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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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세상사는 이야기

10월의 마지막 밤...

by 정산 돌구름 2012. 10. 31.
10월의 마지막 밤...

 

 

일찌기「영원의 디딤돌」이란 시집을 출간하고도 이름 앞에 시인이란 타이틀보다는 작사가로만 알려져 왔던 박건호씨..

불후의 명곡이 된 「잊혀진 계절」은 그가 가사를 쓰고 이범희씨가 곡을 붙여 이용씨가 불러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1980년 9월, 비가 내리는 어느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가 소주한병을 거의 다 비운 것은 그 동안 만났던 여자와 헤어지기로 한 것이다.

만나면 항상 버릇처럼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그녀를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서..

그는 “오늘밤 그녀와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크게 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취한 박건호씨를 버스에 태우며 안내양에게, 이분 흑석동 종점에 내리게 해주세요.” 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 버렸다.

안내양의 여긴 흑석동이 아니에요.” 라는 제지를 뿌리치고... 그는 다시 버스가 오던 길로 내달렸다.

뭔가 할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말도 하지 않고 헤어진다는 것에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자책감도 들었다.

동대문에서 창신동으로 꺾어지는 지점쯤에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뛰어온 그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녀 앞으로 달려가 외쳤다.

정아! 사랑해요....”  그 한마디를 던지고 오던 길로 다시 뛰었다.

왠지 쑥스러웠고, 그녀의 그 다음 말이 두려웠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쉬운 이별...

1981년 초가을 무렵, 박건호씨는 그날의 느낌을 새겨 넣은 가사를 이범희씨에게 넘겼다.

그가 이 가사를 쓸 무렵은 마음이 몹시도 춥고 외로웠다고 한다.

그에겐 차라리 잊고 싶은 계절이었다.

젊음의 열병과 사랑의 시련, 그리고 현실적인 장벽이 그의 섬세한 감성을 한없이 짓밟았던 것이다.

이 노래는 당시 무명의 신인 가수였던 이용이 취입해 그를 부동의 스타로 올라서게 했고,

작사가였던 박건호씨에게는 그 해 KBS가요대상(작사부문)과 가톨릭가요대상(작사), MBC최고인기상 등

상이란 상을 모두 휩쓰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10월의 마지막 밤」... 

이것은 사실「9월의 마지막 밤」상황을 레코드 발매 시기에 맞추느라 그렇게 바꾼 것이라고 한다..

 

1949년2월19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박건호(朴建浩)씨는 1969년 서정주의 서문이 실린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펴냈다.

1972년에는 박인희가 부른 가요 <모닥불>의 가사를 쓰면서 작사가로 데뷔하였다.

이후 작사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 정수라의〈아! 대한민국>

나미가 부른 <빙글빙글>과 <슬픈 인연>, 조용필의 <모나리자> 등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은 가사를 지었다.
3,000여 곡의 작품을 남겼으며, 1982년 KBS 가요대상의 작사상, 1985년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아름다운 노래 대상,

1985년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대중가요 작사 이외에도 <타다가 남은 것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 <추억의 아랫목이 그립다>, <기다림이야 천년이 간들 어떠랴>,

<그리운 것은 오래 전에 떠났다> 등의 시집과 에세이집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 등의 저서를 남겼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뇌졸중으로 언어장애와 손발이 마비되는 중풍을 앓았으며, 신장과 심장수술을 받는 등 오랜 기간 투병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하다가 2007년12월9일 세상을 떠났다.

 

잊혀진 계절 - 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