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최후의 항쟁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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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최후의 항쟁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by 정산 돌구름 2023. 3. 1.

삼별초 최후의 항쟁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2023년 2월 28일, 삼별초 최후의 항쟁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항파두리성은 강화도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도로 건너와 몽고에 저항한 삼별초가 머물던 군사기지로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15리에 이르는 토성(土城)과 삼별초(三別抄) 군사들이 궁술훈련 때 과녁으로 사용했던 ‘살맞은 돌’, 성의 건물 문지였던 ‘돌쩌귀’, 김통정장군이 성 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파여서 샘이 솟는다는 ‘장수물’, 삼별초 군대가 급수로 이용한 ‘옹성물’·‘구시물’, 옥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지는 1977년 석성인 내성(內城)이 위치했던 9천여 평의 경내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우는 등 성역화되었다.

진도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하던 삼별초 군대가 제주에 들어온 것은 1270년(원종 11년) 11월 3일 이문경부대의 제주 명월포 상륙이었다.

이문경 부대는 이미 제주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던 관군과 송담천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함으로써 제주도 내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이어 1271년(원종 12년) 5월 김통정은 진도의 용장성이 무너지자 남은 삼별초 군대를 거느리고 제주도로 들어와 이문경부대와 합세하여 대몽항쟁을 위한 본격적인 방어 시설을 구축해 나갔다.

1273년(원종 14년) 4월 고려의 김방경과 원장 흔도(忻都)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의해 삼별초가 토벌되기까지 대몽항쟁의 거점이었다.

1231년 몽고가 쳐들어오자 고려 왕조는 해도입보의 전략에 따라 강화도로 천도를 하게 된다.

이후 40년 동안 원나라에 저항했으나 결국은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삼별초는 이에 반대하고 계속 싸울 것을 주장하며 진도로 기지를 옮긴다.

진도에서 용장산성을 만들고 대항하던 삼별초는 얼마 되지 않아 여몽연합군에 의하여 패하게 되고 다시 한 번 근거지를 옮기게 되면서 선택한 곳이 제주도이다.

이를 미리 간파한 고려 조정은 제주도에 먼저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삼별초의 선봉대가 이를 격파하고 내성을 비롯해 외성과 건물들을 세운 곳이 바로 항파두리성이다.

이곳에 머물며 일본을 정벌하려는 원나라의 계획을 방해하는 등 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며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곧이어 대규모의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패하며 삼별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에 맞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던 곳인 항파두리성에 기념비를 세우고 돌로 쌓은 내성과 흙으로 만든 외성을 복원해 놓았다.

장교들이 마셨다는 옹성물과 병사들이 마셨다는 구시물, 화살 연습할 때 표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살 맞은 돌,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되었을 돌쩌귀 등을 볼 수 있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 포함된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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