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끝자락 백두대간 수정봉~구룡봉 산행, 그리고 구룡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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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9

지리산 끝자락 백두대간 수정봉~구룡봉 산행, 그리고 구룡계곡..

by 정산 돌구름 2019. 7. 17.

 

지리산 끝자락 백두대간 수정봉~구룡봉 산행, 그리고 구룡계곡..


7월 셋째주 화요일 아침, 광주명산산악회를 따라 산행길에 나선다.

7시50분, 각화농산물시장 앞을 출발한 버스는 광주-대구고속도를 타고 강천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남원IC를 빠져나와 19번 국도와 24번 국도를 타고 구불구불 여원재에 도착한다.

9시25분, 여원재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주지봉을 보기 위해 잠시 임도를 따라가다가 주지사 옆에서 주지봉에 올랐다가 내려선다.

파란 하늘에 조망이 트여 건너편으로 고남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원시가지도 바라보인다.

다시 되돌아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입망치에 내려섰다가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수정봉에 올라선다.

능선을 따라가다가 덕운봉에서 백두대간길과 헤어져 우측 지능선을 따라 잡목을 헤집고 구룡봉으로 향한다.

구룡봉을 바로 전방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건너편 구룡봉에 올랐다가 약간의 착오로 직진하여 내려선다.

희미한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면 지리산둘레길 1구간과 합류하여 덕치리 정자나무 쉼터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 구룡폭포에 이르면 어제 내린 비로 폭포수가 우렁찬 소리를 내려 흘러내린다.

구룡폭포에서 구룡계곡을 따라 내려서 구룡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도로를 따라 구룡분소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었지만 백두대간과 구룡계곡을 따라 걷는 산길에 기분 좋은 하루였다. 

산행일자 : 20197월 16()

기상상황 : 맑은 후 흐리고 세찬 소나기(아침에는 구름 조금 맑은 날씨였으나 오후에는 흐리고 소나기 24~29)

산행인원 : 광주명산트레킹클럽 45- 회비 25,000

산행코스 : 여원재~주지봉~입망치~수정봉~덕운봉~구룡봉~둘레길 1구간~구룡폭포~구룡계곡~육모정~주차장(전북 남원)

구간별소요시간 : 13.37km(트랭글 GPS), 5시간20분소요

  여원재(09:25)~주지암갈림길(09:45)~주지봉(09:50~10:00)~대간갈림길(10:10)~입망봉(10:35)~입망치(10:53)~헬기장(11:10)

  ~수정봉(11:20~30)~고인돌바위(11:45)~덕운봉(11:55~12:00)~739봉(12:20~40)~구룡봉(12:45)~지리산둘레길 1구간(13:05)~

  포장마차(13:10)~천룡암(13:25)~구룡폭포(13:30~40)~비폭등(13:55)~지주대(14:05)~유선대(14:13)~챙이소(15:42)~서암

  (14:25)~구룡탐방지원센터(14:35)~육모정(14:40)~구룡분소 주차장(14:45)

주요 봉우리 : 수정봉(804.7m), 덕운봉(745m), 구룡봉(728.2m)

교통상황

 - 각화동(07:50)~광주-대구고속~강천산휴게소(08:15~40)~남원IC~19번, 24번 국도~여원재(09:20)

 - 구룡주차장(17:25)~18번 국도~서남원IC~순천-완주고속~남원JC~광주-대구고속~각화동(18:50)

산행지 소개

남원 운봉읍, 주천면,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리산 끝자락의 수정봉(水晶峰 804.7m)은 백두대간 상의 한 봉우리로서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수려한 산이다.

산 중턱에서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면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의 평면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룬다. 

남원 운봉읍 준향리와 이백면 과립리의 경계에 양지산성이 있고, 운봉읍 준향리와 이백면 양가리의 경계에 음지산성이 있는데  이 두 산성을 합쳐 준향산성(城)이라고 부른다. 

양지산성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m 정도로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원 구룡계곡은 지리산의 품에 있지만 지리산의 능선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지리산국립공원공단에서 구룡계곡길을 일부 정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 길이 지리산둘레길 제1구간(주천~운봉)과 이어지면서 소위 ‘구룡폭포 순환코스’가 새롭게 생겨났다.

구룡계곡은 지리산 서북능선의 만복대에서 흘러내린 계류와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능선 계류가 모여 한데 어우러진 심산유곡이다.

수려한 산세와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어지는 이 계곡은 길이가 약 3km로 구곡경의 구룡폭포가 있다.

남원 8경 중 제1경인 구룡폭포 아래에는 용소라 불리는 소가 형성되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원천폭포로도 불리는 구룡폭포는 구룡계곡 아홉명소중 으뜸으로 폭포 자연미도 빼어나지만 동편제 소리꾼들의 성지로 통한다.

송만갑, 박초월, 강도근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구룡폭포의 웅장한 소리에 맞서 소리를 다듬어 냈다고 전한다.

구룡구곡은 일명 용호구곡으로 제1곡 송력동폭포, 제2곡 육모정 앞의 용소, 제3곡 학서암, 제4곡 구시소(서암), 제5곡 유선대, 제6곡 지주대, 제7곡 비폭동, 제8곡은 경천벽, 제9곡은 구룡폭포이다.

제1곡 송력동폭포는 주천쪽 지리산 국립공원 매표소에 조금 못미치고 있으며, 이곳을 흔히 약수터로 불린다.
제2곡 용소는 매표소를 조금 오르면 높이 5m의 암벽에 이삼만이 썼다는 용호석문이란 글이 음각되어 있는 절벽 아래 흰 바위로
 둘러싸인 못으로 불영추라 한다.

제3곡 학서암은 육모정에서 300m 지점에 있는 황학산 북쪽에 암석층이 있는데 이 암벽 서쪽에 조대암이 있다.

이 조대암 밑에 조그마한 소가 바로 4곡인데, 학들이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해서 학서암이라 한다.
제4곡 구시소는 학서암에서 300m쯤 오르면 유난히도 흰바위가 물에 닳고 깎여 반들거리고, 구시처럼 바위가 물살에 패여있다.
또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가 하면 건너편 작은 바 위는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서암이라고 하며, 일명 구시소로 더 알려져 있다.
제5곡 유선대는 구시소에서 1km 지점에 45도 각도로 급경사를 이룬 암반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곳에 깊은 못이다.

유선대 가운데에 바위가 있는데 금이 많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신선들이 속세 인간들에게 띄지 않기 위해서 병풍을 치고 놀았다 하여 은선병이라고도 한다.
제6곡 지주대는 유선대로부터 500~600m쯤 거리에 구룡산과 그밖의 여러갈래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이 여기에서 모두
 합류한다.

둘레에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제일 뾰족한 봉우리가 계곡물을 내지르는듯하여 그 봉우리 이름을 지주대라 한다.

크고 작은 폭포, 그리고 소와 담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작은 기암이 하늘을 떠받칠 기세로 솟아있다.

제7곡 비폭등은 지주대로부터 왼쪽으로 꺾이면서 북쪽으로 1km지점에 거의 90도 각도로 깎아지른 듯한 문암이라는 암석층이 있는데, 반월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름다운 물보라를 그리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비폭동은 평소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비가 온 후에 보아야 제맛이라고 한다.

제8곡 경천벽은 비폭동에서 600m 올라가면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우뚝 서있고 바위 가운데가 대문처럼 뚫려 물이 그 곳을 통과한다해서 석문추라고도 한다.

경천벽은 비폭동에서 급경사를 오르는데 계곡이 워낙 험하여 길을 산으로 돌린 탓에 볼 수가 없다.

제9곡 구룡폭포 교룡담은 남원8경 중 제1경으로 경천벽에서 500m 상류 골짜기 양켠의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있다. 

멀리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두갈래 폭포를 이루고, 폭포 밑에 각각 조그마한 못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 두 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 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서로 꿈틀 거린 듯하므로 교룡담이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폭포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 들며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폭포의 장쾌한 모습이다.

구룡계곡의 백미인 구룡폭포는 4월초파일이면 아홉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 한곳씩 자리를 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백두대간 여원재(女院峙)..

24번 국도가 지나는 여원재는 기원전 삼한시대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 그 궁터가 남아있는 계곡, 여원치 마애여래불에얽힌인의 정절에 대한 이야기,

호국혼의 전설을 간직한 아흔아홉 구비 고개, 주지봉 산신단에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들어

준다는 등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 속에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성계는 꿈에 나타난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갯마루 암벽에 여상을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 즉 여원낙조(女院落照)는 운봉팔경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길가에는「雲城大將軍(운성대장군)」이 우뚝 서있다.

 

 

여원재에서 숲길로 들어서면 우뚝 솟은 암봉, 주지봉이 바라보인다.. 

 

 

잠시 숲길로 들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주지사 갈림길에서 대간길을 벗어나 주지사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가다가 작은 석불이 있는 곳에서 우측 숲길로 들어서 지능선을 따라 오른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주지봉이 다가온다..

 

 

주지봉 산신단의 작은 석불.. 그 뒤로 멀리 백두대간 고남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지리산의 마지막 정기가 머문 자리라고 주지봉(住智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건너편으로는 가야할 능선, 그 뒤로 수정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첩첩히 바라보이는 남원의 산들..

 

 

동쪽으로는 멀리 남원시가지도 바라보인다..

 

 

북쪽으로는 고남산(846.8m)이 바라보이고, 멀리 만행산 천황봉(909.6m)이 우뚝 솟아있다.

 

 

고남산을 배경으로..

 

 

주지봉에서 내려서 뒤돌아본 풍경..

 

 

 

 

임도로 내려서 바로 앞 절벽을 오르면 대간길에 합류한다..

 

 

가파르게 올라선 첫 봉우리..

 

 

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입망봉(갓바래기봉)으로 불리는 700m봉에 이른다.. 

 

 

바로 옆 정상에는 잡초무성한 무덤만 있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내려서다가 부드럽게 안부에 내려선다..

 

 

예전에 갓바래기재라고도 불리었다는 입망치.

좌측으로는 운봉읍 엄계리로 내려서고, 우측으로는 이백면 과립리로 내려서는 안부 사거리이다..

 

 

치에서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잡초 무성한 헬기장..

 

 

바람도 없는 습한 무더위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힘겹게 올라선 수정봉..

 

 

전면으로 조망이 트여 운무에 잠긴 정령치와 고리봉, 좌측으로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바라보인다..

 

 

해발 804.7m의 수정봉(水晶峰)은 남원시

운봉읍과 주천면, 이백면의 삼 개 읍면에 걸쳐 있다..

 

『산경표』에서 말하는 백두대간, 1정간 13정맥 모두는 하천을 둘러싼 하천의 유역분지 분수령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백두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은 한반도 물줄기를 동서로 가르는 주맥으로서 가장 큰 분수령맥이다.

이런 백두대간이 수정봉에 다다르면 더 이상 능선을 타고 지리산으로 갈 수가 없다.

수정봉에서 덕산저수지로 빠지는 낙동강물줄기와 노치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요천, 섬진강물줄기를 건널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이 좌우 물줄기가 나누어지는 노치마을 길을 따라서만이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평지가 산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분수계를 따라 운봉읍과 주천면의 경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가 산이 되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정확하게 지키는 구간인 것이다..

 

수정봉은 운봉분지를 에워싸는 북서산릉의 한 봉우리로 화강암이 변성받은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심층풍화된 남원화강암의 운봉분지에 비해 풍화에 강한 암질 산으로 남아있다..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피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수정봉의 노치마을에 옛날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하려는데 신기하게도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는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연산골 갈림길, 노치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잠시 후 고인돌 바위를 지난다..

 

 

대간길과 구룡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 그러나 구룡봉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없다..

 

 

조그만 능선봉인 덕운봉, 하얀 표지만이 붙어있다...

 

 

다시 5m가량을 뒤로 내려서 움막 옆으로 나있는 지능선 길을 따라간다..

 

 

잠시 내려서면 가야할 구룡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잡초무성한 능선을 따라가면 소나무 숲길이 나타나 구룡봉 바로 앞의 739m봉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능선 길목에서 잠시 우측으로 비켜나 있는 구룡봉.

잠시 냐려서 우측길로 가야하나 직진하여 희미한 길을 따라간다..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서면 지리산 둘레길 1구간과 합류하여 좌측으로 이어간다..

 

 

잠시 내려서면 좌측으로 덕치리 회덕마을이 바라보인다..

 

 

예전에는 포장마차가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징검다리를 건너 도로에 이르면 지리산 둘레길과 구룡폭포 갈림길..

 

 

바로 아래로는 정자나무 쉼,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구룡교에서 우측 구룡사 방향으로 들어선다.

물론 직진하여 주차장에서 구룡폭포로 내려서도 되지만 우측 구룡사 방향으로 들어선다..

 

 

천룡암에서 우측 구룡사 방향으로..

 

 

구룡폭포 가는 길은 예전에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위험하였으나 지금은 데크 계단길로 정비하였다..

 

 

구룡폭포의 상류지역은 물이 깨끗하고 맑아 남원의 유명한 소리꾼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판소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일제때 명창 송만갑도 이곳에서 득음했다고 한다..

 

 

또, 이곳은 기운이 영험하여 많은 무당들이 굿을 하였고 도인들이 많아 도인골이라 했다.

지금도 사찰 뒤편에는 소나무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성황당이 있다.

 

 

방장 제일동천..

 

 

약 30m 길이의 구룡폭포는 원천천(元川川) 상류 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로 원천폭포라고도 부른다..

 

 

구룡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구곡(九龍九曲)이라 하는데 구룡폭포는 그중 제9곡으로 구룡구곡의 백미이다.

가파른 절벽에서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가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의 폭포이다.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용 두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이라고도 한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전망데크에 서면 깊은 협곡이 내려다보이고..

 

 

암벽에 오르면 용트림하는 소나무와 두부모같은 바위..

 

 

 

 

7곡인 비폭동(飛瀑洞)..

 

 

반월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름다운 물보라를 그리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비폭동은 평소 수량이 풍부하지 않지만 어제 내린 지리산의 폭우로 오늘은 제법 수량도 풍부하다..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계곡을 끼고 오르내리는 길..

 

 

출렁다리를 건너면..

 

 

제6곡 지주대에 이른다..

 

 

크고 작은 폭포, 그리고 소와 담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작은 기암이 하늘을 떠받칠 기세로 솟아있다..

지리산의 또 다른 협곡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어지는 계곡..

 

 

제5곡 유선대..

 

 

계곡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펼쳐져 있는데 바위에 금이 그어져 있어 선인들이 여기에서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주변의 절벽은 선인들이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기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하여 은선병이라고도 한다..

 

 

 

 

 

 

 

 

 

 

 

 

잠시 내려서면 챙이소..

빠른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챙이(키)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4곡 구시소..

떨어지는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하여 사투리인 구시를 써서 구시소라 부른다.

예전에는 구유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1960년대 발생한 큰 홍수로 인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서암은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건너편의 작은 바위는 중이 끓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계곡길을 따라간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 도로에 이르면 구룡탐방지원센터..

 

 

도로변 데크길을 따라 내려서면 용호서원(龍虎書院)..

1927년 원동향약계(1572년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향약계)에 소속된 유림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서원이다.

설립 당시에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영정을 봉안하고 주자를 배향하였으나 이후 한말의 우국지사 연재 송병선

비롯하여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 김재홍, 입헌 김종가로 배향 인물이 바뀌었다.

해마다 음력 3월15일 지역의 유림이 참여하여 제향을 올린다.

서원 건물들은 1974년 보수되었으며, 사우인 경양사, 동재·서재 건물인 목간당과 수성재 그리고 솟을 삼문의 대문 등이 있다.

 

 

 

 

육모정(六茅亭)..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름이 붙었으며, 원동향약 관련 유적으로, 향약계원들이 모임을 하였던 곳이었다고 한다.

1961년 수재로 유실되었다가 1997년 복원되었다.

옛 육모정은 구룡계곡 옆 큰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쪽에 복원되어 있다..

 

 

육모정과 마주하고 있는 춘향묘(春香墓)..

남원시조성한춘향전’의 주인공 성춘향의 무덤으로 1962년 현위치에서 '성옥녀지묘'라 새겨진 지석(誌石)이 발견되어 묘역을

단장하였다고 전해지며, 1995년 정비작업을 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춘향이 실존인물이 아닌 만큼 이 무덤은 시신이 있는 진짜 무덤은 아니다.

무덤 입구에 한자로 '춘향묘(春香墓)'라 쓰인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지나 3단으로 구성된 1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봉분을 갖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는 '만고열녀 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라고 쓰인 비석과 망주석, 상석이 놓여 있다..

 

 

암벽의 방장제일동천..

 

 

용호석문의 암각도 보인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한창 공사중인 주차장에서의 뒤풀이..

 

 

무더위에 힘든 산행이었지만 시원한 소맥으로 갈증과 피로를 날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