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기행] 청량산 문수사의 가을 풍경, 그리고 고창읍성
○ 여행일자 : 2011. 11. 13 (일)
○ 기상상황 : 구름 많고 약간 쌀쌀함
○ 여 행 자 : 부부
○ 여행코스 : 고창 청량산 문수사~고창읍성
○ 여행지 소개
<청량산 문수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백제 의자왕4년(644년)에 자장이 창건하였다.
사찰 연기 설화에 의하면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이 산이 당나라에서 수행하였던 청량산과 같은
느낌을 주므로 이곳의 석굴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어느날 땅 속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자 그곳을 파보니 문수석상이 나왔다. 이에 그곳에 문수전을 건립하고 절 이름을 문수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607년(선조40)에 중건하였으며, 1653년(효종4)에 성오와 상유가 대웅전을 중건하고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1764년(영조40)에는 신화와 쾌영이 선운사에서 이곳으로 와 대웅전을 중수하고 양진암을 창건하였다.
1835년(헌종1)에는 우홍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문수전·한산전·금륜전·만세루·요사·산문 등이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된 문수사 대웅전은 건립연대가 미상이지만 1823년(순조23)의 1차 중수 이후 1876년 고창현감 김성로의
시주로 묵암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건평은 66㎡이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된 문수사문수전에는 이 절의 연기 설화와 관련된 문수석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석상은 상체가 큰 불상으로 좌대와 하반신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 특색이며, 높이 2.25m이다.
부속암자로는 1618년(광해군10)에 인해가 창건하고, 1690년(숙종16)에 종희가 중건한 내원암·양진암이 있다.
문수산은 청량산(淸凉山) 또는 축령산(鷲嶺山)이라고도 부른다.
문수사 단풍나무숲은 2005년9월9일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되었다.
문수산(청량산) 입구에서부터 문수사 입구 부도밭(전북유형문화재 154호)까지의 진입로(약 80m) 양쪽 일대에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는 숲이다. 이 숲의 단풍나무들은 수령 100~400년으로 추정되고, 크기는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30~80㎝, 높이 10~15m 정도 된다.
이들 중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2~2.96m에 이르는 노거수도 많다. 이 지역에는 단풍나무 외에도 개서어나무와 까치박달나무·고로쇠나무·
졸참나무·누리장나무·상수리나무·팽나무·느티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함께 자란다. 또 팥배나무·사람주나무·산딸나무·물푸레나무·쪽동백·
쇠물푸레나무·박쥐나무·작살나무·초피나무·고추나무·쥐똥나무·으름·다래덩굴 외에도 조릿대 군락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 숲에는 꿩의바람꽃·둥근털제비꽃·남산제비꽃·애기괭이눈·현호색·노루귀·개구리발톱·노루오줌·천남성·개다래·으름덩굴·뻐꾹나리·
꽃무릇·원추리·하늘말나리·물봉선 등 다양한 종류의 초본류도 있어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루고있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문수사의 사찰림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풍나무숲이다. 가을단풍이 들 무렵이면 부처님 영산회상을 화려하게
장식한 듯 장엄하다고 한다. 단풍나무숲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창읍성(高敞邑城)>
1965년4월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고창의 방장산을 둘러싸고 있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시대 때 고창 지역이 '모량부리'라 불렸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1453년(단종1)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계유년에 호남의 여러 고을 사람이 축성하였다고 성벽에 새겨져 있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 5,858㎡이며, 동·서·북의 3문과 치(雉) 6곳, 옹성(甕城), 수구문(水口門) 2곳 등이 남아 있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관아를 비롯해 22개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전란에 모두 소실되어버렸고 현재 북문 공북루, 서문 진서루, 동문 등양루와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업무를 처리하던 작청, 동헌, 객사, 풍화루, 내아, 관청, 향청, 서청, 장청, 옥사 등 일부만 복원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성밟기놀이가 전해오는데, 여인들이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돈 다음 성 입구에 그 돌을 쌓아둔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내에는 1871년에 세운 대원군척화비가 서 있고 읍성 앞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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