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사와 응진전, 김생굴..
2020년 10월 5일, 청량산 산행길에 만난 청량사, 응진전과 김생굴..
천년고찰 봉화 청량사와 응진전, 김생굴..
청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청량산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이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이다. 암봉에는 소나무와 와 각종 활엽수가 울창하며,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다.
청량사는 본시 매우 큰 절이었으나 조선시대 억불정책의 영향으로 절은 유리보전(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과 응진전만 남은 채 피폐했다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지불이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흥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현판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온다.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 팔작지붕으로 쇠서의 끝에 연화형(蓮華形) 조각이 새겨져 있고, 전면 중간 기둥 위에 용의 머리와 꼬리가 안팎으로 뻗도록 그려놓았는데 이는 조선후기 건축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안에는 약사여래좌상 1구와 길이 15m의 거대한 괘불이 남아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이 있는데 지금은 금칠을 했다.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은보물 제1919호(2016년11월16일)로 지정되어 있다.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이 불상은 오래전부터 청량사의 주불전인 유리보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엄숙한 상호, 당당하고 육감적인 양감, 균형 잡힌 신체, 탄력과 절제된 선묘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통의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계통을 따르고 있다. 불상의 초창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8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 경에는 조성된 것으로, 930년경으로 추정되는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칠불상임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와 의미를 갖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복장유물은 중수과정에서 납입된 발원문과 후령통, 복장전적, 금강계만다라 등 모두 19건 208점에 이른다. 이 중 1560년 중수 때 납입된 「千人同發願文」은 처음 만들어진 후 고려후기와 조선 전기에 중수된 기록을 담고 있어 중요하고, 「三十七尊種字曼陀羅八葉一輪」은 고려의 侍中 崔宗峻이 1239년에 납시(納施)한 것으로 불상의 중수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다.
유리보전 앞에는 삼각우송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고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절이 있는 청량산에는 김생(金生)이 공부하던 김생굴과 공민왕당, 퇴계 이황이 즐겨 머물며 수학하던 오산당이 있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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