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탐방, 북한산 백운봉~영봉 산행, 그리고 조망...
○ 산행일자 : 2013. 7. 6(토)
○ 기상상황 : 흐리고 안개(장마 후 무더위 - 서울 31℃)
○ 산 행 팀 : 광주블랙야크산악회(28명) - 회비 30,000원
○ 산 행 지 : 북한산 백운대(서울 강북, 경기 고양)
○ 산행코스 : 백운대탐방지원센터~도선사~용암문~위문~백운대~하루재~영봉~백운대탐방지원센터
○ 구간별소요시간 : 약5.7km, 3시간55분 소요
백운대탐방지원센터(10:30)~도선사(10:35)~용암문공원지킴터(11:00)~용암문(11:30)~노적봉 하단(11:50)~백운봉암문
(12:15)~백운대(12:30~50)~백운봉암문(13:00~20)~인수대피소(13:25~30)~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13:47)~하루재
(13:50)~영봉(14:02)~하루재(14:15)~백운대탐방지원센터(14:25)
<탐방지원센터~0.4km~도선사~1.1km~용암문~1.5km~백운대~1.4km~하루재~0.3km~영봉~1.0km~탐방지원센터>
○ 교통상황
비엔날레(06:30)~호남고속~정안휴게소~경부고속~서울TG(09:25)~한남대교~동부간선도로~상계교교차로~주차장(10:25)
백운대주차장(14:55)~백두산사우나&능이백숙초계탕(15:00~16:45)~월릉IC~100번고속~서울TG(17:50)~경부고속
~망향휴게소~호남고속~비엔날레(20:40)
○ 산행지 소개
북한산(北漢山 836.5m)은 옛부터 명산으로 일명 한산, 삼각산(三角山) 또는 화산이라 불렀으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개성의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白雲臺), 만경대(萬景臺), 인수봉(仁壽峰)의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우뚝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만경대·보현봉 및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과 북쪽으로 인수봉·우이암·주봉·자운봉 및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을 축으로 동서로 대별된다.
이러한 산봉이 하나의 거대한 암괴로 된 돔(dome) 형상을 띄는데 일종의 도상구릉(島狀丘陵)이라고 한다.
이는 두꺼운 풍화층이 침식되어 없어지고, 그 하부에 있던 절리 간격이 넓은 화강암이 지표 혹은 지표 가까이로 노출되면서 하중제거에
의한 판상절리가 탁월하게 발달될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북한산의 계곡으로는 정릉계곡·구천계곡·소귀천계곡·육모정계곡·효자리계곡·삼천사계곡·세검정계곡·진관사계곡·구기계곡·평창계곡·
산성계곡 등이 있다. 이들 북한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중량천·창룡천·불광천·모래내 등을 이루어 한강으로 유입된다.
북한산은 서울에 근접해 있으면서 자연 경관이 뛰어나 1983년4월 도봉산(道峯山)일대와 함께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나한봉에서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축조된 연장 8㎞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있으며, 지금도 14개의
성문 중 대서문(大西門)·대남문(大南門)·대성문(大成門)·보국문(輔國門)·대동문(大東門)·용암문(龍巖門) 등이 남아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찾았다고 한다.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태조를 위해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는 일명 국망봉(國望峯)이라고도 불린다.
비봉은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흥왕순수비를 보존하기 위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고 현재 있는 것은 모조 비석이다.
이밖에 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태고사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태고사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동장대지 등
많은 유물·유적지가 있으며, 상운사·원효암·진관사·승가사·회룡사·광법사·문수사·원통사·화계사·도선사 등 30여 개의 사찰이 있다.
중흥사지는 북한산에서 가장 큰 사찰로 승군의 총지휘를 맡았던 곳이었으나, 갑오경장 이후 승군이 해산되고 고종 말년에 모두 불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시민의 등산 코스로 많이 이용되며,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는 물론 멀리 황해까지 보인다.
북한산은 백운봉(백운대), 인수봉, 국망봉(만경대) 세 봉우리가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데서 유래해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
1000여년간 삼각산이라 불려왔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북한산이란 명칭이 공식화됐다.
최고봉인 백운대를 위시하여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경관이 수려하고 도시민들의 휴식처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명산에 선정되었다.
또한, 수려한 경관과 문화유적 등이 많고 산행코스와 기점이 다양하여 도시민들의 휴식처로 사계절 두루 인기가 있어 한국의 산하
(2010-2011년 2년간 접속통계) 인기 100명산 중 3위에 랭크되어 있다..
○ Prologue
연일 계속되는 장마, 그리고 푹푹 찌는 무더위..
토요일의 시간이 허락하여 간밤에 100대명산 중의 하나인 북한산에 오르는 광주블랙야크산악회를 신청 하였다.
이른 아침, 차를 몰고 비엔날레 주차장으로 향한다. 6시30분이 되지 않았지만 비엔날레 주차장은 여전히 붐빈다.
처음으로 함께 하였지만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왠지 낯설지가 않는 것이 산악회의 특징이다.
4시간여를 달려 북한산 백운대탐방안내소가 있는 조그만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도선사를 둘러보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
운무에 잠긴 백운봉을 바라보니 조망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정상에 올라서니 운무가 걷히고 잠시 조망이 트여 짧은 가시거리지만
가까운 조망은 트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6km도 채 안되는 짧은 산행이었지만 100대 명산을 탐방한 것으로 만족하였다.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하행길이 교통지옥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광주에 도착하였다..
백운대탐방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에는 다소곳이 앉아있는 미소석가불이 있다...
바로 위로는 하산지점이 바라보이고..
도선사로 오르는 길목..
천왕문을 지나 도선사 영역으로 들어선다..
부도와 포대화상...
도로를 따라 도선사로 이어진다..
청동 지장보살 입상... 일본 고야산 진언종 안양원에서 1983년11월15일 청담대종사 12주기 열반재때 모셔졌다고 한다..
청담대종사 석상..
1902년10월20일 진주에서 출생한 청담스님은 1927년 고성 옥천사에서 남규영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득도하였다.
1955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였고, 1956년에 조계종 종회의장을 거쳤으며, 1966년에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을 지냈다.
1971년11월15일,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도선사에서 입적하였다.
광복 이후 왜색불교인 대처승 제도를 청산하기 위한 불교정화운동을 주창하여 그 선봉에 서서 활약하였다.
승단정화를 통한 불교 정통성 회복과 현대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곧 도제양성·역경·포교 등 3대 사업이었다.
이외에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 운동에 기여하여 군종법사제(軍宗法師制)를 실현하고, 대한불교(지금의 불교신문)를 창간하였다.
197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고, 2001년 도선사에 청담스님을 기리기 위해 교육사업인 청담장학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계단을 오르면 청담조사비..
기린 위에 세워져 있다..
청담조사 부도..
청담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로서 전통적 양식에 기단부를 강조시켜 8용 위에 8각 원당의 집 모양기단을 올려놓은 것이다. 용대좌는 4각으로 설치하고 용머리를 우뚝 세웠으며 집 모양의 8각 기단은 탑신모양으로 시도하였다...
1974년 청담조사 3주기때 준공되었는데 설계는 김동현씨가 하였고, 조각은 신하균씨가 담당하였다고 한다..
범종각..
12지신상...
호국참회원.. 1977년11월15일에 완공한 종합 포교센터이다.
지하1층, 지상3층, 연면적 1,000평의 콘크리트 한옥식 건물로, 법당·영사실·도서실·신앙상담실·수련원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1986년에 건립된 적묵당.. 호국참회원 맞은편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건물이다...
자비무적, 방생도량...
천불전...
종무소로 쓰이고 있다..
포대화상...
중국의 승려로 본명은 계차(契此).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양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다.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다.
916년 3월에 명주(明州)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미륵진미륵 분신백천억 시시시시인 시인자불식(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이라는 게송을 남기고 입적하였다고 한다.
그 때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
한국불교의 중흥과 통일조국의 성취를 위하여 참회를 통한 호국을 제창한 청담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졌으며,
196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77년에 완공되었다.
실천불교와 생화불교운동을 전개하는 종합포교센터로, 내부에는 법당, 영상실, 도서실, 신앙상담실, 수련원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1863년(철종14년)에 김좌근판서의 원력으로 중창된 것을, 1903년에 고승 혜명,관수,연은,근명스님이 어명을 받아 17평으로 중건..
그 뒤 1922년에 동호(東湖)스님이 중수하였고, 1962년 청담스님이 다시 중수하여 근래에 이르렀는데,
1990년에 당시 주지인 현성스님의 발원으로 현재의 모습인 외부 5포, 내부 9포의 규모로 증축되었다...
내부는 우물마루 위로 닫집과 수미단을 갖춘 감실형 불탁 위에 아미타, 관음, 대세지보살의 목조아미타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목각아미타후불탱과 지장시왕탱, 신중탱이 있다...
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건물로, 청담스님이 주석하던 백운정사를 현성스님이 개조하여 1991년에 건립한 것이다.
앞 뜰에는 약 200여년 전 어떤 고승이 인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가 고목이 되어 서 있으며,
명부전 옆에는 청담대종사께서 직접 조성하셨던 심지가 자리하고 있다...
내부는 ㄷ자형 불탁을 두고, 그 위에 목조지지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귀왕, 판관 등 명부권속들을 봉안하였다.
불화는 1991년에 현성스님이 화주가 되어 조성한 것으로, 이외 각부 시왕탱 10폭이 걸려 있다.
또 이곳에는 고 박정희 전대통령 부처의 영정과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설립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2004년 현재 주지스님인 혜자스님이 건립한 윤장대(輪藏臺)..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마애불입상(磨崖佛立像)...
전체높이 8.43m, 머리높이 2.15m, 어깨너비 2.88m로 머리에는 육계가 있으며 머리는 소발의 민머리이다.
얼굴은 사각형으로 넓적하고 평면적이어서 다소 비만해 보이는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신체는 사각형에 가까운 원통형을 이루어 우람한 기둥처럼 묘사되었다..
신라말에 도선이 조각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형태로 보아 고려때 유행하던 마애불 계통을 이어 받은 조선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칠층석탑은 1887년(고종 24년)에 동호 임준스님이 조성하였는데, 그 안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다층석탑..
새로이 조성된 석조물...
일심선명각...
경내를 둘러보고 사찰을 나선다..
사찰 아래로 나있는 등산로..
용암공원지킴터를 지나 좌측으로 들어선다..
오늘의 산행을 가늠하며..
숲속으로 들어 소류를 건너고..
오르는 길목의 김상궁바위..
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이라고 쓰여있다..
가파른 오르막은 계속되어..
북한산성이 바라보인다..
용암문(龍巖門)은 북한산성에 있는 암문으로, 원래 이름은 용암암문(龍巖暗門)이었다...
오르는 길목의 바위에는 삼신산 불로초...
노적봉 갈림길... 우측으로 꺾어 가파르게 오른다..
잡목 사이로 백운봉이 고개를 내민다..
반대편으로는 노적봉..
비가 온후라 바위가 미끄럽다..
가파른 오르막에 속도를 내기가 쉽지않다..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백운대와 인수봉...
노적봉(露積峰)..
해발 716m로 북한산에서 두번째로 큰 암봉으로,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속한다.
목포의 노적봉처럼, 임진왜란 때 백제관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위기에 처하였는데,
밥할머니가 꾀를 내어 이 봉우리에 볏짚을 쌓고 창릉천에 쌀 씻은 물처럼 보이도록 석회를 뿌리게 함으로써 왜적으로 하여금 버틸 만한 군량이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게 하여 물러가도록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백운봉이 가까워지지만 희미하게 조망된다..
점점 운무에 휩싸여 백운봉을 가린다..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되고..
좌측으로는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백운봉과 만경봉사이에 위치해 있는 방형의 문으로 출입구는 높이 1.7m, 폭 1.9m 가량이다.
문 내부에는 성의 바깥쪽으로 문비(門扉)를 달았던 원형의 돌확구멍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북한산성에는 6개 대문과 7개 암문, 1개 수문이 있는데,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상출입구이다...
조선시대 북한산성 축성 당시의 이름은 백운봉암문이었으나 일제가 들어서면서 이름을 위문으로 고쳤다.
지금은 일제 잔재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이름을 백운봉암문으로 다시 고쳐 부르고 있다...
산성을 옆에 두고 오른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삼거리.. 백운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야 한다..
성벽..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풍경..
건너편의 만경대는 운무에 잠겨있다..
백운대로 오르는 길...
능선상의 족도리바위도 바라보인다..
인수봉의 암벽...
가파라지는 오르막..
새바위(오리바위)로 불리는 바위..
인수봉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
백운대..
곳곳에 기암괴석...
북한산 3.1운동 암각문...
백운봉 정상의 3.1운동 기록문은 독립운동가 정재용선생이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새긴 암각문이다.
가로 150cm, 세로 270cm 규모로 평평한 바위위에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네글자를 새기고, 그 안에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1일 탑공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만세를 도창하였다.”는 내용이 정자체로 새겨져있다.
이 글을 새긴 시기 및 목적에 관하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3.1운동 이후로 추정되며 목적은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영구히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글을 새긴 정재용선생은 188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2월19일 해주에서 상경하여 3.1운동 전날 밤 서울역에서 100장의 독립선언서를 원산교회에 보내고 남은 한 장을 가지고
있다가 탑골공원에서 낭독하여 3.1운동의 불을 당겼던 인물이다.
그후 해주에서 귀향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중 1919년8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2년6월의 형을 언도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76년 91세로 돌아갔다. 돌아가신 이듬해인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白雲臺)..
해발 836.5m의 백운대는 북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와 함께 북한산 고봉 중의 하나이다..
화강암(花崗岩)의 험한 암벽을 노출하고 있는 산마루는 1000명 가량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암반(岩盤)으로 되어 있다..
날씨 탓인지 비교적 한산한 정상의 풍경이다...
기암절벽의 조망이 일품이다...
건너편의 인수봉(仁壽峰)..
해발 810.5m의 인수봉은 백운대·만경대와 함께 예로부터 삼각산·삼봉산으로 불려왔다...
인수봉은 한국의 대표적인 암벽등반 대상이다...
화강암의 암벽이 노출된 경승으로 동쪽 산기슭에는 우이동이 있고 남동쪽 기슭에는 도선사 등이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아든다...
암벽을 타는 사람들...
스릴 만점을 즐기고 있다..
또 다른 능선이 이어가고..
정상을 내려서며..
만경대(萬景臺)...
해발 799.5m로 만수봉(萬壽峰)이라고도 한다.
1375년(우왕 1년)에는 큰 비로 봉우리가 무너졌다하고, 1597년(선조 30년)에는 이 산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어 울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후에는 이곳에서 기우제와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고 한다...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내려선다...
북한산 안내..
백운봉암문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선다...
능선상의 족도리바위..
백운산장이 바라보인다..
백운산장 현판은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 옹이 썼다고 한다.
일제부터 이 산장을 즐겨 찾던 손옹은 지난 90년대 중반 직접 현판을 써 제자들에게 전달을 부탁했다고 한다...
아담한 암자 백운암..
산신각처럼 단초롭다..
탱화도 화려하다..
백운의 혼..
6.25전쟁 당시 국군이 백운암을 거쳐 후퇴하던 중 장교1명, 사병1명이 남아 사태를 파악하다가 서울이 함락되자 자결하였기에
그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백운의숙(애국청년단체)에서 추모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제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
인수봉의 또 다른 모습..
거대한 암봉이 속살을 드러낸다..
인수암을 지나..
북한산 인수대피소의 경찰산악구조대..
하루재에서 시간이 충분하여 영봉으로 오른다..
영봉으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인수봉과 백운봉이 우람하다..
영봉에 서다..
헬기장이 있는 영봉(靈峰)...
인수봉을 가장 전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해발 604m의 영봉은 우이능선과 이어진다
..
인수봉과 백운대를 향하여..
이제 영봉을 내려서며...
예전에 이 봉우리 곳곳에 북한산 등반 도중에 숨진 산악인들을 추모하는 비석들이 인수봉을 향하여 세워졌다.
영봉이라는 명칭은 이들 '산악인의 영혼의 안식처'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1980년대에 붙여졌다고 한다.
추모비들은 2008년 철거되고 도선사 부근의 무당골에 합동추모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반대편으로는 길게 이어지는 우이능선이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인수봉, 그리고 숨은벽능선이 바라보인다..
우이동 방향..
백운대탐방안내센터가 있는 주차장에 내려선다..
탐방지원센터..
4시간만에 원점회귀...
버스를 기다리며...
백두산한증막사우나에서 산행에 지친 심신을 씻어낸다...
바로 1층에서의 뒤풀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찌게로 뒤풀이를 한다..
예상보다 이른 8시40분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하여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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