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기행] 전남문화재자료 제130호, 문정공 조광조의 죽수서원(竹樹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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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기행] 전남문화재자료 제130호, 문정공 조광조의 죽수서원(竹樹書院)

by 정산 돌구름 2015. 8. 24.

전남문화재자료 제130호, 문정공 조광조의 화순 죽수서원(竹樹書院)

 

○ 탐방일 : 2015년 8월 22일

○ 소재지 : 전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산 15-3(학포로 1786-45)

○ 죽수서원(竹樹書院) 소개

 문정공(文正公)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혜강공(惠康公)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전남도문화재자료 제130(1986929)로 지정되었다.

 1570(선조 3년)에 능성현령 조시중(趙時中)의 협조로 지금의 자리에 서원을 짓고, 죽수(竹樹)라는 사액을 받았다.

 전남지방에서는 순천의 옥천서원에 이어 두번째로 사액받은 서원이다.

 조광조는 1519(중종 14년)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성현에 유배되었다.

 이때 조광조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함께 했던 양팽손도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능성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자연히 만나 서로 의리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유배된 지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고 죽자,

 양팽손은 몰래 시신을 거두어 화순 쌍봉사 골짜기에 장사를 지내고 마을에 초가집을 지어 제자들과 함께 제향하였다.

 그러다가 1568(선조 1)에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이듬해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함께 조정에서는 조광조를 향사할 서원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은 것이다.

 1613년에 중수하였고, 1630년 유림들과 조정의 김장생(金長生) 등이 뜻을 모아 양팽손도 추배하였다.

 그러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려 겨우 단 을 마련하여 제향하여 왔다.

 1971년 제주양씨 후손들이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원하였다.

 1983년 다시 한양조씨 조국조(趙國朝)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이 본래의 위치인 모산리에 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9년에 동재를, 1994년에 관리사를 신축하였다.

 경내는 중앙에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내삼문과 좌우로 둘러진 담장이 있어 제향(祭享) 구역과 강학(講學)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배치 형태는 내삼문과 좌우로 둘러진 담장에 의해 제사지내는 곳과 교육하는 곳으로 분리된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