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섬, 신안 비금도(飛禽島)..
본문 바로가기
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섬, 신안 비금도(飛禽島)..

by 정산 돌구름 2013. 4. 5.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이 아름다운 섬, 신안 비금도(飛禽島)..

 

○ 탐방일 : 2013년 4월 3일

비금도(飛禽島) 소개

  전남 신안군의 중앙에 위치한 도서(島嶼)로 동쪽으로는 암태·팔금·안좌면과 서쪽으로는 흑산면, 남쪽으로는 연도교가 가설된 도초면,

  북쪽으로는 자은면과 이웃하고 있다.

  국토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다도해의 일부로서 목포로부터 54.5km 지점(동경 125˚45', 북위 34˚45')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맥과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뻗어 있다.

  두산맥 사이의 중서부에 평야가 펼쳐 있고, 북쪽은 서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비금도는 본래 1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었으나 조선시대부터 80여회의 방조제사업를 거쳐 지금의 하나의 섬을 만든 곳이다.

  면의 중심이 되는 비금도와 수치도(水雉島), 노대도(老大島) 등 부속도서가 있으며,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9개로 구성되어 있다.

  논농사를 주로 하며 김·미역 양식과 천일제염이 활발하고, 섬 주변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삼국시대에는 자은·암태면과 함께 백제의 아노현에 속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압해군의 영속인 갈도현에 속하였다.

  고려시대 육창현에 편입되었으며, 조선초에는 영광군에 속하였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나주목의 관할로 이속되었다.

  그뒤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고종1년) 지도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광대·용소·수치 등 13개 리로 개편되어 무안군

  편입되었다가 1969년 신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비금도의 지명은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날 '비(飛)', 새 '금(禽)'을 쓴다.

  『호남읍지』(나주)에 면의 명칭을 따온 비금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섬이 아름다워 세바위가 바다를 향해 다리를 뻗고있는 모습이나 바위위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줄사다리, 색의 조화가 오묘한 바위들이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고들 하는데 동서부 평야가 펼쳐있고, 북쪽은 황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명사십리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해안의 절경뿐만 아니라 내륙의 산들도 절경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섬 중 하나다.

  동으로는 성치산맥이 뻗쳐 있으며, 중간에 마산이 크고 작게 고지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높고 낮게 이루어져 우람하다.

  여름에는 비교적 서늘하며 겨울에는 온화하고 쾌청한 날씨가 유지되는 날이 많아(26.5℃, 2.3℃)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쾌감을

  가지는 지수가 83임에 비해 이 지역은 72정도이고, 체감온도를 나타내 주는 윈드칠 지수가 내륙지역에 비해 10정도 높고, 쾌청지수

  역시 5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며, 해수온도 역시 겨울철 난류(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평균 수온이 12℃ 정도로

  유지되고 있어 관광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비금의 민속으로는 밤달애놀이가 유명하다. 밤달애놀이는 망자의 혼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례로 호상을 당한 상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밤샘을 하며 치룬다.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

 

08:10발 가거도행 쾌속선 파라다이스..

 

제주도를 왕복하는 시스타크루즈..

 

08:10,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다..

 

유달산이 바라보이고.. 

 

하얀 물거품만 남기고 떠나가는 배..

 

제주행 시스타크루즈가 거대하다..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서남문대교를 통과..

 

대교 아래의 도초도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남녁의 따스함에 진달래는 만발하고..

 

비금의 염전..

 

비금 이세돌 바둑기념관..

신안군이 낳은 천재기사 이세돌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구)비금대광초등학교 건물 798㎡에 6억여원의 사업비로 리모델링하여

전시관, 대국장, 추억의 공간, 펜션시설등을 갖추고 1998년 12월말 개관하였다..

비금도에 사는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 주고, 비금도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섬소년 불패소년 이세돌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비금도의 또하나의 자랑인 이세돌 바둑기사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또 바둑기념관에서는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바둑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고 있어 바둑을 좋아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교육에도

참여하고 이세돌과 관계된 물품들도 전시하고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바둑인들의 공간이다.

개관이후 이세돌바둑기념관은 이세돌기사 제자들의 개관기념 방문을 필두로 하여 전국의 바둑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인근의 이세돌 생가와 함께 비금도의 관광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기념관 뒤편에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망각의 길을 지나면 천혜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기념관 전면에는 잔디구장을

비롯한 생활체육공원을 조성 중이다...

  

 

 

 

 

 

바닷가의 풍력발전기 풍차..

 

원평 명사십리해수욕장..

길이 4Km, 폭 150m로 황해바다에서 밀려오는 모래로 형성되어 있으며, 하얀 모래가 십리를 두고 펼쳐진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너머의 바다에는 물이 맑아 돔, 농어, 장어 등이 잡혀 낚시꾼들도 자주 찾는 곳이며, 서남해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변에 섬이

많지 않아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의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촌마을 돌담..

대략 400년전 형성된 마을로 마을의 담장은 돌의 형태가 둥글지 않고 전반적으로 길쭉하면서 날카롭다...

대체로 담장높이는 1.5m 내외로 일정하며 가옥 부속채가 담장 역할을 한곳도 있으며, 새마을 운동당시 마을길을 넓히면서 새로 축조된

곳은 45°내지 60°각도로 세워서 축조된 담장도 있다.

대개 마을 뒤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납작한 돌과 각형의 막돌을 사용하여 쌓은 것이 특징이며, 돌담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고,

폭은 40-60㎝내외이다..

이 마을 돌담은 막돌을 메쌓기한 것, 막돌과 흙을 교대로 쌓아 올린 것, 시멘트 몰탈을 사용하여 돌담을 쌓은 것 등 여러 형식이 있으며

잘 보존된 마을 돌담(길이 3㎞)과 뒤쪽 바위산, 넓게 형성된 들판이 서로 어우러져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근대문화유산등록 283호/ 2006. 11/ 비금도 내촌마을 돌담길 / 옛담장 약3,000m..

 

 

 

하누넘해수욕장..

비금면 내월리에 위치하며, 길이 1Km, 폭 50m(간조시)에 이른다.

다도해해상 국립공원내에 위치하며 해변의 모습이 하트를 형상하고 있어, 하트해변, 또는 사랑의 해변으로 불리고 있다..

SBS 드라마 <봄의왈츠>의 촬영지로 피서객이 연간 2만명 이상 찾고 있다.

특히, 하누넘 낙조는 천연기념물332호인 칠발도와 어울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남문대교..

도초도와 비금도의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로서 연장 937m이며, 1996년8월29일 준공했다.

서남문대교는 우리나라의 서남단쪽(흑산도, 홍도쪽)에서 들어오는 첫 관문의 교량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금도에 염전이 생긴 것은 1946년의 일이다.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을 생산해 낸 곳이다.

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

그 이전까지 주을염전등지에서는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방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비금도에서는 그 이듬해인 1948년, 450세대의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 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5.16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값이 한가마에 8백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외국 소금이 수입되고 화학 소금이 쏟아져 나와 옛 경기는 다 잃었지만 한때는 "돈이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비금도(飛金島)라고 불릴 정도로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이름없는 백사장..

 

 

그 옆으로 한옥팬션단지..

 

 

 

 

 

 

 

서남문대교에서 도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