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절벽에 자리한 아름다운 천년고찰, 산청 정취암~
2021년 8월 19일, 기암절벽에 자리한 아름다운 천년고찰, 산청 정취암~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올라서면 정취암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산청 대성산 중턱 기암절벽에 기대어 둥지를 튼 정취암은 신라 신문왕 6년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작고 아담한 암자이지만 절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잠시 머무렀다가 떠난다.
대성산(大聖山) 기암절벽에 매달린 정취암(淨趣庵)은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신문왕 6년(686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암자이다.
정취암은 옛 단성현 북방40리에 위치한 대성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절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하여 옛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었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 6년에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쫒아 금강산에는 원통암(圓通庵)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淨趣寺)를 창건하였다.
고려 공민왕 3년(1354년), 화경거사와 경신거사가 정취암을 중수한 후 궁궐에 있던 정취관음보살상을 이곳으로 모셔왔다.
이후 전각이 불타는 불운을 겪으면서 보살상도 소실되어 효종 5년(1654년)에 봉성당 치헌선사(致憲禪師)가 중건하면서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1987년 도영당은 원통보전공사를 완공하고 대웅전을 개칭하여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 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95년에 응진정에 16나한상과 탱화를 봉안하고 1996년 산신각을 중수하여 산신탱화를 봉안하였다.
이 탱화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기록에는 정취사로,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에는 정취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을 극복하려는 개혁 세력의 주요 거점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암 대종사와 성철 대종사가 주석했다.
원통보전 뒤편의 쌍거북바위는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하고 귀한 자손을 보게 하며, 사업 번창 등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하는 영험이 있다고 한다.
바위 끝에 서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천장 만장 높은 곳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시원함과 함께 적막과 고요속에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 든다.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크기 50cm 남짓 단아한 관음보살좌상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4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모난 형태에 가늘고 긴 눈, 완만한 콧등, 입술 양끝에 양감을 줘 미소를 머금게 하는 모습으로 등을 세우고 머리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원통보전 뒤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왼편에 응진전, 오른편에 산신각이 나온다.
산신각의 산신탱화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로 호랑이를 타고 행차하는 산신을 협시동자가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순조 33년(1833년)에 제작되었으며, 역시 토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을 잘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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