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기행] 금성산 다보사(多寶寺)의 초파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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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기행] 금성산 다보사(多寶寺)의 초파일 풍경..

by 정산 돌구름 2009. 5. 3.
초파일의 나주 금성산 다보사(多寶寺)..


탐방일 : 2009년 5월 2일

소재지 : 전남 나주시 경현동 금성산

 다보사(多寶寺) 소개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금성산 남쪽 기슭의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무열왕 8년(661)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금성산에서 초옥을 짓고 수행하던 스님이 땅에서 솟아난 칠보로 장식된 큰 탑 속에서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출현하는 꿈을

  꾼 뒤 사찰을 창건했다하여 사명을 다보사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고려 명종14년(1184)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했고, 선조1년(1568) 서산대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1879~1881년에 대웅전·명부전·영산전·칠성각 등이 중수되었는데 이 무렵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찰에 남아 있는 여러 유물 중에도 19세기 말을 전후로 하여 조성되거나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들이 많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선방으로 널리 알려졌고, 광복 후 구암·금오·도원스님 등이

  주석하며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좁은 골짜기 지형 속에 들어앉아 사방이 울창한 숲과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 수려한 경관의 다보사는 대웅전·명부전·영산전·

  천불보전·칠성각·요사 및 선원·범종각·금강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은 정면3칸·측면2칸의 겹처마맞배지붕 건물로 '다보사 대웅전'이라는 명칭으로 전남도문화재자료 제87호로 지정되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불을 주불로 하여 약사여래불과 아미타여래불이 협시되어 있는 목조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1901년에 제작된 아미타후불탱과 신중탱 등이 걸려 있다.

  대웅전 뒤편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영산전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여래좌상과 16나한상,

  후불탱과 나한탱이 모셔져 있다. 영산전의 부처님이 산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큰 바위를 손으로 받아 다보사를 지켰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영산전 뒤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바위가 있다.

  지장보살과 무독귀왕·도명존자·시왕상 등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은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3층의 콘크리트

  건물 위에 자리 잡은 천불보전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천불을 봉안한다.

  대웅전 앞으로는 석등·부도·5층석탑·우화당대선사비·진상화상창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보물 1343호로 지정된 '다보사 괘불탱'은 현재 나주시 향토문화회관으로 옮겨져 있다.

 

금강문(金剛門)..

일주문 다음에 있는 문으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데, 천왕문과 마찬가지로 보통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중 중앙은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1칸은 바깥쪽 3면을 벽으로 처리하여 안에 금강역사상을 세워 둔다.

흔히 사찰의 삼문이라 하면 일주문·천왕문·불이문(不二門)을 말하며, 따라서 금강문을 세우지 않은 사찰도 많다.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지만, 금강문이 없는 사찰은 천왕문이 대문 역할을 한다.

사찰에 따라 금강문 없이 천왕문에 금강역사를 모시기도 하고, 영광 불갑사처럼 천왕문에 금강역사의 모습을 그려 놓기도 한다.

영암 도갑사와 공주 마곡사에는 해탈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문을 금강역사가 지키고, 보은 법주사는 4개의 문을 모두 갖추고 있다..

 

금강역사상은 불법을 훼방하려는 세상의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승불교의 『오분율(五分律)』에 따르면 부처가 있는 곳에는 항상 5백의 금강신이 있어 좌우에서 부처를 호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서 오른쪽 역사가 나라연금강이고, 왼쪽 역사가 밀적금강이다.

나라연금강은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배나 된다 하고, 야차신(夜叉神)의 우두머리인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있다..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동자와 사자, 그리고 이를 지키는 밀적금강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고..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나라연금강..

대웅전(大雄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전각으로 1984년2월29일 전남 문화재자료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명종14년(1184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으며, 선조27년(1594년)에 청허선사 휴정이 삼창하였다고 한다....

 

막돌 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운 5량 구조로, 종량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공포는 주부위치의 살미첨차 부분에서 소첨과 대첨을 둔 주심포계 형식이나 끝부분의 쇠서는 3익공식으로 뾰족하게 처리하였다.

창호는 정면 3칸에만 정교하게 조각된 쌍여닫이 빗꽃살문을 설치하였다.

문살에는 국화, 매화, 모란 등의 문양이 정교하고 뛰어난 솜씨로 새겨져 있어 매우 아름답다.

대웅전 내부에는 목조로 조성된 석가, 약사,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비롯하여 아미타후불탱과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밖에 중종 1구와 대웅전 단청과 관련된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 나주 문평의 신로사(薪老寺)에 있었던 것인데, 신로사가 폐사되자 다보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여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협시불로 한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불은 나발의 머리에 정상에는 보주형인 육계가 형식적으로 솟아 있고 그 아래로 계주가 보인다.

상호는 둥글넓적한 네모꼴인데,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눈은 지그시 감은 듯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 밑에서 U자형으로 조식하였으며 복부에는 굵게 띠매듭을 표현하였다.

가부좌를 한 다리 밑으로 군의자락이 덮고 있으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협시불인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는 나발을 하고 육계와 계주를 갖춘 본존불과 유사한 형식이지만 수인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아미타후불탱은 1901년에 제작된 것으로, 화기에 의하면 원래 조계산 송광사에 봉안된 것인데 다보사로 모셔온 것이라 한다.

또한 이 화기를 통해 대웅전 삼존불상의 명호와 개금 중수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존불의 전면에는 6보살을, 후면으로는 10대 제자를 배치하여 화면의 조화를 이루었다..

 

대웅전 안의 또 다른 모습..

 

명부전 (冥府殿)..

정면과 측면 각3칸의 맞배집으로, 양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면만 겹처마로 꾸몄다.

막돌초석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을 걸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여 사이에는 소루를 끼웠다.

각요는 측면은 2고주5량, 중앙은 5량구조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창호는 정면 3칸에만 각각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명부는 염마왕이 다스리는 유명계 또는 명토(冥土)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이므로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 시왕을 모시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 살면서 미륵불이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용화삼회를 열 때까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128개 지옥을 나누어 다스리는 명계의 왕이다...  

 

칠성각(七星閣)..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막돌초석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을 걸었으며 위로는 주간마다 3구씩의 소로를 배치하였다.

공포는 명부전과 같이 없고 대신 보머리밑으로 보아지만 끼웠다. 가교는 1고주5량형식으로 고주가 내부 전면쪽에 위치하고 있다.

창호는 명부전과 같이 전면에만 띠살문을 설치하였다.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이다..

칠성신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이었으나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대부분 1칸규모로 작지만, 삼성각이라고 해서 칠성신을 산신·독성과 함께 모실 때는 칠성만을 모시는 전각보다 크게 짓기도 한다.

내부에는 칠성삼존불과 칠여래 등을 한데 그려넣은 칠성탱을 모신다.

치성광여래 · 일광여래 · 월광여래가 삼존불이 되어 중심을 이루고, 삼존불 좌우에 칠여래와 칠원성군이 배치된다.

또 남극노인성 등 하늘의 천체와 관련있는 신들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전각의 명칭 칠성(七星)은 구체적으로는 탐랑·거문·녹존·문곡·염정·무곡·파군의 일곱 별로, 각각 부처로 바뀌어 칠여래가 되는데,

이 중 독성탱은 1904년에 조성한 것으로 금어(金魚)는 관하종인(觀河宗仁) 스님이며, 나머지 불화는 근래에 조성한 것이다..

 

영산전(靈山殿)..

정면 3칸, 측면 2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며, 대웅전 뒷편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다.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였으며, 공보는 외부로 2출목을 둔 주심포형식으로 각 첨차의 밑면은 정교하게 초각되어 있다.

창호는 정면 3칸 모두에 쌍여닫이 빗살문을 달았다.

영산전의 부처님은 산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큰 바위를 손으로 받아 다보사를 지켰다는 전설이 전하며,

아직도 그 바위는 영산전 뒤에 그대로 멈춰 있다고 한다.
영산 즉, 영취산(靈鷲山)으로 부처님이 이곳에서 법화경을 논하셨으며, 영취산은 독수리 머리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영산전 석가여래좌상 및 16나한상...

영산전 석가여래좌상은 목조불상으로, 머리는 나발이며 정상에 형식적인 보주형 육계를 조식하였고 그 아래 계주를 나타냈다.

이마에는 백호가 표현되었고 귀는 길게 내려와 어깨에 거의 닿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으며 가부좌한 다리를 군의가 덮고 있는데 옷 주름은 평행선으로 처리하였다.

본존불의 좌우에는 역시 목조로 조성된 아난과 가섭이 한 분씩 봉안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석고로 조성된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과 나한탱 2폭이 봉안되었는데 후불탱은 1903년에 봉안되었고, 나한탱은 1890년 보림사에 처음 봉안되었다가 옮겨온 것이다.

본존불 후벽에 걸려 있는 석가모니후불탱으로,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을 묘사하였다.

본존불 전면에 양 협시보살과 그 앞으로 아난ㆍ가섭존자를 배치하고, 상단의 뒷면으로는 8대 제자가 본존불을 향해 서 있는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2002년에 금어(金魚) 박갑용(朴甲龍)에 의해 조성되었다...

범종각(梵鐘閣)..

정면과 측면 각1칸의 정방형 팔작지붕 건물로서 대웅전 서편의 입구 쪽에 위치하며,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된 범종이 걸려 있다..

범종각 내부에 걸린 현판에 의하면 송현(松賢) 박화민(朴和民)이 시주하여 경내에 종각을 건립하였는데,

사찰의 정비로 인해 헐리게 되자 1992년에 그의 자제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다시 건립한 것이라 한다..

천불보전(千佛寶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 맞배지붕 전각으로 대웅전과 마주보는 위치에 자리잡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 위에 자리잡고 있다...

 

천불전 내부에는 벽의 상단에 단을 만들어 근래에 조성한 천불을 봉안하고 있다.

좌측으로 범종 2기가 있는데 1767년 장흥 천관사에서 주조되어 봉안되던 것을 옮겨온 것이고, 하나는 10여년 전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천불보전 건물은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최근에 지은 것으로, 대웅전 쪽에서 보면 단층의 천불보전이지만 바깥에서 보면

아래쪽에는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위에 놓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나주 동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