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0년 10월 23일
○ 석골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 12년(560년)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혜공왕 9년(773년)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한때 석굴사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렀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영조11년(1753년) 함화(含花)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산신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이 중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경내의 중심에 자리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735년(영조 11)에 함화(含花) 스님이 중창한 법당이 1950년까지 보전되어 왔으나 6·25 직전에 공비토벌이란 이유로
소각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2년에 신도들의 성금으로 재건되었으며, 법당이 퇴락하자 1999년 선운스님이 지금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내부에는 불단의 중앙에 아미타삼존상과 후불탱을 봉안하고, 그 좌우에 지장보살상과 지장탱ㆍ신중탱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아미타삼존상은 모두 옥돌로 만든 석불이다. 중앙에 아미타 수인(手印)을 한 본존불이 있으며,
좌·우에는 화불(化佛)과 정병(淨甁)을 보관(寶冠)에 새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해 있다.
삼존상 외에 단독으로 봉안된 지장보살상은 2001년에 금동으로 조성되었으며, 불화는 모두 근래에 조성하여 봉안한 것으로
아미타후불탱은 1999년, 지장탱은 1994년, 신중탱은 2000년에 각각 조성되었다...
극락전 왼편에 위치한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86년에 건립되었으며,
건물의 전면 2칸에는 칠성각과 산신각 편액을 걸고 있으며, 내부에는 2001년에 조성한 칠성탱ㆍ독성탱ㆍ산신탱을 봉안하고 있다.
또한 독성탱 앞에는 이들 불화들과 함께 조성된 목조나반존자상이 있다...
절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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