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담긴 남원 광한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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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담긴 남원 광한루원..

by 정산 돌구름 2023. 4. 14.

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담긴 남원 광한루원..


2023년 4월 14일, 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담긴 남원 광한루원..

비가 내렸지만 푸르름이 더해가는 풍경은 마치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명승 제33호(2008년1월8일)로 지정된 광한루원(廣寒樓園)은 남원역 근처의 시내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고, 그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이라고 한다.

지금의 광한루는 1170년(문종 24년) 전중감(殿中監)이었던 황공유(黃公有)가 무신의 난으로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온 뒤, 그의 후손 황감평이 이곳에 일재(逸齋)라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때부터 유래된다.

광한루의 시초는 세종 1년(1419년) 황공유의 아들인 황희(黃喜)가 한 때 남원에 유배되었을 당시, 일재의 옛터에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긴 것에서 비롯된다.

1444년(세종 26년)에는 전라도관찰사 정인지(鄭麟趾)가 광통루의 아름다움을 월궁(月宮)에 비유하여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것에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1461년(세조 7년) 부사 장의국(張義國)은 누원 일원에 요천강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를 만들었다.

1582년 정철(鄭澈)이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또 다시 은하의 못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방장섬에는 녹죽(綠竹)을 심었는데, 영주섬에만 영주각을 건립하고 섬과 섬 사이에는 사다리꼴 다리로 연결하였다.

이로써 광한루원은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누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1607년(선조 40년)에 작은 누각이 복구되고, 1639년(인조 17년)에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현재의 광한루를 복원하였다.

1794년(정조 18년)에는 부사 이만길(李萬吉)이 영주각을 재건하였다.

1869년(고종 6년) 광한루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누의 북쪽에 다락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1925년 수리공사 때에 누의 동쪽 구석에 직실(直室)을 마련하였다.

1963년에는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호수 주위를 정비하여 국악원, 월매(月梅)의 집과 방장섬에 육모정을 세웠으며, 이듬해인 1964년에는 방장섬에 방장정(方丈亭)이 건립되었다.

1965년에는 영주각을 단청하고, 1969년에는 호수를 확장하고 수중누각 완월정을 세우는 한편, 지금까지 북쪽을 정문으로 써오던 것을 후문으로 삼고 따로이 남쪽에 정문을 신축,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는 현판을 써 걸었다.

1983년에는 다시 경역을 확장하여 누원 주변을 정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 광한루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춘향전」으로 더욱 유명하여졌는데, 1931년에 지어진 춘향사(春香祠)에는 ‘만고열녀춘향사(萬古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리고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는 춘향제가 성대히 열린다.

누원에는 호수와 오작교·삼신산(三神山)·춘향사(春香祠)·충혼각·남원국악원·수중누각인 완월정(玩月亭)과 광한루(보물 제281호) 등이 펼쳐져 있다. 

누원 북쪽으로는 교룡산(蛟龍山)이 우뚝 서있고, 남쪽에는 금괴같이 보배롭다는 금암봉(金巖峰)이 있으며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은하수에 가로막힌 견우성과 직녀성이 칠월칠석에 만난다는 오작교를 가설하였다.

배를 띄워 상한사(上漢沙)라 이름하고 베틀바위를 호수에 넣어 지기석(支機石)이라 불렀다.

오작교에는 4개의 궁륭식 무지개 구멍이 있어 양쪽 호수의 물이 통하고 있다.

광한루의 전·후면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새로 마련한 남쪽 정문 문루에는 청허부(淸虛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옥경(玉京 달나라의 서울)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부’의 현판이 걸려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있으며,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상징한다.

광한루 현판은 신익성(申翊聖)이, 호남제일루·계관·영주각의 현판은 1855년(철종 6년) 부사 이상억(李象億)이 본관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으며, 이 중 ‘계관’ 현판은 동학운동 때에 강대형(姜大炯)이 다시 써 걸었다.

광한루원의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 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는데, 이 돌다리에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아름다운 풍취와 풍류로 인해 강희맹·김시습·김종직·정철 등 당대문호의 시문이 수두룩하다.

광한루원은 은하수(銀河水)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地上)의 낙원인 삼신산(三神山)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宇宙觀)을 표현한 한국 제일의 누원(樓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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