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밭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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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ic/팝

솔밭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by 정산 돌구름 2010. 12. 24.

The River in the Pines - Joan Baez 
솔밭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Oh, Mary was a maiden  / When the birds began to sing   / She was sweeter Than the blooming rose / So early in the spring
메리는 아름다운 아가씨였었죠 / 새들이 노래하는 봄이 되면은 / 그녀는 활짝 핀 장미보다도 / 훨씬 더 아름다웠죠

Her thoughts were gay and happy   / And the morning gay and fine  / For her lover Was a river boy / on the river in the pines
그녀는 맑고 화창한 날씨처럼  / 무척이나 행복해 했었죠 / 그녀에겐 연인이 있었으니까요 / 솔밭사이로 흐르는 / 강가에 살고있던...

Now Charlie, he got married / To his Mary in the spring  / When the trees were budding early / And the birds began to sing 
나무에선 새싹이 돋아나고  /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는 / 이른 봄날에 / 챨리는 메리와 결혼을 했어요 

But early in the autumn  / When the fruit is in the wine / I'll return to you, my darling / From the river in the pines
하지만 과일로 술을 담그는  / 가을이 되자 챨리는 그녀에게  / 솔밭사이로 흐르는 강가를  / 떠나야 한다고 말했어요
'T was early in the morning / In Wisconsin dreary clime / When he ruled the fatal rocket / For that last and fuedal time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어요  / 황량한 벌판에서  / 챨리가 로켓을 조종하던 그날은  / 그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They found his body lying  / on the Rocky shore below  / Where the silent water ripplets  / And the whispering cedars blow 
물결이 잔잔히 흐르는 / 바닷가에서 죽어있는 챨리를 / 사람들이 발견하고선 / 떡갈나무 아래에 그를 묻었주었어요

Now every raft or lumber  / That's come down  / The chip away
언젠가부터 숲속에 있던  / 나무들이 하나 둘씩 / 베어져 없어지게 되었죠

There's a lonely grave that's visited  / By drivers on their way / They plant the wild flowers upon it / In the morning fair and fine
'T is the grave of two young lovers
그곳에 있던 외로운 무덤위에   / 지나가던 여행자들이  / 어느 화창하고 맑은 아침에  / 이름모를 들꽃들을 심어주었죠 
그것이 두 젊은연인의 무덤이예요

 

 

존 샨도스 바에즈(Joan Chandos Baez)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의 스태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멕시코 출신의 물리학자인 아버지 알베르트 바에즈(Albert Baez)와 스코틀랜트 출신의 어머니 존 브릿지 바에즈(Joan Bridge Baez) 의

세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희곡 작가이자 교사였고,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로 여러 방위산업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유능한 인재였지만 핵무기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런 제의를 거절했다.

존 바에즈가 반전평화운동가이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이런 아버지의 영향과 가정적 환경도 컸다고 할 수 있다.

 

존 바에즈가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Palo Alto)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4살 무렵의 일이었다.

그녀는 합창반에서 노래를 했고, 1956년엔 그녀만의 첫 기타를 구입해 이곳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해의 일이었다.

이듬해인 1957년엔 간디주의 철학자인 아이라 샌드펄(Ira Sandperl)을 만나 그녀로부터 강한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

보스톤 대학에 등록한 그녀는 학업보다는 자신의 뮤지션 경력을 꽃피우는 데 치중했다.

그녀는 처음엔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지역의 작은 클럽들에서 노래했는데, 곧 그리니치 빌리지로 옮겨 갔다.

1961년 4월, 존 바에즈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저즈 포크 시티(Gerde's Folk City)에서 밥 딜런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녀는 뱅가드에서 자신의 두 번째 음반을 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의 오프닝 공연에 함께 했고,

이후 포크의 왕과 여왕은 연인이 되어 동거하기도 했다. 이해에 그녀는 처음으로 전미 콘서트 투어에 들어갔는데,

그녀는 이 콘서트를 통해 인종차별주의와 흑인의 공민권 확보를 위한 주장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의 활동은 1962년 11월 23일자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로 실리게 된다.

1955년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발생한 흑인들의 버스승차거부운동은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던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공민권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앞장 선 사람이 간디의 비폭력노선을 추구한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존 바에즈는 1963년 3월 25만 명의 민중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공민권 확대를 요구하며 워싱턴 D.C까지

이어지는 거리 행진에 참여했고, 이들 앞에서 <우리 승리 하리라(We Shall Overcome)>을 노래했다.

이 해 8월엔 노예해방 선언 백주년을 기념하는 워싱턴 대행진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너무도 유명한 연설의 서두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을 말했다. 이 행진엔 존 바에즈, 밥 딜런, 피터 폴 앤 매리, 해리 벨라폰테,

마할리아 잭슨 등의 쟁쟁하고 의식있는 뮤지션들이 함께 했다.

존 바에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 어떤 위험도 무릅썼다.

그녀는 베트남의 하노이,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에서 노래했고, 억울하게 구금당한 사람의 사면을 위해서 노래했다.

그녀는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반체제 인사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를 위해 노래했고, 캄보디아를 위해 노래했다.

이런 그녀의 활동을 인정한 안티오크 대학과 루트거스 대학에선 그녀의 정치적 행동과 음악성을 인정해 명예인문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존 바에즈는 레이건 집권 이후 더한층 강화된 미국의 보수주의 물결 속에서도 1981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5주간의 콘서트와 인권 실태조사 여행을 강행한다.

여행 도중 그녀는 경찰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이 모든 일을 끝까지 해냈다.

또한 그녀는 핵무기 제조 및 사용 중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3년 유럽을 순회공연했고,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파리의 비폭력주의에 바치는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12만 명의 군중 속에서

노래해 프랑스 최고의 명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녀의 이런 활동들은 가장 최근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멈춘 적이 없었다.

존 바에즈는 한때 1 년공연의 개런티로 10만불을 제시한 프로모터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포크음악은 의식에 관여하는 음악이다. 누구든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음악이라고 말할수 없다."

존 바에즈가 전문적인 음악 교육 없이도 3옥타브를 넘나드는 비브라토의 향연을 펼쳐보일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는 거의 중요치 않은 점이다.

그녀는 늘 현장에서 함께했고, 말뿐인 지성인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자신의 노랫말과 함께 했다.

그녀의 음악이 늘 시대와 동시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

그것이 그녀의 노래가 지닌 가장 강한 힘이었다. 그것이 존 바에즈의 노래가 영혼을 움직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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