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져버린 마이산 암마이봉~봉두봉 산행, 그리고 탑사와 은수사
○ 산행일자 : 2015년 4월 26일(일)
○ 기상상황 : 맑음(아침에는 싸늘하였으나 낮에는 한여름 날씨 11~26℃)
○ 산행인원 : 부부
○ 산행코스 : 남부주차장~은수사~암마이봉~은수사~탑사~봉두봉~비룡대~고금당~남부주차장(전북 진안)
○ 산행코스 : 약8.5Km(GPS), 산행시간 5시간5분소요
남부주차장(07:30)~금당사(07:35~45)~탑사(08:05)~은수사(08:15~20)~천황문(09:28)~암마이봉(08:50~09:10)~
천황문(09:30)~은수사(09:35~40)~탑사(09:45~10:05)~봉두봉(10:25~40)~제2쉼터(10:55)~정맥갈림길(11:00)~
부부시비 갈림길(11:05)~쉼터(11:10~20)~비룡대(11:40~45)~고금당(12:05~15)~남부주차장(12:35)
○ 주요봉우리 : 마이산(암마이봉 686m), 봉두봉(540m)
○ 교통상황 : 광주 문흥(06:10)~호남고속~88고속~남원JC~순천-완주고속~임실IC~17번~49번~30번국도~남부주차장(07:20)
○ 산행지 소개
마이산(馬耳山 686m)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에 있는 산이다.
영취산에서 장안산, 마이산을 거쳐 주화산까지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63.3km)을 경계로 남쪽은 섬진강, 북쪽은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진안에 이르러 북쪽 금남정맥과 남쪽 호남정맥으로 나누어진다.
전북 진안은 호남의 지붕이라고 불릴 만큼 평균 해발이 290m인 고원지대이며, 이 고원지대의 상징이 마이산이다.
마이산은 686m인 암마이봉과 678m인 숫마이봉이 마치 말귀처럼 보여 생긴 이름이다.
마이산은 산 전체가 지방기념물 제66호로, 그리고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탑사는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령 방면 합미산성 일원까지 포함하여 1979년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10월 명승지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은 가까이서 보면 군데군데 크고작은 구멍들이 벌집같이 뚫려 있고, 산 덩어리 전체가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수성암으로 형성되어 있다. 아주 옛날 이 지역은 호수였는데, 그 증거로 바위에서 쏘가리 형태의 민물고기 화석과
고동, 조개화석 등이 발견되어 암질이 담수성 역암으로 판명됐고, 지각변동에 의해 바닥이 솟아 봉우리가 된 것이다.
내부에서 표면으로 진행한 풍화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타포니(Tafoni) 지형이라고 도 한다.
마이산은 신라때 서다산, 고려때 용출산, 조선초에는 속금산이라 불리다가 조선 태종때부터 마이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마이산은 음과 양을 갖춘 부부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안읍내 어느 방면에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은 이름이 철에 따라서 네 가지이다.
봄에는 먼산에서 마이산을 바라보면 안개가 끼어 마치 호수 같고 봉우리가 구름위로 떠올라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오를듯한 기상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바위산에 조금씩 자라는 초목이 단풍을
이루니 가을을 만끽할 수 있고 바위등선에 나무들이 줄서있어 말의 목등에 난 털과 같아 말목과 흡사하다 하여 마이봉이라 부른다.
또, 겨울에 눈이 내리면 정상에는 눈이 없어 꼭 먹물 묻은 붓 두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하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마이산에는 조선 태조가 임실군 성수산에서 돌아가다가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80여개의
돌탑을 거느린 탑사 등이 있다.
입구 3km 진입로에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경에 남부주차장 입구에서 진안군 주관으로 벚꽃
축제가 열려 군민 화합의 축제 한마당이 되고 있다.
마이산 벚꽃은 해발 400m에 위치해 있어 전국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피는 곳 중에 한곳이다.
보통 마이산 벚꽃은 진해보다 20일, 서울보다 7일정도 늦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3㎞의 벚꽃길은 만개시에는 장관을 이룬다.
마이산은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섬진강과 금강 발원지이고 도립공원인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또한, 말의 귀와 흡사하게 두 개의 암봉이 우뚝 솟은 마이산은 벚꽃산행지와 탑사 나들이로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는 4월에 가장 많이 찾으며 가을산행, 여름산행 순으로 인기가 있어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3위에 랭크되어 있다.
○ Prologue
4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른 아침, 맑은 날씨에 오랜만에 마이산을 찾았다.
내심 마지막 벚꽃을 기대하며 떠났지만 역시나 벚꽃은 이미 져버린 후였다.
남부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발하는데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뜸하고 아직까지는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은수사를 거쳐 암마이봉에 오른다. 200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천황문에서 정상까지 폐괴되어 암마이봉 정상까지는 처음이다.
천황문에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맑은 하는에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정상에 오른 사람이 한사람도 없어 셀카를 이용해 마음껏 여유로운 흔적을 남긴다.
다시 내려와 탑사에 이르니 많은 인파가 몰려있고, 우리는 봉두봉과 비룡대, 고금당을 지나 남부주차장에 내려선다.
남부주차장 일주문 옆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발한다..
벚꽃은 한잎 두잎 흔적만 남기고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한가한 상가의 풍경이다..
한적한 상가를 지나 오르면..
금당사가 바라보인다..
호수안의 석탑과 미륵불이 아름답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122호인 금당사석탑..
금당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금당사 대웅전 목불좌상..
높이 1.69m로 대웅전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 중 본존불만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금당사(金塘寺)는 금당사(金堂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년)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년)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년) 중국 승려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ㆍ지장전ㆍ삼성각ㆍ대방(大房) 등이 있다..
금당사를 빠져나와 산행을 시작한다..
도로를 따라 오르면..
거대한 벚나무가 반긴다..
탑영제에서 바라본 마이산..
탑영제 물놀이시설..
1994년 진안군에서 세운 부부시비(夫婦 詩碑)와 명려각(明麗閣).
1769년(영조 45년) 10월13일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인 남원부 유천마을(서봉방)에서 태어나 1786년 혼인한 부부(夫婦)시인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砬)과 삼의당(三宜堂) 김해 김(金)씨를 기리기 위하여 부부시비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마이산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으로 되어 있듯이, 밝을 명(明)자도 양의 일(日)과 음의 월(月)로 된 글자인 明으로 하고,
삼의당 김씨의 시(詩) 작품 내용이 참으로 곱고 아름다워 고을 려(麗)자로 하여 명려당(明麗閣)으로 하였다 한다.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砬)은 세종년간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삼의당(三宜堂) 김(金)씨는 성종년간에 사관(史官)을 지낸 김일손의 후손이다.
시비(詩碑) 아래 부분에 두 夫婦가 주고받은 詩 한 귀절을 새겨두었다.
담락당 하립이 삼의당을 위해 지은 시는,
서로 만나다 보니 달나라의 선녀이구려 전생의 인연으로 분명 이 밤 가져온 걸 속세의 중매란 분분할 뿐 우린 천정의 배필이여..
삼의당의 화답 시는,
신랑과 선녀, 한 날 한 시 한마을에 나서 다시 화촉의 인연을 맞았거늘 어찌 다 이 밤의 기쁨이 한낱 우연이리오.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는 우리 역사상, 여성으로서 가장 많은 257편이나 되는 詩文을 남긴 삼의당 김씨이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 오르면..
잠시 후 탑사의 영역에 들어선다..
탑사와 수많은 탑들이 바라보이고..
80여개의 크고 작은 돌탑이 있는 탑사(塔寺)..
암마이봉은 가까이서 보면 군데군데 크고작은 구멍들이 벌집같이 뚫려 있고,
산 덩어리 전체가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수성암으로 형성되어 있다..
탑사 탐방은 암마이봉 산행 이후로 미루고 우측으로 올라 은수사로 들어선다.. 은수사의 화려한 풍경..
마이산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사찰인 은수사는 언제 누가 창건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찰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태조 이성계와 관련지어져 있다.
조선 초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그 뒤 절터에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奄)이라 했다.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李主簿)가 중창하였고, 이때 은수사(銀水寺)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정면 5칸, 층면 3칸의 대적광전(大寂光殿)..
은수사에는 이전에 약사전과 극락전이 있었는데 이를 대적광전에서 함께 수용하였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데 좌우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한다..
은수사 법고(法鼓)는 지름 1.88m, 길이 1.80m로서 국내 최대의 북으로 1983년에 제작된 것이다.
북통은 은행나무 64쪽을 맞추어 64패를 상징하였고 좌우의 가죽은 수소와 암소의 가죽을 사용하여 음색을 음양으로 조화시켜
소리가 매우 웅정한 편이다. 익산 농악사의 이금봉씨가 6개월의 노력 끝에 제작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무량광전(無量光殿)..
무량수경에서 유래하여 극락세계의 성립과 아미타불인 무량수무량장불이 출현하게 된 인연을 밝히므로 불상은 아미타불을 모신다..
은수사를 지나 천황문으로 오르는 계단..
한적한 긴 계단을 올라서면..
천황문 쉼터에서 바라본 지나온 계단..
10여년간 폐쇄되었던 암마이봉 오르는 길이 열려있다..
마이산 천황문에서 암마이봉 정상까지 0.6㎞ 구간 등산로가 전면 개방되고 잘 정비되어 있다.
진안군은 마이산을 2004년 10월, 훼손된 식생을 복원하기 위해 2014년10월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갔다.
암마이봉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연차적으로 3년여에 걸쳐 5억7,000만원의 사업비로 훼손된 식생을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되도록 복원사업을 실시했다..
2012년부터 2014년 10월까지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비 총14억 4,000만으로 암마이봉 등산로 6개구간 시설물 설치와
천황문, 화엄굴 주변을 정비해 안전 및 편의시설을 갖춰 2014년10월11일 제한적 개방으로 하루 100여명씩이 다녀갔다..
그러나 2014년 12월 4일 암마이봉 등산로 결빙으로 탐방객 안전을 위해 등산로를 폐쇄했으며, 지난 3월16일부터 전면 개방하였다..
가라픈 오르막을 올라서면 조망이 확 트여 진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의 숫마이봉..
우람한 모습이 드러난다..
가파른 오르막 계단..
드디어 암마이봉 정상이다..
말의 귀를 닮은 두 봉우리 중 암마이봉이 10년 만에 그 신비로운 산길을 열었다..
마이산은 1979년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10월 명승지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한참을 머물렀지만 한사람도 오르지 않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정상에서 바라본 진안읍..
정상에서 한참을 보낸 후 암마이봉을 내려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엄굴(華嚴窟)..
마이산의 중턱 천황문에서 수마이봉 쪽으로 100m가량 올라간 곳에 암벽의 침식 활동으로 형성된 자연 동굴이다..
이 화엄굴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흘러나오며,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약수를 마시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수마이봉의 화엄굴은 수마이봉 복부에 해당하는 지점에 뚫려 있는 굴로 입구는 높이 약 15~17m, 폭 약 4~5m 정도이다.
동굴의 안쪽은 깊지 않으나 막다른 곳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옛날에는 신비의 약수라고도 하여 마시기도 했다..
굴 안은 서늘하고 V자를 거꾸로 세운 듯한 천장에는 길쭉한 천장돌이 박혀 있다.
예전에는 촛불을 밝힐 수 있는 촛대가 있어 치성을 드리는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다시 긴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은수사로 내려와 탑사로 향한다..
천연기념물 제386호(1997년12월30일)로 지정된 은수사 청실배나무..
일명 아그배 또는 독배라고도 하며, 아랫쪽에 높이 50㎝ 내외의 원형 석축단이 있고, 윗부분은 1m 너비의 시멘트로 덮여 있다..
태조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마친 뒤,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 씨앗이 싹이 터 이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이 지역민들은 은수사를 중심으로 태조의 업적과 명산 기도에 얽힌 전설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마이산제와 몽금척(夢金尺)을 시연한다..
이성계와 은수사..
은수사(銀水寺)란 이름은 조선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산신도각 오른쪽에는 마이산신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산신제단에서는 매년 10월 11일이면 진안 군마이제전위원회에서 마이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은수사 전경..
은수사와 숫마이봉..
은수사에서 탑사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가 있다...
수직의 절벽면에 형선된 타포니(tafoni)..
다신 내려선 탑사..
마이산 석탑은 1885년 이갑용(李甲用)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을 생식하며 수도하다가 1900년 무렵부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갑용처사는 1920년대 초에 초가 암자를 지어 돌미륵불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목조함석지붕의 인법당과 산신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당시에는 절 이름도 없었으나 그가 평생 동안 만불탑을 축성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탑사(塔寺)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갑용처사는 1957년에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동안 108기의 탑을 완성시켰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이 탑들은 ‘마이산탑(馬耳山塔)’이라는 이름으로 전라북도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신각(靈神閣)은 원래 나한전으로 지었던 곳인데, 현재는 영신각으로 고쳐 편액을 달았다.
영신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주춧돌은 덤벙주초이고 원형기둥 위에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주련이 없고 중앙은 4분합이고 좌우 협칸은 3분합이며 빗살창을 하고 있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그려져 있고 외벽화에는 불벽에 화훼도와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아울러 탑사의 전경을 담은 마이산 전경이 있고 소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의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마루는 우물마루이다..
대웅전 바로 아래, 암마이산 벼랑 밑에 미륵존불(彌勒尊佛)...
전체 높이는 약 6m로 부처의 모습은 대체로 원만한 상을 지니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참배를 받고 있다..
섬진강 발원지 용샘..
대웅전은 정면과 측면 각 3칸이고 오른쪽 옆으로 1칸을 덧붙였으며,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원래는 함석지붕의 목조건물이 인법당 겸 불당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수년전 대웅전으로 수리하여 그 면모를 갖췄다.
내부의 수미단 위에는 석가삼존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중앙의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로서 왼쪽에는 육환장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보관에 화불이 있으나 지물을 들고 있지 않는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상의 뒤쪽에는 후불탱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는 칠성탱과 신중탱이 배치되어 있다.
칠성탱의 화기에는 ‘탑사 중창불사 1988. 5. 18’이라 하여 1988년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신중탱은 화기에 의해 불기 2520년(1976년)에 주지 원암(圓庵)과 왕선(旺善)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뒤편의 산신각(山神閣)은 정면 1칸, 측면 1칸에 풍판을 달고 있으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자연석 기단에 원형주춧돌과 원형기둥을 하고 있으며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산신각은 대웅전 동쪽에 있으며 지형이 좁아 겨우 안치되어 있는 건물로 편액에는 ‘산신각’이라 써 있고, 주련은 없다..
수미단 위에는 산신상과 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뒤를 오르면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지탑(天地塔)은 기단부에서는 한 몸통으로 축조되어 올라가다가 탑의 1/2쯤 되는 곳에서 남북으로 나뉘어 두 개의 탑으로 쌓여졌다.
탑의 상륜부는 편편한 돌을 뾰족하게 쌓아올린 첨두원추형 석탑으로 높이가 13.5m에 이른다.
이 탑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막돌허튼층쌓기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설계가 정확하고 결구가 치밀하며 웅장하고 보기에도 튼튼하고 우람하게 하늘높이 솟구쳐 있다.
이 탑은 방위가 매우 특이하게 정북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15도 가량 기울어진 방향으로 수직으로 축조되어 있다.
이렇게 15도 가량 남쪽으로 트여있어 수평으로 탑을 배열하여 이 방향으로 들어오는 살기를 막자고 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성호사설에 의하면 마이산에서 계룡산으로 이어져 한양, 개경에 이르는 방향이 천지탑의 축조방향과 대체로 비슷하다.
이것은 곧 마이산의 허한 서쪽을 통하여 들어온 살기가 한양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이중 안전장치로도 추정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천지탑이 위치한 곳은 직립한 절벽이 가까이 있고 앞뒤가 막혀 이런 곳은 사람이 살 자리가 아니다.
<택리지>에서도 ‘산형(山形)은 주위의 산이 너무 고압(高壓)하여 해가 늦게 뜨고 일찍 빠지며 밤에는 이따금 북두성도 보이지 않는
곳을 가장 꺼리는데, 이런 곳은 음랭하여 안개와 장기, 그리고 잡귀가 침입해서 사람을 병들게 하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탑사가 있는 곳은 절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므로 불탑이 들어설 수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입지상으로 볼 때 지기(地氣)의 허(虛)와 흉(凶)을 보전하는 비보탑(裨補塔)이 들어설 가능성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천지탑은 당연히 비보탑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방탑..
전체적으로 원추형과 기둥 모양의 탑들은 자연석을 아무런 장치나 이음새 없이 쌓은 것이면서도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천지탑·오방탑·월광탑·일광탑·약사탑·중앙탑·월궁탑·용궁탑·신장탑 등으로 이름하였는데 각각 나름대로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천지탑은 가장 중심되는 탑으로서 말 그대로 천지를 상징하여 음양으로 나뉘어지는데 바라보는 쪽에서 왼쪽이 음, 오른쪽이 양이다.
높이로 보면 아래가 음이고 위가 양이 되어 음양순으로 올라가는데 서로의 흡인력이 생겨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천지탑 앞에 있는 오방탑은 오행을 상징하며 천지탑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천지탑 주위에 일렬로 세워진 32기의 탑들은 신장탑인데 천지탑을 보호하는 신장 역할을 한다.
그 밖에 대웅전 바로 아래에 있는 탑이 용궁탑이고 그 앞에 중앙탑이 있다..
중앙탑은 일렬로 선 탑 한가운데 있으며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기는 하지만 무너지지는 않아서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결국 이 탑들은 우주 원리와 음약오행설에 바탕을 두어 진법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인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 동백나무.. 붉은색 동백나무에서 흰색을 띤 동백이 함께 피어있다..
탑사를 나와 봉두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암마이봉의 또다은 모습..
잠시 부드러운 오르막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봉두봉으로 오른다..
연두빛 봄의 향연..
봉두봉 정상..
정상은 묘지가 있는 헬기장이다..
바로 아래로는 탑영제, 그리고 멀리 광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봉들..
건너편 비룡, 그 뒤로 고금당이 바라보인다..
봉두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비룡대로 향한다..
조망이 트이는 암릉..
암마이봉을 배경으로..
암마이봉의 웅장함을 뒤로하고 내려선다..
가야할 비룡대, 멀리 광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제2쉼터를 지나 내려선다..
갈림길 안부, 직진은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고 좌측 산허리를 따라간다..
잠시 내려서면 좌측으로는 부부시비로 내려서고 고금당 전망대는 직진이다..
능선에 올라서 잠시 쉬어간다. 시원스런 맥주 한캔으로 갈증을 풀어본다..
비룡대가 다가오고..
철쭉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비룡대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비룡대에서 바라본 암마이봉과 그 뒤로 고개를 내민 숫마이봉, 좌측으로는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삿갓봉..
비룡대에서..
고금당으로 이어지는 능선, 멀리 광대봉..
당겨본 암마이봉..
가야할 고금당을 당겨본다..
남부주차장 방향으로는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잠시 내려서면 남부주차장 갈림길..
능선 아래 산허리를 따라 고금당으로 향한다..
나옹암은 금당사로부터 500여m 떨어진 수직 절벽 위에 위치한 토굴로 고승 나옹스님이 득도(得道)한 곳이다.
이곳은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암(懶翁庵)이라고 한다.
원래 금당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일명 고금당(古金塘)이라고도 한다..
나옹(懶翁 1320-1376)은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법명은 혜근이며, 속성은 이씨다.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간 인도승 지공화상으로부터 법을 받아 1358년 귀국하여 고려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1371년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보우, 무학등 높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토굴가 등 많은 시와 가사를 남기고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현재의 금당사는 임진왜란 이후 옮겨 지은 사찰이며, 본래의 금당사 즉 옛 금당사는 나옹암의 자리이다.
금당사는 2002년부터 이 토굴위에 나옹암을 복원하면서 3층 탑 모양의 암자를 짓기 시작했다.
1층에는 요사채가 들어섰고 2층에는 황영조 선수의 이름을 딴 `영조방'이, 그리고 3층에는 기도법당이 꾸며졌다..
고금당에서 바라본 암마이봉..
비룡대와 암마이봉..
당겨본 암마이봉..
고금당을 내려서며 바라본 비룡대, 비룡대로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잠시 내려서면 갈림길에서 남부주차장으로 향한다..
임도가 이어지는 산길..
한가하던 아침과는 달리 상가지역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매표소 앞을 지나..
가득찬 주차장에서 차량을 회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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