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너븐숭이4.3기념관과 북촌포구에서
본문 바로가기
제주여행/제주여행

제주 너븐숭이4.3기념관과 북촌포구에서

by 정산 돌구름 2025. 4. 2.

제주 너븐숭이4.3기념관과 북촌포구에서


2025년 4월 2일, 제주 너븐숭이4.3기념관과 북촌포구에서~

제주올레길 19코스가 지나는 너븐숭이4.3기념관에서 내려서면 해동포구를 지나 북촌포구에 이른다. 

조천면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해변 마을인  북촌리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지만 서우봉과 접해 '해동'이라는 마을이 서쪽에, 또 산간 선흘리 방향으로 '억수동'이란 마을이 흩어져 있기도 했었다.

북촌리는 일제 때에는 항일운동가가 많았고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활성화 됐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47년 8월 경찰관에 대한 폭행사건과 1948년 6월 우도지서장 살해와 납치사건이 북촌리 청년들에 의해 벌어지면서부터 늘 토벌대의 주목을 받았다.

4․3의 와중에는 많은 청년들이 토벌대의 횡포를 피해 피신하면서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의반 타의반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1948년12월16일에 첫번째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민보단을 조직해 마을을 지키고 토벌대에 협조하던 24명의 주민들이 느닷없이 군인들에 끌려가 동복리 지경 '난시빌레'에서 집단 총살 당한 것이다.

이 엄청난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1949년 1월 17일,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민간인학살이 북촌리에서 자행됐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학살사건이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서쪽 들과 밭에서 자행된 것이다.

이날 북촌리의 마을에 있었던 불가항력의 남녀노소 400명 이상이 한 날 한 시에 희생되었다.

명절처럼 제사를 한날 한시에 지내는 북촌리에는 너븐숭이 애기무덤 등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많은 흔적들이 있다.

북촌포구에는 마을사람들이 세운 재래식 등대인 등명대(도대불)가 남아있으며 북촌마을 사람들의 무사를 기원하기 위한 신당인 가릿당(구짓머루당), 등대 등이 있다.

해안가에는 검은 현무암이 깔려있고 인근에는 북촌환해장성이 위치한다.

제주기념물 제49-5호로 지정되어 있는 북촌환해장성은 해안도로 개설 등으로 인해 거의 훼손되어 250m 정도가 남아 있는 정도이다.
북촌환해장성은 고려 시대 때 삼별초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을 쌓고 군사를 거느렸으며, 그 이후에도 관군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북촌포구에서 400m 정도 떨어진 앞바다에는 무인도인 다려도가 위치하고 있다. 

섬의 모습이 물개를 닮았다고 해서 달서도라고도 한다.

온통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섬으로 3~4개의 독립된 작은 섬이 모여 이 섬을 이룬다.

거센 파도와 해풍에 의해 바위가 갈라지는 절리 현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작은 섬과 섬 사이는 소규모의 모래벌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의 집단 도래지로 유명한 곳으로 매년 12월에서 2월 사이에 적게는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마리의 원앙이 찾아든다. 

2009년 7월 제주시가 기존의 관광명소 이외에 제주시 일대의 대표적인 장소 31곳을 선정해 발표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