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3년 2월 16일
○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득량면 삼정리
○ 충절사 소개
정유재란 때 순절한 조선시대의 무신 최대성(崔大晟)과 그의 아들 최언립(崔彦立), 최후립(崔厚立)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750년에 안방준(安邦俊) 등 사림들의 상소로 정충사 건립의 윤허를 얻었으나 정충문 사적비만을 순절 적지인 군두에 세웠다가,
이후 득량면 군두에 사당을 건립하여 해마다 부자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인 충절사와 모의재, 기경관, 정려각, 정충문 등이 설치되어 있다.
최대성(1553~1597)은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이며, 33살 때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정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막하에서 참모 겸 한후장(悍後將)을 지내면서 한산·거제·옥포·당포해전 등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 뒤 모의장군(募義將軍)으로 불리면서 의병을 규합하여 고흥의 송대립(宋大立)·전방삭(全方朔)·황원복 등
과 함께 망제포(望諸浦)·첨산(尖山) 전투에서 전과를 올렸다.
특히, 1598년(선조 31년) 4월 벌교포·대포·장암포·영등포 등에 침입한 왜적을 섬멸하고, 6월에는 적선 10여 척이 예진(曳津)에 정박
하여 죽전(竹田)에 집결하자 아들 최언립과 격전하였다.
당시 그는 왜군을 대파하여 오도치까지 추격, 적장을 생포하였으나 유탄에 맞아 순국하였으며, 아들인 최언립과 최후립도 전사하였다.
2번 국도에서 오봉산 가는 길로 들어서서 내를 건너면 바로 모의장군 최대성공 유적지 충절사(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성재동)가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최대성 장군이 동안치에서 왜군과 싸워 크게 이기고 달아나는 적을 쫓다 복병의 저격으로 전사하신 곳이다.
최대성 장군과 그 자손들의 충절을 이야기할 때 보통 삼세충절(三世忠節)이라 한다.
최장군 자신 뿐 아니라 두아들,동생,사촌동생, 여러 하인들이 모의장군의 기치 아래 여러곳에서 적과 싸워 전사 또는 중상을 입었으며,
장군의 손자 셋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호병과 싸우는 등 삼대에 걸친 충절이 빛나기 때문이다.
장군의 동생 대민은 순천 예교싸움에서 중상을 입고 집에 돌아와 운명했으며, 사촌동생 대영은 고흥 첨산싸움에서 전사했다.
큰 아들 연립도 장군이 전사한 싸움에서 중상을 입었고, 같은 싸움에서 장군의 하인들인 두리동과 갑술이 전사했다.
작은 아들 후립도 아버지와 형을 따라 많은 싸움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장군의 전사 뒤에도 이순신 장군을 따라 벽파진과 노량진
싸움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한다. 최대성 장군의 손자 강, 현, 곤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다..
주차장에서 본 충절사..
충절사 안내도..
주차장에서 경앙문을 들어선다..
경앙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성인문이 있고..
우측에 기경관..
그 위에 정충문(旌忠門)이 있다..
그 안에 비가 있는데 비석에는 경주최씨정충문(慶州崔氏旌忠門)이라 쓰여있다..
그 옆으로 정려각(旌閭閣)..
좌측에는 모의재(慕義齋)..
성인문(成人門)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충절사(忠節祠)..
안에는 최대성장군의 영정..
주차장에는 모의장군최대성상(募義將軍崔大晟像)과 모의장군최대성충절비(募義將軍崔大晟忠節碑)가 있다..
입구의 충절사 표지석..
널따란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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