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년 9월29일
○ 소재지 :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 장천재 소개
존재 위백규(魏伯珪)가 어려서 이곳에서 수학하고 후배를 양성한 곳으로 1978년9월 22일 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효종10년(1659년)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숙종 31년(1705년), 영조 23년
(1724년) 개수를 거쳐 고종 10년(1873년)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
평면은 ㄷ자형이며 전면은 양쪽 날개 1칸씩을 누각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장대석으로 짜올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은 원주를 세웠는데 포작이 없는 주두와 창방, 장여를 올려 결구하였다.
지붕은 중앙 용마루 부분이 ㄷ자형 양익부와 높이를 동일하게 하고 전면에서는 팔작지붕의 합각이 보이며 배면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문은 중앙 3칸에만 설치하였는데 3칸 모두 2분합이다.
현판에 적힌 시문으로 보아 유림들이 시문을 교류하였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장흥위씨 방촌계파의 제각으로서 이용되고 있는데, 장천팔경이 있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위석규(魏錫奎 1883~1913)는 조선 말기 항일운동가로 자는 여장(汝章)이고, 호는 덕암(德菴)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으로 관산읍 당동에서 부친 위윤조(魏胤祚)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증조부는 위도방이고, 조부는 위영집으로 족형(族兄) 위봉식(魏棒植)과 명강(明岡) 백봉흠(白奉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최익현(崔益鉉)의 의병 모집 격문을 보고 나아갔으나, 이후 면암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1906년 중국으로 떠나 만주, 러시아 등지에서 박태문(朴泰文), 강명운(姜明運), 국사성(鞠思成) 등과 함께 항일운동을 펼쳤다.
1913년4월27일 러시아 니콜라스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묘는 니콜라스 한인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시신을 찾을 길이 없어
고향에서 유품으로 대신 장사를 지냈으며, 천관산(天冠山) 도립공원입구에 의열비가 있다.
태고송(太古松)은 2011년8월26일 전남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된 소나무 단순림으로 장천재 앞의 노거수이다.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서 있으며 수관층 남북 12~13m, 동서 9~11m, 수고 19~21m, 흉고직경(90~100cm), 근원둘레가 340~345cm이다.
수령은 반계 위정명 선생이 지은 태고송이라는 시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해 1500년대 소나무로 500년으로 예측하고 있다.
노송이 바람에 의해 우는 소리로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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