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홍문의 풍경이 아름다운 구례 천은사(泉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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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홍문의 풍경이 아름다운 구례 천은사(泉隱寺)~

by 정산 돌구름 2021. 5. 15.

수홍문의 풍경이 아름다운 구례 천은사(泉隱寺)~


2021년 5월 14일, 수홍문의 풍경이 아름다운 구례 천은사(泉隱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인 천은사는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이다.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년) 덕운선사와 인도에서 온 승려 스루가 창건하여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 전화로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79년에 단유(袒裕)가 중건하여 천은사라 하였다.

절 입구의 수홍문(垂虹門)은 무지개가 드리워 내린 듯 계곡과 함께 아름다운 운치를 띤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극락보전 연등과 철쭉, 천은저수지와 녹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다.

무더운 날씨에 아름다운 천은사를 둘러보고 떠난다.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 천은사(泉隱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인도의 덕운(德雲)스님이 중국을 통해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 헌강왕 1년(875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의하면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唐 僖宗 乾符二載 緣起相形而建設 德雲因勢而增修(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광해군 2년(1610년)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뒤이어 숙종 5년(1679년)에도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절이름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중건 당시 감로사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로부터는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이 사찰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서 절에 큰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그 때 조선 4대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智異山泉隱寺(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 넣은 현판을 일주문에 걸게 한 뒤로는

다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신운(神韻)의 물소리가 연연히 들린다고 전하여 내려온다.

숙종 41년(1715년)에는 팔상전에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고, 영조 25년(1749년)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하였다. 

영조 50년(1774년) 5월에는 혜암선사(惠庵禪師)가 그 전 해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중수하면서 절을 새롭게 중창하였다.

혜암선사는 수도암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에게 도움을 구하여 2년간에 걸친 중창불사를 원만히 이루어냈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이 1774년에 중건한 것으로 보물 제2024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 응진당(應眞堂), 칠성각, 삼성전(三聖殿), 첨성각(瞻星閣), 감로전, 불심원, 회승당(會僧堂), 보제루(普濟樓), 방장선원(方丈禪院), 일주문, 수홍문(垂虹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수홍문은 무지개가 드리워 내린 듯 계곡과 함께 아름다운 운치를 띤다.

극락보전 그외 문화재로는 보물 제924호 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 보물 제1340호 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546호 금동불감(金銅佛龕), 보물 제1888호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보물 제1889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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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774년 무렵에 처음 세워진 건물로 알려져 있다.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단독으로 모셔져 있으며 그 밖에 근래에 봉안된 영산후불탱화 및 팔상도 4폭이 있다.
막돌로 석축겸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우고 포작을 올렸으며 공포형식은 내, 외 2출목의 다포양식으로 쇠서 단부를 날카롭게 처리하였다.

주간포(柱間包)는 각 간 모두에 1구씩 배치하였고 가구는 양측면으로부터 충량을 걸은 5양형식,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인 여덟장면을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인데, 팔상 탱화를 봉안한다.

삼성전은 관음전 우측(향좌)에 위치한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현재 ‘삼성전’과 함께 ‘칠성전’, ‘산왕각’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안에는 치성광여래상과 독성상, 산신상, 동자상 2체가 봉안되었으며, 불화로는 최근에 그려진 칠성탱화 및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있다.

천은사 관음전은 극락보전 뒤로 계단을 올라가면 여러 전각 중 가운데 있는 전각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관음전인데 사찰에 따라서는 원통전, 대비전, 보타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그 협시로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모시며 그 뒤에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나 수월관음도 혹은 아미타 후불탱화를 봉안한다.

보물 제2024호(2019년5월23일) 천은사 극락보전(極樂寶殿)..

천은사는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 주된 전각이며, 극락보전은1774년 혜암선사가 중수하면서 세운 조선 중기 이후의 전통적 다포계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높직한 방형의 장대석으로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올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준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민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걸고 공포를 구성하였다.

포작은 외 3출목, 내 4출목의 다포양식으로 상부에는 계두와 연봉이 붙어 있고 중앙칸 기둥 위로는 봉두장식이 있는 등 전반적으로 화려하다.

주간포(柱間包)는 각 간 모두에 2구씩 배치하였고, 가구는 5양구조로서 종량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창호는 정면 3간 모두 3분합문으로 중앙칸은 소슬빗꽃살, 양 협간은 정자살과 빗살(중앙부)양식으로 되어있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과 그 협시보살들을 모신 법당으로 사찰에 따라서 미타전(彌陀殿), 아미타전(阿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 수광전(壽光殿)이라고도 한다.

안에는 불단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상이 있고 그 뒤에 보물 제924호인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 밖의 불화로는 삼장탱화, 신중탱화 및 후불벽화로서 수월관음도가 있는데, 삼장탱화는 1776(영조52년)에, 신중탱화는 1833년(순조33년)에 봉안된 것이다.

1886년(고종23년)의 〈개금불사동참대시주〉와 근래의 〈법당상량문〉이 있고, 그 밖에 동종과 괘불함도 있으며, 극락보전 앞에는 최근에 조성한 석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