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기행] 보물 제829호, 강진 보은산 금곡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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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기행] 보물 제829호, 강진 보은산 금곡사 삼층석탑..

by 정산 돌구름 2013. 3. 12.
보물 제829호, 강진 보은산 금곡사 삼층석탑..

 

탐방일 : 2013년3월10일

소재지 : 전남 강진군 군동면 파산리 보은산

금곡사 삼층석탑(三層石塔) 소개

 보물 제829호(1985년1월8일)로 지정되었으며, 대웅전 앞에 있다. 높이가 532㎝로 비교적 규모가 큰 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나, 기단과 탑신의 여러 군데가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에 두터운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마다 판돌을 끼워 두었는데 그 중 한 면에는 판돌이 없이 작은 돌들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모서리기둥을 본떠 새기지 않고, 직접 세운 것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에서도 볼 수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각 면마다 감실(龕室)을 팠는데, 목탑에서의 감실은 불상을 모셔두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석탑에서는 이처럼 형식적인 조각만 하게 된다.

 두툼한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밑면에는 6단씩의 받침을 두어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백제양식이 보이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기단에서 3층 탑신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규모를 줄여 안정된 비례를 보이는 점이나,

 각 부분에 짜임새가 있는 점에서 이 탑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다.

 원래는 5층이었으나 3층만 남아 있는데, 하대석(下臺石) 위에 몇 개의 면석(面石)으로 된 중대석이 있고,

 그 위에 상대석이 놓여 있으며, 탑신(塔身)을 받치기 위한 2단의 받침이 상대석 위에 놓여 있다.

 1층의 탑신은 높은 편인데 2매의 면석으로 이루어졌고 1층 옥개(屋蓋) 역시 절반으로 나누어졌고, 옥개받침은 6단이며,

 옥리(屋裏)의 반전(反轉)은 없는 편이다. 2층 탑신은 1층 탑신보다 절반 가량 낮고, 그 옥개받침은 5단이다.

 3층 옥개받침은 4단이며, 그 위에 있었던 2개의 옥개와 탑신이 없어져 지금은 3층 석탑이 되었고, 상륜(相輪)은 없다.

 1988년 6월 기울어진 석탑을 전면 해체 보수할 때 3층 탑신 윗면에서 사리공이 발견 되었으며 그 안에서 사리 32과가 발견 되었다.

 금곡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 밀봉(密奉)이 창건하였다.

 밀봉은 당시 밀종(密宗)의 큰스님으로 이 사찰을 창건하고 성문사(城門寺)라 했다고 전하나 당시는 삼국이 통일되기 전이므로

 신라 승려가 백제 땅에 사찰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신빙성이 없다.

 다만 사찰 입구 양쪽에 깎아지른 석벽이 있어 사찰 이름을 성문사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종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곡사라고 나와 있으나 사찰명이 바뀐 시기는 알 수 없다.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활용하다가 왜군의 침략으로 소실했다.

 정조23년(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미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어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절터에 건물을 중건하였고, 1969년에는 김성활이 불당과 요사를 재건하였다.

 1984년 혜선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태고종 사찰이 되었다.

 당우로는 대웅전칠성각·범종각·천불전·명부전·일주문 등이 있다. 이중 대웅전은 본래 무량수전이었으나 최근 전각명을 바꾸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불삼세불을 모셨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있으며 지장도·칠성도·제석천룡도·독성도 등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1985년1월8일
보물 제82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등 대좌, 범종, 불화 6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