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기행] 아담한 사찰 천태산 개천사(開天寺)와 비자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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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기행] 아담한 사찰 천태산 개천사(開天寺)와 비자나무 숲..

by 정산 돌구름 2013. 2. 12.
[화순기행] 아담한 사찰 천태산 개천사(開天寺)와 비자나무 숲..

 

탐방일 : 2013년 2월 9일

소재지 : 전남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 천태산 중턱

개천사 소개

 1988년10월5일 전통사찰 제52호로 등록된 사찰로 통일신라 헌덕왕 말기 도의선사가 보림사를 창건하고 이어 개천사를 창건했다

 전하고 통일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으며 일제시대에는 용화사(龍華寺)로 불리웠다.

 천불전이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63년에 주지 김태봉이 주민들의 협조로 대웅전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창건에 관해서는 783년(선덕왕5)에 입당하여 821년(헌덕왕13)에 귀국한 원적도의(元寂道義)선사가 장흥 보림사를 세운 뒤

 828년(흥덕왕3)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원적도의선사는 구산선문의 창건주이고 조계종의 종조(宗祖)이다.

 한편 사찰에서는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개천사중건서>에 의하면 신라 개국 초(서기전 57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후 조선시대까지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창되었고, 그뒤 꾸준히 영위되어 왔다는

 사실은 부도탑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1907년에 호운화상(浩雲和尙)에 의해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개천사중건서>와 <개천사중수상량문>에 나온다.

 일제시대에는 용화사(龍華寺)라 했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근대에 와서 1950년 6.25동란으로 인해 천불전 등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1963년 김태봉(金泰奉)에 의해 중건되었다.

 산내 암자로 청련암. 백련암. 은적암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백련암은 대흥사 13대 강사 중의 한 분인 낭암시연(朗巖示演)이

 1805년(순조 5)에 주석하면서 학인들을 제접하던 암자이다.

 2000년 대웅전 뒤편을 시굴조사한 결과 건물지 3동과 기와와 분청사지가 출토되었다.

 유물은 15~18세기를 중심연대로 하고있다. 이후 대웅전(국락보전), 요사, 천불전을 새로이 건축하였고, 대웅전 앞마당을 확장하였다.

 개천사에는 5개의 부도가 있는데 석종형 또는 팔각원당식 변형의 모습이다. 청직당탑, 도암당탑, 응서당탑, 고봉당탑, 지일당탑편 등은

 모두 18~19세기 것이다.

 <개천사중건서(開天寺重建序)>에는 '광무1년정말'이라 하였으나 연호로 보면 1897년이고, 간지로 보면 1907년이 된다.

 이를 일반적인 예에 따라 간지를 중시한다면 광무11년(1907)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의 맥락이 일어나 왕성하게 됨과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게 됨은 운수의 모임과 운수의 흩어짐을 보아 불도의 왕성할 것과 쇠퇴할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화순고을의 남쪽에 위치한 천태산 개천사는 호남의 명승사찰로 신라초년 중국 한나라 선재 오봉원년(57년)

 에 창건되었다. <1897년 여름에 조육이 삼가 기록함>

 아~ 왕성하게 된 것은 쇠퇴했을 때 잘 비축한 결과인 것이며 모이게 된 것은 흩어짐의 시초가 되는 것이니 한때 완성하였다고 모였다가

 한때 흩어지는 이치는 어긋남이 없이 서로 병행하여 끝없이 찾아들 것이다. 이와같이 천태산의 좋은 경치 속에 세워진 개천사 역시 돌고

 도는 운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할 것이다. 요원한 역사 속에 인걸이 세상을 떠나자 승려들은 흩어져 모여들지 않고 건물은

 폐사가 되어 전복의 위기를 맞이한지 약 삼십여년이 되었다. 지난 1846년에 호운화상이 장성 백양사에서 이곳을 찾아와 천태산의

 수려한 풍경에 도취되어 구경하며 이곳에 도착했으니 때는 가을철 9월이었다. 일기도 명랑했고 숲들도 울창했으며 붉은빛 안개와

 말끔한 연기는 푸른 담쟁이 덩굴 사이에 얽혔고 차가운 물줄기는 하연 돌사이로 흘러 내렸다. 호운 화상은 지팡이를 멈추고 경치를 감탄

 하며 발걸음을 머뭇거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반사되는 석양빛에 구름은 둥실둥실 떠있고 산골짜기에 비휴(표범의 일종)는 비휴끼리 숲

 사이에 새들은 새들끼리 서로가 환호하며 언덕에 국화꽃과 시냇가에 단풍은 고운빛을 다투어 시새움 하는 것 같았다. 쓸쓸하기만한

 늦가을 풍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애감을 불러 일으키는데 층층이 쌓인 용마루와 무너진 건물은 칡넝쿨과 가시나무 사이로 은은

 하게 비친 듯하다. 그 풍경속에 찾아가 자세히 보니 천불암이 으젓하게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니 극락세계가 이곳인가 싶구나 라고 했다.

 아득히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이곳은 산세가 좋아 수도하는 장소로 남방에서는 가장 적합함으로 도선국사가 정신을 수련하여 도를 

 깨달은 장소가 바로 여기다. 그는 수련도량으로 동쪽을 차지하고 보니 산천의 기운이 바다위에 떠있는 배가 돛대가 없는 것 같다하여

 이 천불암을 세워 바닷물의 기세를 가라앉혀 편안하게 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불도는 쇠퇴하고 운수 또한 궁색하여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자신 백가지로 느껴지는 생각에 견디다 못해 드디어 다시 새롭게 창건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날부터 부처앞에

 분향하고 불법을 강론하며 공양미를 조금씩 모아 법당을 세웠으니 마치 차가운 산골짜기에 따스한 봄기운이 돌아온 것도 같고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힌 것도 같으며 그윽하고 고요한 좋은 경치는 능히 무어라고 형언할 수가 없다..

 

 

입구 삼거리...

 

천연기념물 제483호 화순 천태산의 비자나무숲...

천태산 중턱에 자생하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개천사 사찰림(약 15정보)과 사유림(약 6정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자생하고 있는 비자나무는 대개 둘레가 2m 이상으로서 수령은 약 3백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100㎡당 최저 1.1주에서 1.6주에 이르고 있는데, 결실상태는 풍흉의 차이가 심하지만 대략 연 최고 수확량은 70가마에 이른다.

특히, 개천사 북쪽의 비자나무 1주는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수고 16.0m, 흉고둘레 3.5m에 달하고 수관폭은 18.4m에

이르는 노거수로 보존가치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비자나무 노거수는 대부분이 민가 근처에 심어진 것이거나 사찰 주변에 숲을 이루고 있다.

온대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비자나무는 분포지역으로 볼 때 자생종이라기 보다는 인공 식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63년 중건된 대웅전..

 

아름답게 단청되어 있다..

 

대웅전의 불단..

 

아미타 후불탱...

 

향좌측 탱화와 범종..

 

우측의 신중탱..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최근한 중건한 천불전...

 

내부에는 불단을 조성중에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 주변에만 불단이 조성되어 있다..

 

대웅전 옆의 노거수 단풍나무..

 

200년이 넘은 보호수...  

 

요사...

 

널따란 경내...

 

개천사 부도(浮屠)..

5기의 부도는 좌측으로부터 지월당, 학봉당, 청직당, 도암당, 응서당의 부도이다...

 

지월당(智月堂)부도...

자연석을 원형에 가깝게 다듬은 대좌위에 8각의 탑신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노반과 보주를 올렸는데 모두 5매의 별석으로 되어 있다.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재들을 모아 만들었다.

이 부도의 주인공 지월당은 만연사 괘불을 증명한 지월필희(智月必熙)와 동일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지월당은 대흥사 명적암에서 입적한 금계근적(錦溪根積)의 스승 지월필희(智月弼熙)와 동일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학봉당(鶴峰堂) 부도..

학봉당, 고봉당(高), 만봉당(萬) 등으로 다르게 읽히고 있으며, 현재의 상태가 정확한 글자를 읽기 어렵고, 탑신에는 조식이 없다..

대좌는 복련과 앙련을 다 갖추고 있으며, 복련은 중판 복련으로 장식되어 있다.

탑신 중앙이 배가 불룩하게 나온 반구형으로 그 위에 얇은 옥개석과 노반, 상륜을 올려놓았으나 원래의 것이 아닌 듯하다...

 

청직당(淸直堂)부도..

대좌는 자연석을 약간 다듬어 8각에 가깝게 처리하였고, 그위에 탑신과 옥개석, 상륜이 올려졌는데 탑신은 배가 약간 부른 고복형이다..

옥개석은 크기에 비해 두꺼운 편이고 우동의 낙수면이 급하며 처마의 반전도 심한 편이다. 상륜은 노반과 보주를 갖추고 있다.

탑신의 앞 면에 “청직당광총속성이씨(淸直堂廣聰俗姓李氏)”라고 음각하였는데, 광총은 만연사(萬淵寺) 괘불 조성 때 주지였던 광총과

동일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5기의 부도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도암당(道庵堂) 부도.. 

선각으로 복련을 조식한 8각에 가까운 대좌 위에 탑신이 올려졌으며, 탑신 위의 노반과 상륜도 탑신과 동일한 동로 된 석종형 부도이다.

탑신에는 별다른 조식은 없고, 전면에 당호가 새겨져 있다..

응서당(應西堂) 부도...

원형으로 된 대좌는 별석의 상단에 1단의 괴임대를 두어 받치고 있으며, 측면에는 형식적인 복련의 조식이 있다.

탑신은 중앙이 배가 부른 반구형이고 노반과 보주가 단일석으로 되어 있는데 도식화된 연화문이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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