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기행] 천년고찰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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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기행] 천년고찰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by 정산 돌구름 2020. 7. 1.

천년고찰 금산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2020년 6월 28일, 금산 여행 중에 찾은 진악산 보석사..

천년고창 보석사([寶石寺)는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헌강왕 11년(885년)에 조구(祖丘)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그 뒤에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願堂)으로 삼았으며, 1912년부터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진영각, 심검당(尋劒堂), 산신각, 응향각(凝香閣), 체실(體室),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의 좌상을 모셨는데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극치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진영각은 휴정(休靜), 유정(惟政), 영규(靈圭)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나 최근에 영정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이 절의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는 공주의 청련암(靑蓮庵)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로서 1839년 5월에 금산 군수가 절 입구에 세운 것이다.

영규가 순국한 내용을 적은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서 자획이 뭉개지고 땅에 묻혔던 것을 1945년 정요신(鄭堯臣)이 찾아서 다시 세웠으며, 높이는 약 4m이다.

절 입구 둘레 11m의 큰 은행나무는 수령 1천년을 훨씬 넘긴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건주 조구가 제자 5인과 더불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하며,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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