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기행] 불보사찰 양산 영취산 통도사(通道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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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기행] 불보사찰 양산 영취산 통도사(通道寺)..

by 정산 돌구름 2008. 10. 20.
불보사찰 양산 영취산(靈鷲山) 통도사(通道寺)

 

탐방일자 : 2008년10월18일(토)

통도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법보 해인사, 승보 송광사와 함께 불보로 삼보사찰의 하나이다.

  신라 선덕왕15년(646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舍利), 가사(袈裟), 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하였다.

  이와 같이 불사리와 대장경이 최초로 봉안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절이었으며 이후 신라 율종(律宗)의 근본도량이면서

  신라 승단(僧團)의 중심지가 되었다.

  절의 이름은 승려가 되려는 출가자들이 모두 금강계단에서 득도하거나 모든 법을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또는 산의 형세가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 자장율사가 이곳 연못에 사는 9마리 용을 항복시키고 대가람을 이루었는데 1마리  용만 머물게 하여 절을

  수호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으며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구룡지(九龍池)가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처음에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한 규모가 작은 절이었으나 고려 선종대에 크게 확장되어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 부도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3층석탑 및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 등이 건립되었다.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1603년(선조 36) 송운대사에 의해 재건된 뒤, 1641년(인조 19)

  우운대사가 다시 중건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현재 가람배치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동서축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건물이 배열되어 있다.

  즉 대웅전(보물 제144호)과 금강계단을 비롯하여 응진전, 명부전 등의 상로전(上爐殿)과,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 장경각, 황화각,

  화엄전 등의 중로전(中爐殿), 영산전, 극락전, 약사전, 만세루, 영각 등의 하로전(上爐殿)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가람구조는 금강계단 중심에서 점차 대웅전 중심의 공간배치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조선시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주위에 회랑을 돌리지 않고 삼문(三門)을 두어 구분했는데 일주문(一柱門)은 완전히

  절의 영역 밖에 있으며 천왕문(天王門)과 불이문(不二門)을 들어서야 각 전각들에 이르게 된다.

  중요문화재로는 국장생석표(보물 제74호)·은입사동제향로(보물 제334호)·봉발탑(보물 제471호) 등이 있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5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4년(인조 22)에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중건하였다.

이 건물은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불이문 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된 합각(合閣)이 양 측면, 전면 3곳에 마련된 것이 이채롭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중기 불당(佛堂)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연구 및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방을 돌아가며 각각 다른 편액을 걸어 놓은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정면에 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란 편액은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있다.

것은 건물 뒷편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절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고 한다..

 

금강계단(金剛戒壇)..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聖地)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7세기 중반에 축조되었고, 그뒤 일곱번에 걸친 수리가 있어서 원래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금강계단은 석종형의 부도, 각 상(像)들의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모습은 바뀌었지만 문헌기록상 가장 오래된 계단이며, 같은 성격을 띤 금산사(金山寺)나 용연사(龍淵寺)의 것에 비해 규모가

크고 조형미도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계단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다.

계단 주변에는 석문(石門)과 석조 난간을 둘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4천왕의 입상이 있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계단의 하층 면석에는 총 32위(位)의 불ㆍ보살상을 새겨 놓았고, 상층 면석에는 불ㆍ보살 및 비천상을 부조(浮彫)로 새겨 놓았다.

하층보다는 상층의 양식이 유연하여 수법이 월등하며, 두손에 무기 대신에 천의(天衣) 자락을 쥐고 있는 듯한 신장(神將)의 방울눈이

인상적이다. 계단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형 부도는 복련과 앙련(仰蓮)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수법이 다른 조각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 동서 좌우에는 유연한 비천상을 부조로 나타냈고, 정면인 남쪽에는 구름 속에 보합(寶盒)의 향로를 조각하였다.

현재 대웅전과 더불어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의 솟을삼문과 같다..

 

3층석탑..

영산전 앞에 서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높이 약 350cm이다.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특히 아래층에는 안상(眼象)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올려 조성하고, 지붕돌 처마의 곡선처리와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도 탑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 기단의 맨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산전(靈山殿)..

하로전(下爐殿) 구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좌우에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배치되어 있다.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30년(1704) 송곡선사(松谷禪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맞배지붕으로 안과 밖에 그려진 벽화(壁畵)가 남아있어 주목을 끈다.

외벽의 벽화는 풍화(風化)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벽화는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특히 내부벽화의 하나인 다보탑(多寶塔) 그림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법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을 표현한 것으로 탑신(塔身)에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자리를 나누어 앉은 모습이다.

탑에는 화려한 영락(瓔珞)과 풍경(風磬)이 장엄되어 있고, 탑의 주위로는 보살과 제자, 오색의 구름이 펼쳐져 있다.

이외에도 벽에는 양류관음(楊柳觀音)과 나한(羅漢), 산수(山水)를 표현한 그림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된 천정에는 연꽃과 보상화문(寶相華文)이 그려져 있고, 대들보에는 황룡ㆍ청룡 등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화려한 장엄 속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으며, 주변으로는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을 봉안하였다.

이 팔상탱은 1775년(영조 51)에 그려졌는데 당시의 불화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그림이다.

이렇듯 통도사 영산전은 18세기 이후의 불화 화풍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전각으로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어 있다..

 

통도사 영산전 벽화 견보탑품도(見寶塔品圖)..

통도사 영산전 서쪽 내부의 전면벽을 차지하고 있는 이 벽화는 『법화경』 「견보탑품」을 도해한 변상도로서

국내에서는 유일한 벽화로 남아 있다.

그러한 까닭에 그 희귀성과 중요성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연구와 보전을 위해 각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벽화는 「견보탑품」에 나오는 다보탑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1716년에서 1800년 사이에 당시 활동하던 화승 지연(指演) 문하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며, 조선 후기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거대한 보탑 안에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나란히 분반좌(分半座)하여 앉아 있는 이불병좌(二佛竝座)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탑 전체에는 온갖 영락과 보배로 된 풍경이 장엄되어 있고, 그 주변과 탑위에는 상서로운 오색구름을 장식하여 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또한 탑 좌우로 보살과 제자들이 대칭구조를 이루며 천상에서 하강하듯 내영(來迎)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지극한

신심을 일으키게 한다..

 

좌우의 벽화...

극락보전(極樂寶殿)..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369년(고려 공민왕 18)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그후의 중건과 중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내부에 목조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극락보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외벽의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이다.

배의 모습은 앞을 용머리(龍頭), 뒤를 용꼬리(龍尾)고 나타내었고, 앞뒤에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합장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비록 근세에 그려지기는 했으나 구도와 내용면에 있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뛰어난 짜임새와 벽화로 인해 중요성을 인정받아 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음전은 통도사 중로전(中爐殿) 구역에 있는 3개의 법당 중 하나로 가장 앞쪽에서 남향하고 있다.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1725년(영조 1) 용암대사(龍岩大師)가 초창하고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내부에는 목조관세음보살상과 1858년(철종 9)에 조성한 관음탱을 봉안하였다.

벽에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에 머물고 있는 관음보살과 남순동자를 나타내기도 하였고, 32응신(應身)을 나타내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하였다. 대들보에는 사자문 단청과 하늘을 나는 비천(飛天)이 그려져 있다.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왕문(天王門)..

하로전(下爐殿) 구역으로 들어가는 이 문은 고려 충숙왕 6년(1337) 취암대사(翠岩大師)가 처음 세운 것으로,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조선 후기에 다시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아무런 장식 없이 네모난 나무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건물규모에 비해 작은 편이다.

건물은 중앙 칸을 통로로 하고 좌우 칸에 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경남유형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주문은 충렬왕31년(1305) 초창되었으나 중창은 알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1770년(영조46) 두섬대사(斗暹大師)가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의 다포식 9포작으로, 맞배지붕에 겹처마인데 네 귀에는 활주를 세웠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글씨인 ‘영취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또한 두 기둥에 걸어둔 주련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즉, ‘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통도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종찰(佛寶宗刹)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1987년 10월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약 80여 평 규모의 독립 전시관을 신축하게 되었다.

1987년 개관 이후 사용되던 전시관은 전시 유물의 증가와 박물관 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보다 넓은 전시 공간의 필요성이 요구되어

1994년부터 정부의 보조와 사찰 자체 비용을 투입하여 최신 시설과 장비를 갖춘 대규모의 박물관 건물을 신축하여

1998년 10월에 새롭게 문을 열게 되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물은 국보 1점, 보물 8점을 비롯하여 지방유형문화재 32점을 포함한 1만여 점으로

이는 통도사 전래의 유물을 비롯하여 수집과 기증을 통하여 입수된 것이다..

 

 

통도사 경내 아래쪽에 있는 부도원은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사리탑과 탑비를 봉안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통도사 주변과 산내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1993년 가람을 정비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여

부도원(浮屠院)으로 조성한 것이다.

현재 부도원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 60여 기와 탑비 및 중수비ㆍ공덕비 등 석비(石碑)가 60여 기가 즐비하게 줄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