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3년3월10일
○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 백련사 사적비(事蹟碑) 소개
2004년1월26일 보물 제1396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사에는 여러 기의 석비가 있었으나, 1669년(현종 10년) 세워진 조종저(趙宗箸)의 비만 남아 있다.
훼멸된 여러 석비 중 고려시대 최자(崔滋)의 비는 왜란 때 훼손되었다.
조종저가 최자의 글을 따라 다시 각석하려고 각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몹시 불만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 비의 귀부는 그대로 남아 있어, 이 위에 조종저의 비를 세웠다고 한다.
백련사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약 50여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447㎝ 규모의 전형적인 석비(石碑)이다.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부는 고려시대에 조성되었고, 비신과 이수는 1681년(숙종 7)에
조성되어 각기 서로 다른 건립연대를 보이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地臺石)과 더불어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되었다.
용두(龍頭)는 목을 움츠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입은 상·하 7개의 가지런한 이빨로 꽉 다문 모습이며,
하단에는 길게 수염이 흘러 목주름까지 늘어져 있다.
위 입술은 약간 들려 눈은 삼각형의 구도 안에 동그란 눈동자가 볼륨있게 표현되었다.
용두의 뿔은 목 뒤로 흐르며 2조로 갈라지며 비좌(碑座)에 연결되어 있다..
귀부의 등면은 너비 30㎝의 음각선으로 곽을 조성한 후 내부에 당초문(唐草紋)을 양각했다.
귀갑문(龜甲紋)은 6각형으로 내부에는 연화문을 새겼고, 네 발은 모두 5개의 발가락을 지녔으며, 꼬리는 왼쪽으로 틀어 올렸다.
귀부의 중앙 상면에는 비좌가 조성되었는데, 측면에는 초화문이 양각되었고, 상면에는 118㎝×15㎝ 규모의 비신공이 마련되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부의 크기는 227㎝×190㎝×110㎝이다.
비신은 2면비로 전·후면에는 비문이, 양 측면에는 초화문을 양각했다.
비신 전면 상단에는 자경 15㎝ 전서체로「만덕산백련사비」라 새겼고, 횡서로「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라 기록하고 있다.
뒷면에는 당시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조정저(1631∼1690)가 지었고, 현록대부랑선군 이우(1639∼1693)가 썼는데, 상단 전서만은 가덕대부랑원군 이간이 썼다.
말미의 명문으로 보아 1681년(숙종 7년)에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수에는 우진각지붕의 형태로 하단에는 목조 건축의 겹처마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정상에는 2마리의 용이 등을 맞대고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형상인 바, 매우 사실적인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비신의 크기는 234㎝×118㎝×29㎝이며, 이수는 170㎝×75㎝이다.
백련사 사적비는 귀부와 비신의 건립연대가 서로 다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아 귀부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조각수법도 뛰어나 고려 전기의 작풍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백련사는 통일신라 문성왕1년(839년) 무염(無染)스님이 창건하였다.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는 만덕사(萬德寺)로 불렀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불교를 숭상하였기에 원묘국사 요세(了世)스님에 의해 사찰의 교세는 확장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은 천시되었고 백련사는 퇴보하기 시작했으며, 남해안 일대는 고려청자와 곡창지대로
약탈을 목적으로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에 의해 점점 폐사될 지경으로 내몰렸고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1170년경 주지 원묘(圓妙)에 의해 중수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중수는 1426년 주지 행호(行乎)스님이 2차 중수를 하면서 백련사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430년부터 대대적인 불사작업이 시작되었고, 효령대군은 왕위를 동생(세종)에게 양보하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강진 백련사에 들어
8년 동안 기거하였으며,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면서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각 추녀마다에 4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2개의 주두(柱頭)에는 용두(龍頭)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청(丹靑)이 잘되어 있는 다포(多包)집 건물이다.
이밖에 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七星閣) 등의 건물이 있다.
절 앞에는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푸조나무와 함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1호) 등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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