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조망, 결초보은 속리산 말티재 전망대..
2020년 7월 8일, 캠핑여행 4일차, 충북 보은 속리산 말티재 전망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속리산관문인 말티재에 이른다.
전망대에 오르면 12구비 감도는 짜릿한 조망을 맛볼 수 있다.
속리산관문은 2017년 11월 말티재 정상부에 1층 터널, 2층 아치형공간으로 조성됐다.
2층에는 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장을 비롯해 전시관, 커피숍과 말티재 12구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말티재는 충북 보은군 보은읍과 속리산면 갈목리를 연결하는 해발 430m 고개로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 산5-12번지이다.
말티고개라는 현재의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구경 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엷은 박석 돌을 깐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의 말티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또,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에 외속리면 장재리에 있던 별궁(현 대궐터)에서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 하여 여기에서 말티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하고,
다른 설에 의하면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으로 말티재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 된다는 설, 말 고개라는 뜻의 말티재가 되었다 라는 설이 있다.
속리산에는 오랫동안 존재한 박석 길이 유명하였는데 이 박석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길을 닦도록 명하고 얇은 돌을 운반하여 3~4리나 깔은 것이 시초라 한다.
그 뒤 조선 세조가 속리산을 오를 때에도 진흙으로 된 길이라서 행차를 위해 얇은 박석을 운반하여 길을 정비하였다 한다.
그 뒤 인도의 형태로 존재하였지만 현대적인 형태의 등산로로 개설된 것은 1924년 이었다.
당시 충북도지사 박중양은 속리산의 사찰들을 방문하기 위해 속리산을 방문했는데 진흙탕으로 된 길을 보고 분개하여 당시 보은군수 등을 종용하여 말티고개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포장하게 하였다.
이때 최초로 자동차와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길이 개통되었다.
그 뒤 1967년 도로폭을 15m 정도 확장시켰으며 1980년대에는 인도를 깔기도 했다.
지명은 한자로 '마현(馬峴)' 또는 '마치(馬峙)'로 기록되어 존속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마현박석(馬峴薄石)은 고을 동쪽 15리에 있다.
고개 위에 얇은 돌이 3~4리 정도 깔려 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고려 태조가 일찍이 속리산에 거둥했을 적에 닦은 어로(御路)다.'라고 전한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해동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 '마치(馬峙)'가, 『대동여지도』에 '마현(馬峴)'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마치(馬峙 말틔)는 속리면 갈목리 서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와 현대로 오면서 말치(말티, 말재)의 후부지명소인 '치(티, 재)'의 한자 표기가 '현(峴)'에서 '치(峙)'로 변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말치고개의 이명칭으로 '말치', '말재', '말티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말치고개의 동쪽 골짜기에는 '말치'라는 촌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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