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의 격전지, 인천 강화광성보(江華廣城堡)..
2022년 4월 4일, 신미양요의 격전지 인천 강화광성보를 가다.
광성보 앞 강화해협은 마포와 개성, 중국까지 직항할 수 있는 포구가 있어 한양을 지키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안해루 안으로 들어서면 신미순의총, 쌍충비각,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신미양요는 1866년 8월 발생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해병대가 1871년 전함 5척을 이끌고 와 조선을 침략한 사건이다.
미군의 전쟁사에 ‘48시간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한 전장이 광성보였다고 한다.
강화도 광성보를 둘러보고 초지진으로 이동한다.
사적 제 227호(1971년12월29일)로 지정된 강화광성보(江華廣城堡)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효종 9년(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 5년(1679년)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다.
고종 8년(1871년)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미국 함대가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광성, 초지(草芝), 덕진(德津), 덕포(德浦) 등의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에 초지진은 미국 해병대 450명의 상륙으로 인해 점령되었고, 이튿날에는 덕진진이 함락되었으며, 곧 광성보가 공격을 받았다.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과 수하의 장병은 열세한 무기로 힘껏 싸웠으나 중상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무덤과 어재연의 쌍충비각(雙忠碑閣)을 보수하였다.
~^^~
'길따라 트레킹 > 역사, 문화, 그리고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 석모도 보문사~ (0) | 2022.04.07 |
---|---|
사적 제225호, 인천 강화 초지진.. (0) | 2022.04.04 |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自在庵).. (0) | 2022.04.04 |
사적 제214호, 산청 전구형왕릉(傳 仇衡王陵).. (0) | 2022.03.23 |
[남원기행] 지리산 칠암자순례길, 남원 실상사와 약수암.. (0) | 202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