3번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하천을 따라간다..

 

황금빛 들판, 바로 앞 88고속도로가 지나고 멀리 백두대간 봉화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흐느적거리는 억새..

 

하천을 따라 이어가는 길..

 

땀으로 가꾼 농부들의 농작물을 지켜달라는 표지판이 정겹다..

 

88고속도로 가 앞을 막아 우측으로 20m가량 가면 굴다리를 지난다..

 

흥부전 첫번째 마당, 놀부집에 구걸가는 대목이라고 한다..

 

파란 하늘에 익어가는 감..

 

신지마을 경로당을 지난다..

 

마을을 감싸고 우측으로 들어 하성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부전 둘째마당 표지판을 보며 이어간다..

 

벌써 추수를 끝낸 곳도 있다..

 

풍성한 가을, 그리고 억새.. 파란 하늘에 흐느적 거리는 억새가 아름답다..

 

황금빛 들녁을 따라 가면 어느덧 일대저수지 둑이 바라보인다.. 

 

길가의 아름다운 구절초..

 

잠시 셀카를 해본다..

 

흥부전 셋째마당..

 

일대저주지 앞 표지판은 비스듬히 누워있다..

 

강정모틍이..

 

건너편 일대마을..

 

층층정(層層亭)..

일대저수지 근처에 있던 정자로 예전 신작로가 나기 전에 삼례에서 통영으로 가는 통영별로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층층정은 2층으로 된 정각으로 한일합방 당시까지도 있었으나 1945년 일재저수지가 조성되면서 지금은 수몰되었다.

당시 근처에 있는 짓재, 방죽가생이에도 주막이 있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주요 거점이었다.

지금까지도 저수지 주변에서 절구, 돌구시, 우물터 같은 살림자료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구름다리 장터..

아영면 하성마을 북쪽에 있는 들판에 자리하고 있으며, 옛 대로인 통영대로가 지나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주막거리와 시장이 서기도 하였다고 하지만 현재는 일대저수지로 수몰되었다...

 

흰죽배미..

배가 고파 허기재에 쓰러져있던 흥부를 마을사람들이 발견하여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구하였다.

훗날 흥부가 부자가 된 뒤, 그 은인에게 보은으로 주었다는 논을 일컫어 흰죽배미하 한다..

 

허기재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지나온 길..

 

허기재를 넘어선다..

 

허기재..

 

허기재에서 내려서면 하성마을회관..

 

흥부골 아성마을에서 잠시 우애관을 다녀오기로 한다.. 

 

흥부우애관 300m라지만 100m도 안된다.. 

 

흥부우애관의 표지판..

 

굳게 문이 닫힌 흥부골우애관..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단 한곳에도 화장실이 없고 이곳에도 사용할 수가 없다.. 

 

흥부마을은 출생지와 발복지로 나뉜다..

인월면 성산마을은 흥부·놀부 형제의 고향이요, 아영면의 성리마을은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부자가 된 마을이다..

 

복성이재로 이어지는 도로가에 있다..

 

흥부 생거지..

 

봉화산 등산로 종합안내도..

 

흥부마을인 상성마을로 오른다..

 

아름다운 가을꽃..

 

 

 

흥부마을, 망제단으로 바로 오를 수 도 있다..

 

익어가는 박..

 

마을 뒤편의 공원..

 

흥부참샘이 있다..

 

흥부가 직접 굴착하였다고 전하는 이 샘은 오늘날에도 흥부제 때 쓰이는 일체의 제수를 이 샘물만을 이용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다시 하성마을로 내려서 망제단 방향으로 향한다..

 

마을 뒤편 언덕에 오르면 흥부생가가 있다..

 

흥부가 형 놀부에게 쫒겨나 유량하다가 이곳에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로 추정되며.. 

 

흥부가 어려운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하여 이 지방의 민가 평면 양식으로 생가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생가 앞에서..

 

생가 내의 디딜방아..

 

뒤편 쉼터에서 바라본 생가..

 

다시 내려서 도로를 따라간다..

 

익어가는 구지뽕 열매..

 

노디막거리에서 좌측으로 좌측으로 꺾어간다.

옛날 개울(노디막)이 있었던 거리라는 의미로 노디막거리라 부른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가 있으며 고둔터에서 700m 지점에 있다.

놀부가 흥부집을 찾아왔다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

 

새금모퉁이를 지난다.

생금모퉁이, 새기라고도 하는데, 사금꾼들이 와서 금을 캐었다는 곳이다.

실제로는 흥부도 이곳에서 사금을 채취하여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가의 억새..

 

망제단은 좌측 개울을 건너지만..

 

직진하여 가면 화초장바위..

 

화초장바위..

 

동생 흥부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놀부가 휘황찬란한 화초무늬 옷장인 화초장을 탐낸다.

결국 흥부에게 달라고 떼를 써 빼앗은 놀부는 화초장을 직접 짊어지고 개울을 건넜다는 얘기에서 연유한 바위이다..

 

다시 길로 나와 되돌아간다..

 

개울을 건너 이어간다..

 

길목의 과수원, 풍성한 가을 남원 사과가 붉게 익어간다..

 

망제단으로 오르는 길은 잡초가 무성하다..

 

잠시 오르면 망제단과 정자가 나타난다..

 

흥부소공원, 그리고 흥부묘..

 

박춘보묘..

 

마을에서 흥부(박춘보)의 묘라고 추정되는 임세강의 묘이다.

연소 혈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1991년12월 비석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임세강 묘비를 보면 전면에 절충장군 임세강지묘라고 쓰여있고, 후면에는 비문을 세우게 된 내역이 밝혀져 있다.

그 당시 묘가 많이 파괴되어 확실치 않으나 다섯기의 묘가 함께 있었다..

 

춘보제는 연소혈 방향(북쪽)을 향하여 망제를 올렸고, 1999년 11월 현재의 위치로 묘를 옮겼다..

 

망제단(望祭壇)..

 

망제단은 성리마을 뒤 고갯마루인 공구재 위에 있는 박춘보의 제단을 말한다..

 

매월 음력 정월 초사흘 당산제를 모시고 난 후 별도의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에 선덕을 베푼 흥부의 추모제를 지내는 곳이다..

정월이라 눈이 많이 내려 묘소까지 가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묘소를 향하여 춘보제를 거행하였다.

이 제사는 1940년 무렵 중단되었다가 1992년 부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망제단에서 고인마을로 내려선다..

 

아막성(阿莫城)..

전북기념물 제38호로 경남 함양군과 접경을 이루는 아영고원의 서곽능선 봉화산에서 남으로 뻗은 660고지에 북면하고 있다.

운봉고원과 황산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 아막고원은 백제의 아막산,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린 곳으로,

삼국시대에 신라국경의 요새로서 신라와 백제를 잇는 팔량치(八良峙)를 지켰다.

602년(진평왕 24년)에 백제가 아막성을 침공하자 귀산과 추항을 보내어 백제군을 물리쳤으나 두사람은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아막의 뜻은 주성·주곡의 의미로 이 지역이 섬진강의 계곡분지를 나타내는 지형상의 특색과 중요한 방어진지라는 데에서 나왔다.

성지는 비고(比高) 약 220m, 북변은 성벽이 완전히 남아 있으며 거의 직선으로 길이가 15.07m, 동변도 거의 직선으로

길이가 147.1m, 서변은 길이 126.9m, 남변은 곡선을 이루는데 길이가 208.1m이며, 주위는 632.8m에 이른다.

남변 성벽의 능선 연결 부분에는 공호(空濠 : 물이 마른 못)를 설치하였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와편과 백제계의 도자기편 등이 퇴적되어 있는데, 북문지 수구 동편에는 지름 1.5m 타원형 석축우물터가 있다..

 

박꽃공원... 

 

흥부마을의 중요한 테마인 박을 소재로 공원내에 전통놀이 체험공간과 박 트랠리스, 파고라 조형물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여러종류의 박들이 식재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길가에 철 지난 배꽃이 가냘프게 피어있다..

 

흥부가 형 놀부에게 쫒겨나서 들어와 살던 곳으로 추정되는 빈집터를 지난다..

 

갈림길 삼거리, 좌측으로는 흥부참샘을 지나 흥부우애관으로 내려선다..

 

아름답게 핀 다알리라..

 

또 다른 빛깔..

 

꽃도 풍성한 가을..

 

 

 

오산마을회관을 지나 도로에 내려선다...

 

잠시 도로를 따라가면..

 

장자골.. 흥부가 형 놀부와 같이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갈림길에서 고인마을로 향한다...

 

노거수가 있는 마을을 지나..

 

88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우측으로 이어간다..

 

88고속도로 확장공사 과정에서 가야계고분 최초로 중국제 청자를 비롯하여 철제자루 솥, 금제 귀걸이, 철제갑옷 등이 발견되었다한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잘못된 이정표들이 여러 곳이 있어 혼란스럽다..

 

농로를 따라 고인마을로 가는 길..

 

고인마을 고인돌...

 

신라시대 고인이라는 장수가 마을을 관장했다는 데서 유래한 고인마을에는 고인돌(支石墓) 3기가 있다..

구조와 양식으로 미루어보아 남방식 고인돌로 그 연대는 청동기시대이며, 약 BC1,300~700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논가운데 서있는 고인돌은 장축 방향이 2.7m, 단축 1.9m, 두께 1.5m에 달하며, 지석 4개가 받치고 있는데,

들녘에 우뚝 솟은 모습이 경이롭다..

 

고인마을..

 

길은 아영면소재지로 이어진다..

 

다시 원점회귀한 흥부길..

 

남원의 북동단에 위치한 아영면(阿英面)..

동쪽은 함양군, 서쪽은 장수군, 남쪽은 인월면, 북쪽은 장수군과 함양군에 접해 있다.

봉화산, 연비산, 상산, 성산으로 주위가 에워싸여 있고, 남쪽으로 흘러 풍천에 모이며 흘러나가다가 만수천과 합수한다.

지명은 이 일대에 있던 고려시대의 고지명인 '아영(阿英)'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757년(경덕왕 16년)까지는 모산현에 속해 천령군(현 경남 함양군)에 예속되었다.

이후 운봉현으로 개칭되었고, 940년(태조 23년)에 남원부 관할이 되면서 아용곡(阿容谷), 또는 아영(阿英), 아막(阿莫)이라 하였다.

면소재지인 갈계리는 이곳에 정착 당시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면사무소에 다시 돌아와 흥부길을 마무리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찾아간 인월황토옹기사우나 3층 전통한식뷔페...

 

1인당 8,000원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가을나그네/소리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