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기행] 능가산 내소사(來蘇寺)와 채석강(彩石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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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기행] 능가산 내소사(來蘇寺)와 채석강(彩石江)..

by 정산 돌구름 2011. 9. 4.
[변산기행] 능가산 내소사(來蘇寺)와 채석강(彩石江)...

 

탐방일 : 2011년 9월 3일(토)

소재지 :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탐방지 소개

 <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34년(633)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淸旻)이 대웅전을 지었는데, 그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이어서 가히 조선 중기 사찰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후 고종2년(1865) 관해(觀海)가 중수하고 만허(萬虛)가 보수한 뒤, 1983년 혜산(慧山)이 중창하여 현재의 가람을 이루었다.

  이 밖에도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 3층석탑(전북유형문화재 제124호), 설선당(說禪堂)과 요사(전북유형

  문화재 제125호) 등 여러 문화재가 있으며, 정문에는 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移建)한 연래루(蓮來樓)가 있다.

  내소사의 유래에 관하여, 일설에는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와서 세웠기 때문에 '내소(來蘇)'라 하였다고도하나 이는 와전된

  것이며, 원래는 '소래사(蘇來寺)'였음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고, 최자(崔滋)의 <보한집>에도 고려 인종 때 정지상(鄭知常)이

  지은 <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기록되어 있다. 또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일기(南行日記)>에도 '소래사'라 하였는데,

  이것이 언제 '내소사'로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부속암자로는 청련암·지장암이 있다.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이 문화재보호구역(전북기념물 제78호)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一柱門)부터 천왕문(天王門)에 걸쳐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관음봉(觀音峰) 아래 있는데, 관음봉을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보통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기도 한다.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일주문((一柱門 )....

3평의 팔작건물로 1982년  원조스님이 건립한 것을 1984년 우암 혜산스님이 단청하여 중수하였다.

편액은 1983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縣)이 썼다고 한다...

 

매표소.. 입장료 2,000원...

 

150여년 전 만들어 졌다는 전나무 숲길...

1300여년 역사의 내소사는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다시 복구하는 일이 계속됐으나 입구가 여전히 삭막하여, 150여년 전 일주문에서

사천황문에 이르는 길에 전나무를 심었다. 6∙25전쟁 때 사찰은 피해를 입었지만 입구의 전나무들은 다행히 무사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드라마 대장금 촬영장소...

장금이 때문에 한상궁이 경합에 져서 한상궁에게 책망 당한걸 회상하며 우울한 표정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장금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민정호의 모습을 연출한 곳이다...

 

천왕문(天王門)..

1986년에 우암혜산스님이 신축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사찰의 수호신장인 사천왕상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1988년에 조성된 높이 365㎝의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천왕문(天王門)’ 편액은 1986년 김충현(金忠縣)이 썼다고 하며, 해안선사의 오도송을 새겨 넣은 4기의 주련이 걸려 있다.

‘탁명종락우죽폭(鐸鳴鍾落又竹幅) 봉비은산철벽외(鳳飛銀山鐵壁外) 약인문아희소식(若人問我喜消息) 회승당리만발공(會僧堂裡滿鉢供)’.

 

거대한 전나무...

 

보종각 (寶鍾閣)...

정면과 측면 각1칸의 팔작지붕으로 봉래루 우측에 있는 고려 동종을 봉안한 종각이다.

3단의 계단식 기단으로 낮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두고 그 위로 8각형의 석재주좌(石材柱座)를 깎아 짧은 원형기둥을 세운 모습이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올려 5포로 구성된 다포를 떠받들게 하였으며,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올렸다.

지붕의 구조가 하부의 구조보다 훨씬 커서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사면에서 처마를 받드는 작은 활주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개방된 모습으로 사면에 창살이 둘러져 있다. 어칸에 걸려있는 편액은 일중거사가 쓴 것이라고 한다.

보종각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1880년경 태인에 세워졌던 것을 어떤 연유에서인지 부안군 상서면 김상기의

누각으로 사용하다가 다시 만화동 구병서가 사용하였는데, 1965년 내소사 주지 원경(圓鏡)스님이 이곳으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법당 앞마당에 서남향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나 우암혜산(愚岩慧山) 스님이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보종각 고려동종(寶鍾閣 高麗銅鍾)...

높이 103cm, 입지름 67cm의 고려후기 중종(中鐘)으로 보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고려 고종9년(1222)에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들어진 것을 철종4년(1853)에 내소사로 옮긴 것이다.

항아리를 엎어 놓은 듯한 고복형으로 종신(鐘身)에는 상대와 하대에 모란당초문(牡丹唐草紋)이 시문되어 있고, 어깨에는 이중여의두문

(二重如意頭紋)의 입상화문대(立狀花紋帶)가 배치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주형(珠形)이 달린 용통(甬筒)을 두고 큰 머리의 용뉴가 있는데,

모두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종신에는 당초문의 띠 아래 중판연화문(重瓣蓮華紋)으로 장엄된 유곽(乳廓) 4개를 두르고 유곽 안에 당초

문을 새겼으며,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표현하였다. 또 유곽 아래에는 12개의 연잎으로 장식된 당좌(撞座)가 원좌(圓座) 밖에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인 종신 중앙부에는 꽃송이 위로 구름을 표현하고 구름 위에 삼존(三尊)을 새겨 놓았다.

삼존 중 본존은 활짝 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협시상(脇侍像)은 서있는 모습으로, 모두 둥근 두광(頭光)을 갖추었으며 운미(雲尾)가 길게

위로 솟아 있다. 그리고 구름 위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보개(寶蓋)가 있어 고려시대 범종문양의 특징과 화려한 장엄미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종신에는 당좌와 당좌 사이에 3종류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에 따르면 “1222년(고종 9) 6월에 장인(匠人) 한중서(韓仲敍)가

주조하고 담묵선사가 주성한 부령(扶寧)의 청림사 종을 1853년(철종 4) 청림(靑林)에 복거하던 은사(隱士) 김성규(金性圭)가 발굴하여

내소사로 이현(移縣)하였다”고 한다. 내소사 동종은 고려후기의 특징인 입상 화문대를 갖추고 있으며, 표면의 묘사수법과 함께 정교하고

사실적인 주조기술로 한국 종의 양식을 잘 계승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보물 제291호 대웅보전(大雄寶殿)...

정면과 측면 각 3칸으로 조선 인조11년(1633)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위에 낮은 기단과 거의 다듬지 않은

덤벙주초를 놓고 집을 세운 다포계 건물로 외삼출목 내5출목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그렇지만 단청이 퇴색해 오래된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나 있어서 그 화려함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을 두고 안기둥은 민흘림을 두었으며, 귀솟음과 안쏠림 기법도 충실하게 이행되어 안정감 있어 보이게 해준다.

전면 기둥사이 문들은 꽃창살로 장식되어있고, 연화와 국화꽃을 섬세하게 하나하나 조각하였다...

 

대웅보전 안에는 주불로는 아미타여래를, 좌 보처에는 관음보살, 우 보처에는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우로 왔다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전북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층석탑(三層石塔)...

대웅보전 앞 3층석탑은 화강암을 재질로 한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세운 구조로, 전반적으로 세장한 모습이다.

이중 기단과 탑신(塔身)ㆍ옥개ㆍ상륜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하층기단은 하나의 석재에 지대석ㆍ면석ㆍ갑석을 각각 각출하고,

면석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모각하였다. 갑석 윗면은 상대중석(上臺中石) 받침이 높은 경사를 이루며, 중석 받침은 2단으로

각출하여 아래를 둥글게 말각하였다. 상층기단 역시 모두 1매의 석재로 면석에 우주와 당주를 하나씩 모각하고, 상대갑석은 탑신받침

쪽에 높은 경사를 주어 2단의 탑신받침을 말각 시켰으며, 갑석의 아래 갑석부연(甲石副緣)을 각출하였다.

탑신석과 옥개는 각1매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우주를 각 층마다 모각하였다. 전반적으로 탑신이 2층부터 급격하게 체감되어 세장한 고려

후기 석탑의 모습을 보여준다. 탑의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노반(露盤)을 제외하고 완전하지 않은 모습으로, 상륜에는 노반으로 생각되는

장방형의 받침돌 위에 둥근 형태의 작은 석재(石材) 2개를 올려놓았다.

이외 옥개석(屋蓋石)은 4단의 층급받침을 두고 낙수면을 반전시킨 형태로, 옥개석 상면에 탑신 받침을 새기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신라계의 석탑양식을 따른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내소사 조사당....

 

이 사찰의 역대 조사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만허당 경화대선사, 해안당 봉수대종사, 관해당 인주대종사, 학명당 계종대종사 등... 

 

범종각(梵鍾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로 1995년 당시 주지였던 철산스님이 건립하였다.

내부에 불전사물인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이  봉안되어 있으며, 사면에 벽체가 없는 개방된 모습으로 초석 위로 난간을 가설하였다.

1995년 일중거사가 쓴 편액이 걸려 있으며, 1929년에 쓴 ‘혼고대시주(昏鼓大施主)’ 현판이 있다.

종을 매달아 놓은 곳으로 종루(鍾樓)라고 부르기도 하며, 북을 매단 곳을 고루(鼓樓) 또는 고각(鼓樓)이라 하지만

대개 절의 사물(四物)이 함께 안치되어 있어 통칭해서 종각이라 부른다.

법고는 축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운판은 하늘을 나는 짐승, 목어는 물속에 사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한 소리를 내는 의식구이다.

 

경내의 건물들..

 

벽안당(碧眼堂)...1911년 관해선사가 선실로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회주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천왕문을 나서면...

 

능가사 내소사 사적비와 해안당대종사 행적비...

 

내소사의 전경...

 

 

< 채석강(彩石江) >

 전북 부안 변산반도 닭이봉 아래의 채석강은 1976년4월2일 전북기념물 제28호로, 2004년11월17일 명승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옛 수군(水軍)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며,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중국 당나라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기 좋고 빼어난 경관 때문에 사진 촬영이나 영화 촬영도 자주 이루어진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

 격포항에서 닭이봉 일대를 포함한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말하는데, 흔히 강으로 오해되기 쉬운 바닷가의 절벽이다.

 절벽은 마치 10,000권의 책을 쌓아 올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색이 조화를 이룬다.

 채석강이 끝나는 북쪽에 격포해수욕장이 있고, 닭이봉에는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위도와 칠산 앞바다를 볼 수 있다.

 채석강은 ‘변산 8경’중의 하나로 기이한 바위와 함께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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