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3. 6. 16(일)
○ 기상상황 : 구름 조금 낀 맑은 날씨
○ 산행인원 : 광주청솔산악회(42명) - 회비 30,000원
○ 산행코스 : 서창공원지킴터~장도바위~서문~향로봉~적상산성~안렴대~안국사~적상호~전망대~송대~치목리(전북 무주)
○ 산행거리 및 구간별 소요시간 : 약12.2km, 4시간50분소요
서창주차장(09:20)~장도바위(10:15)~서문지(10:18)~안부 삼거리(10:30)~향로봉(10:40~45)~안부삼거리(10:55)~
적상산(11:10)~1029m봉(11:15)~안렴대(11:25~55)~안국사(12:05~20)~적상산사고(12:30)~적상호전망대(12:45~50)
~치목마을 갈림길(13:05)~송대폭포(13:33)~치목리(14:10)
<서창~3.5km~향로봉~1.9km~안렴대~0.6km~안국사~2.3km~전망대~1.2km~갈림길~2.7km~치목>
○ 주요 봉우리 : 향로봉(1,024m), 적상산(1,034m)
○ 교통상황
비엔날레(07:00~20)~88고속~남원휴게소~남장수IC~19번~장수IC~대전-통영고속~덕유산IC~19번~서창(09:10)
치목마을(14:40)~19번~덕유산IC(14:55)~대전-통영고속~88고속~지리산IC~인월옹기사우나 및 뒤풀이(15:40~17:55)~
지리산IC~88고속~지리산휴게소~비엔날레(19:10)
○ 산행지 소개
전북 무주군 적상면 동쪽에 병풍을 두른 듯이 서있는 적상산(赤裳山 1,034m)은 사면이 깎아지른 암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어졌으며, 가을뿐만 아니라 철따라 독특한 개성미를 가득 뿌린다.
적상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 등 자연 명소와 함께 최영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 146호)이 있다
한국 100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지대가 높고 일교차가 심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이 유달리 곱고 아름답다.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하다고 하여 붉은'적'(赤) 치마'상'(裳)자를
써서 적상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고 하나, 사실은 정상 치마바위 절벽돌이 퇴적암으로 붉게 보여 적상산이라 불렀다 한다.
적상산은 대전-진주간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무주근처에 다다르면 정면에 산 허리위로 붉은 바위벽이 층층이 병풍을 드리운 항아리
모양을 하고 떡 버티고 서있는 요새처럼 보이는 산으로, 이 산은 기봉이 향로봉을 거느리고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 등의 명소를 간직하고 있다.
적상산은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명산 선정되었다..
○ 산행개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의 중순.. 모처럼 우리 부부가 산악회를 따라 함께 산행을 하였다.
산행지를 선정하다가 100대 명산이기도 하지만 산행거리가 짧고 별로 힘들지 않은 적상산을 선택하였다.
아침 일찍 비엔날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악회 버스에 탑승한다.
무주 적상면 서창탐방안내소를 출발하여 지그재그의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전망바위에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오르면 장도바위..
바로 위에 적상산성 서문지를 지나 이후 부드러운 오르막이 이어져 안부 갈림길.. 좌측 향로봉까지는 거의 고도차가 없는 능선길..
다시 돌아와 적상산 정상까지도 큰 고도차없이 이어지고 적상산 정상은 통신시설 뿐 잡목에 둘러싸여 조망이 없다.
조망이 확 트이는 안렴대에서 덕유산 향적봉을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하고 안국사를 둘러본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 적상산사고에 이르지만 한창 보수공사중이라 출입을 못하고 다시 도로를 따라 적상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서 조망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와 치목마을까지 내려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도로를 빼고는 산행내내 그늘속을 거닐어 다행이었다.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무주 적상면 서창탐방안내소 주차장..
주차장 가의 아름다운 소나무...
잠시 오르면 공원지킴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석장승이 서있다..
그 옆으로 천하만민에 보배로운 산 적상산...
향로봉을 향하여 숲속으로 들어선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부드럽게 산허리를 따라간다..
전망바위에 오르면 잠시 조망이 트이고..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장도바위..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적상산성은 둘레 약 8,143m, 높이 1.2~1.8m이며,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 등이 남아 있으며, 당시 성 안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한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서를 보관하였던 사각(史閣)과 기타 건물의 터만 남아 있다.
1901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지역은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였으며, 고려 때 왜군과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과 이웃 군민들은 이곳으로 피하여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도통사 최영장군은 이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를 지어 불의의 변에 대비하기를 청하였고,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난 1614년(광해군 6년)에 실록을 보관할 사고가 설치되었고, 1633년(인조 11년)에는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묘향산에 있던 사고를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였다.
계속하여 1641년에는 선원각·군기고·대별관을 세우고, 1643년에는 산성의 수호대책으로서 승군을 널리 모집하고자 호국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조직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서문지를 지나면 향로봉까지는 1.1km...
부드러운 오솔길이 이어진다...
주능선 안부에 올라서 잠시 향로봉으로 향한다...
굴참나무가 우거진 부드러운 능선길....
향로봉에 올라선다...
적상산에서 사실상 정상의 역할을 하는 곳...
다시 돌아와 능선삼거리에서 적상산 정상으로 향한다...
오르는 길목에서 잠시 휴식...
적상산성이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 적상산 정상...
정상은 통신시설물로 가득차 정상의 의미가 없다...
정상을 내려서며...
정상에서 내려서 목책을 넘어서면 안국사와 안렴대 갈림길...
안렴대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석성 능선의 삼각점.. 1,029m 봉우리이다...
조망이 트이는 암봉에서 바라본 적상산 정상의 통신탑과 멀리 지나온 향로봉...
아래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19번 국도가 지나고, 건너편으로 조항산...
조망에서 잠시...
안렴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바라본 덕유산 향적봉..
대전-통영고속도로...
30번 국도가 길게 이어진다..
향적봉..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이 하늘금을 긋는다..
조망이 트이는 안렴대(按簾臺)...
무주 적상면 괴목리의 적상산 꼭대기 서쪽에 있는 바위 전망대로 적상산성 안에 있는 호국사 서쪽 절벽에 우뚝 솟아 있다.
안렴대란 명칭은 고려말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삼도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상산이 꼭대기에 있다. 그 길이는 여러 길(丈)이나 되는데, 그 위에 수십명이 앉을 만하다.
동쪽은 가야산, 서쪽은 황해, 남쪽은 지리산, 북쪽은 화악(華岳)을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옛날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삼도 안렴사가 이곳에서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속세의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덕유산 향적봉, 멀리 남덕유산과 서봉.. 아래로는 49번 지방도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덕유산을 바라보면 그늘에 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다시 되돌아와 통신탑에서 안국사로 내려선다..
안국사로 내려서는 길..
호국사(護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1645년(인조 23년)에 왕명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1643년 이조판서 이식이 적상산성을 순찰한 뒤 병자호란으로 군사와 승병이 모두 흩어져 산성과 사고를 지키기 힘들다고 인조에게
보고하자, 인조가 창건을 명령했다고 한다.
당시 전라감사 윤명은은 봉급과 개인재산을 희사하였으며, 통각이 사역을 담당하고 현감이던 심헌이 감독하였다고 한다.
1949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87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분화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뒤 복원하였다고 한다...
우물..
갈림길에서 안국사로 들어선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安國寺)...
<적상지>에 따르면 1277년(충렬왕 3년) 월인이 세웠다고 하나 조선 태조 때 자초가 적산산성을 쌓으며 지었다고도 전한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1613년(광해군 5년) 증축하고 이듬해 사고를 두어 사각과 선원각에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덕웅을 승장으로 하여 승병 92명을 두고 지키게 하였다.
이때 사찰 이름을 안국사라고 바꿨으며, 1910년에 사고의 책을 규장각으로 옮기자 이철허가 사고 건물을 경내로 이전하였다.
1968년 유정환이 이 건물에 천불을 모시고 천불보전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1990년 초에 댐 건설로 절 지역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자 1991년부터 이전을 시작하여 1993년에 절을 완전히 옮겼다..
성보박물관..
내부에는 300여점의 세계 각국 불상들과 200여점의 불교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국사 범종..
안국사 지장전.. 일중거사(一中居士)가 쓴 지장전 편액이 양각되어 있다...
내부는 육엽연화문으로 단청된 우물천장과 불단으로 구성되며,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및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건물로 1991년 원행(圓行) 스님이 옛 안국사 터에서 옮겨 지은 것이다...
안국사 극락전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있다..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현재 전북 유형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성각..
1991년 옛 사고(史庫) 터에 있던 선원각을 옮겨 지은 천불전...
전란의 화마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사고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간에 가로로 방을 쳐서 중층의 구조를 가진 독특한 모습으로, 하부는 사고를 수장한 창고를 겸하며 상부는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내부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 보조단이 있다.
1995년 합성수지로 만든 석가여래좌상과 문수ㆍ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석고천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은 붉은 바탕에 금니로 출초한 홍탱으로 금어 남인식(南仁植)이 1969년에 조성한 것이다...
안국사 극락전 단청 설화...
안국사의 주 법당으로 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 “제가 지금부터 100일 동안 단청을 할 테니 극락전에 하얀 막을 치고 물 한 그릇만 넣어 주되
절대로 그 안을 들여다보지 마시오”라고 말하였다.
스님은 범상치 않은 노인을 말을 깊이 새기며 궁금증을 억누른 채 단청불사가 무사히 끝나기를 부처님께 기도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 루가 지나 구름이 걷히고 단풍이 떨어질 무렵의 어느 날, 스님은 천막 속의 단청불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함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단청이 시작된 지 99일째 되던 날 그 호기심에 하루를 참지 못하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막 안에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붓을 입에 문 흰 학이 단청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스님이 지켜보는 것을 눈치 챈 학은 완성하지 못한 단청 일을 남겨 놓은 채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인지 안국사 극락전 뒤편 한쪽에는 딱 하루거리에 해당하는 분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뭇결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온통 학이 노닐었다’고 할 만큼 극락전에 학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천장을 빙 둘러 날고 있는 학문양이 적지 않으니, 옛 이야기를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가고 있다...
청하루(淸霞樓)는 1990년대 적상호의 수몰로 인해 안국사 옛터에 있던 누각을 해체한 후 1992년에 복원한 것..
지금은 불교용품점과 무주 33경의 비경을 엿볼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외부는 이중구조로 누각 아래로 출입하며, 건물 내부에는 ‘석실비장(石室秘藏)’, '청하루(淸霞樓)’, ‘극락전(極樂殿)’,
‘산신각(山神閣)’ 등 수몰되기 전 안국사에 있던 현판들이 걸려 있다.
현판 ‘淸霞樓’는 송석(松石) 이도익(李都翼)이 1859년에 쓴 것으로, 가로 165㎝, 세로 55㎝의 장방형 목판에 양각되어 있다...
안국사를 내려와 도로를 따라가면 일주문...
1995년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이 쓴 ‘국중제일정토도장(國中第一淨土道場)’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國中第一淨土道場’은 무학대사가 이곳을 ‘국중제일의 길지’라고 한 설화에서 유래한 편액으로,
‘안국(安國)’과 ‘정토(淨土)’를 바라는 안국사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일주문 반대편에는 1992년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이 쓴 ‘적상산 안국사(赤裳山 安國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일주문을 지나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치목마을 갈림길.. 잠시 망서리다 전망대로 향한다..
수리중인 적상산사고... 복원중이라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평지에 있던 4대 사고가 전란으로 소실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전주사고의 실록을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마니산 등 5대 사고에 설치하여 각각 실록을 보관했다.
병자호란 당시 묘향산사고 실록의 보관에 어려움이 있자 무주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1634년 묘향산 실록을 옮겨와 300여년간
보관하였으며, 1910년대에 일제에 의해 사고가 폐지되자 적상산의 실록은 왕실 규장각으로 옮겨 보관해오다가 6·25 때 북한으로
반출됐으며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1992년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립으로 사고지가 수몰되자 사고 건물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전북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돼 있다...
도로를 따라 전망대 가는 길.. 뙤약볕이 내리쪼인다..
적상산 산정호수...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호라 명명되었다.
적상산 전망대...
1995년 적상산 정상의 분지에 무주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산 정상 부근의 안부에는 적상호라는 인공 호수가 생겼다.
당시 적상호 북동쪽에 세운 적상산전망대는 적상산 관광의 명물로 꼽힌다...
적상산의 분지에 무주양수발전소를 조성할때 적상호라는 인공호수가 생기면서 적상호 북동쪽에 세운 전망대이다...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오른다...
전망대에서는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은 물론이요, 북덕유에서 남덕유까지 장엄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하늘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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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향적봉...
적상저수지, 그리고 그 너머로 적상산 정상...
또 적상산 아래의 하부댐의 모습도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건너편의 백운산.. 그리고 아래로는 무주호..
125m 깊이의 발전설비...
전망대가 있는 해발 850m까지 승용차로 오를 수 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치목마을로 향한다...
내리막 숲길...
아름다운 송대.. 그러나 물줄기가 약하다...
다시 잡목사이로 이어지는 숲길..
잠시 소나무 숲길..
아름다운 소나무...
하부는 산불로 소나무들이 소사되었다..
마을로 내려서면..
마을 앞 쉼터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삼베체험장...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인월 황토옹기사우나에서 목욕과 뒤풀이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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