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기행] 벽화산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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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기행] 벽화산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승탑..

by 정산 돌구름 2021. 9. 10.

의령 벽화산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승탑..


2021년 9월 9일, 의령 보천사지에서

의령 수암사 가는 길에 잠시 둘러본 보천사지, 보물이라지만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다.

보물 제373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된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寶泉寺址 三層石塔)..

높이 4.57m의 2층 받침돌 위에 세워진 단면 4각의 고려시대 3층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받침돌 주위에는 길고 큰 돌을 놓아 넓은 탑구(塔區)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보물 제266호)과 비슷하다.

아래층 받침돌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하나의 돌로 다듬어 4장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바닥돌의 네 모서리에는 바닥돌이 바깥쪽으로 벌어져 석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양쪽의 바닥돌이 모두 걸리도록 직각의 턱을 판 굄돌을 받쳐 특이하다.

면석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두툼하고, 긴 널돌 2장을 좌우 가장자리에 얹고서 그 사이에 작은 널돌 2장을 끼우고, 거의 수평인 윗면 가운데 부분에는 2단의 굄을 두었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모서리 기둥만을 새긴 널돌 2장 사이에 작은 널돌을 끼운 구조로 가운데 기둥은 생략하였다.

덮개돌은 2장의 얇은 널돌을 놓았는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은 수평으로 한 가운데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2단의 굄을 마련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각 층이 알맞은 비율로 줄어 균형미를 제법 갖추었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뚜렷하게 새겨졌지만 다른 조각은 없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의 낙수면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 내려 네 귀퉁이에서 약간의 반전(反轉)을 이루었다.

상륜부(相輪部)는 조그마한 노반(露盤)만 남아 있지만, 최근까지도 그 위에 불꽃 모양의 장식인 수연(水煙)이 얹혀 있었다고 한다.

이 석탑은 받침돌의 구조에 특별한 수법을 더하였고, 석재의 결구(結構)가 간소화된 면이 있지만 규율성을 잃지 않았고 균형감과 안정감이 있는 편이다.

1967년에 도굴로 인해 무너져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곧바로 해체, 보수하여 복원하였다.

당시 3층 몸돌에서는 지름 6.5㎝, 깊이 13.5㎝의 찰주공(擦柱孔)이 확인되었다.

윗층 받침돌 안의 적심토(積心土)에서는 동제(銅製) 소불상(小佛像)과 함께 광배 모양의 투각동편(透刻銅片), 흙으로 만든 탑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보물 제472호(1968년12월19일)로 지정된 의령 보천사지 승탑(寶泉寺址 僧塔)

화강암으로 된 높이 3.35m, 8각 원당형(圓堂形)에 속하는 기본형을 따른 통식(通式)의 승탑으로 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인 하대석은 중간에 2단의 각형을 각출(刻出)하여 상하로 양분하고, 위쪽에는 구름과 용무늬가 천각(淺刻)되었다.

아래쪽에는 각면에 안상(眼象) 1구(區)씩을 음각하였으며, 중대석은 하단 가까이 각대(角帶)를 돌리고 각면에 우주형(隅柱形)과 안상을 모각(模刻)하였다.

상대석은 각형 2단 받침 위에 복판(複瓣) 16엽(葉)의 앙련(仰蓮: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을 돌리고 윗면에 3단 굄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8각이며 각면에 우주형이 있고 앞면에 문비(門扉)가 양각되었을 뿐이다.

옥개석은 두꺼운 편으로 옥리(屋裏)에는 2단의 받침이 있고 정상에도 2단의 몰딩이 있어 그 상단 각면에 안상이 조각되었고, 상륜부는 모두 없어져 남은 것이 없다.

이 승탑은 각면이 내만(內灣)된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조식(彫飾)이 간략하여 품위가 있으나 안상을 많이 이용한 점과 하대석의 구름과 용무늬는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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