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불이 모셔져 있는 사찰, 무안 약사사(藥師寺)..
전남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842-9) 무안버스터미널 건너편 골목에 위치한 약사사를 찾았다.
터미널에서 2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
약사사는 고려 태조 1년(918년) 남악사(南岳寺) 또는 남학사(南鶴寺)로 창건하였다고 하나 문헌 근거는 없다.
그러나 현 위치에 있는 석불의 규모로 보아 이 자리에 고려시대부터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남학사가 있었던 자리에 1972년 10월 오욱이 보살이 삯바느질로 마련한 가옥을 시주하고 신도들의 시주로
대우사(大又寺)를 지었는데, 1983년에 이를 중창한 사찰이 약사사이다.
2004년1월5일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대웅보전과 선열당, 화장실을 복원, 개축하여 현재의 가람을 완성하였다.
전라남도의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받아 천년고찰 기도도량으로 거듭나 산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원래 약사사가 있던 마을을 대사동(大寺洞)이라고 불렀는데 이름만큼이나 불교와 관련된 자료가 많았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전국문화유적총람>에는 이곳에 약사여래불, 이인사지 5층석탑 및 당간지주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는 약사석불입상과 광배석십삼대장상(光背石十三大將像)만이 남아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8호(1990년12월5일)로 지정된 약사사 석불입상(石佛立像)은 왼손에 약항아리를 들고
오른손에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약사사 석불입상(石佛立像)은 왼손에 큰 약항아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없어서 지장보살로 보이기도 한데 머리묶음을 인위적으로 깎아 낸 흔적이 보인다.
얼굴 표정은 경직되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투박하고 조각 기법의 일부에서 퇴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옷자락이 어깨에서 허리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옷주름은 옆에서 물결무늬를 이루면서 계단식으로 처리되었다.
무릎 앞에서는 양편으로 퍼져나가는 물결무늬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는데 담양 분향리 석불입상과 비슷하다.
불상 뒷면에는 광배(光背)를 달았던 3개의 구멍이 있으나 시멘트로 막아 버렸으며, 지금의 광배는 최근 새로 깎아 만든 것이다.
비교적 좁은 얼굴, 괴체화된 모습, 움츠린 듯한 어깨와 짧은 목 등의 표현으로 볼 때 고려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사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해탈문(解脫門)..
해탈에 이르는 문호(門戶) 또는 방법으로 일체 만유(萬有)가 공(空)하다고 관(觀)하는 공(空)해탈문, 상대적 차별이 없다고
관하는 무상(無相) 해탈문, 일체 구할 것이 없다고 관하는 무원(無願) 해탈문을 말하는데, 이를 삼해탈문이라고도 한다..
해탈문 편액, 해탈문 위 상량문이 새겨져 있다..
해탈문 옆에 서있는 무안 약사사 석불입상 안내문..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의 줄임말로 중생을 질병에서 구원하여 준다는 부처이다.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이 석불의 높이는 310㎝, 폭은 120㎝, 두께는 45㎝이다.
소발(素髮 민머리 형태의 두발장식)에 육계(肉계 불상의 정수리 부분에 상투처럼 솟아있는 모양)가 희미하게 표시되어 있다.
긴 귀(耳)에 얼굴은 무표정하다.
약사사 약사전(藥師殿)..
약사전은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봉안하며, 동쪽을 바라보며 건축된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고 고통을 없애주는 여래불로 동방유리광세계(東方瑠璃光世界)를 관할하는 부처이다.
좌측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우측에 월광보살(月光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한다.
그리고 12신장(神將)으로 옹위하며 주위는 탱화로 장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약사불에 대한 신앙이 깊었으므로 많은 사찰에 약사전이 있다..
약사전 편액(扁額)..
편액은 1975년(을묘년) 가을에 남농(南農) 허건(許楗) 화백이 쓴 서체로 되어있다..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8호(1990년12월5일) 약사사 석불입상(石佛立像)..
왼손에 큰 약항아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민머리 위에 상투모양의 머리묶음이 없어서 지장보살로 보이기도 하는데 머리묶음을 인위적으로 깎아 낸 흔적이 보인다.
얼굴 표정은 경직되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투박하고 조각 기법의 일부에서 퇴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옷자락이 어깨에서 허리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옷주름은 옆에서 물결무늬를 이루면서 계단식으로 처리되었다.
무릎 앞에서는 양편으로 퍼져나가는 물결무늬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는데 담양 분향리 석불입상과 비슷하다..
약사전 내부.. 천불전을 연상케 한다..
좌측의 신중탱.. 그 옆으로 암벽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2신장(神將)으로 좌우를 옹위하고 있다..
약사전의 전경..
약사전은 노천에 있던 석불입상을 모시기 위해 1972년 지은 것을 1994년 지금의 건물로 새롭게 지었다고 한다..
약사전 우측에 새롭게 단청한 대웅보전(大雄寶殿)...
이 대웅전은 과거에 지장전이었는데 지난 2004년1월1일 새벽 방화로 소실되어 신축하면서 대웅보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대웅보전 편액..
대웅보전 삼존불..
삼존불과 닫집, 삼존불 뒤 탱화는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라 양각된 조각으로 되어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 좌측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우측의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고 있다..
좌측의 불단 의 탱화 또한 약각되어 있다..
우측에는 탱화가 없이 나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이 모셔져 있다..
인로왕보살은 죽은 자의 영혼을 맞이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로서,
사찰에서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나 49재 때 망자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한다고 한다..
대웅보전과 약사전..
용왕전..
물을 상징하는 비와 바람을 주관하는 용왕신을 모시는 곳으로 본래는 우물이었으나 그 위에 전각을 짓고 단을 설치하였다..
범종각과 칠층석탑..
범종각에 범종과 함께 두는 법전사물은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이다.
법고는 바닥에 두고 운판과 목어는 보나 도리에 매단다..
칠층보탑은 약사칠불여래를 상징하는 칠층석탑으로 국운창성을 기원하며 1983년(갑자년)에 건립하였다..
칠층석탑의 높이는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제석천왕의 하늘인 도리천의 33궁을 의미하는 33자이다.
탑의 모양은 금강보탑을 모사하였으며, 각 층마다 부처님을 조각하였다.
기단의 사면에는 여의주를 가진 용과 구름을 조각하였고, 바닥의 네모서리에는 거북이로 장엄하였다..
일주문은 해탈문과 1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일주문과 해탈문이 주출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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