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국사가 창건한 구미 해운사(海雲寺)와 도선굴(道詵窟)..
9월 1일 일요일, 금오산 산행길에 만난 금오산 해운사..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94, 금오산 자락에 위치한 해운사(海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穴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야은(吉再)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소실되어 폐사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25년 철화스님이 해운암(海雲庵)으로 중창하였으며, 1956년3월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대웅전에는 석고로 조성한 관세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1992년에 봉안한 후불탱화·칠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석조나한상이 전해지는데 석조수행대사입상(石造修行大師立像)이라고도 한다.
한편 합장한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전해지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의 오른쪽에는 명금폭포(鳴金瀑布)가 있고, 뒤쪽 산에는 도선굴(道詵窟)이 있다.
도선굴은 도선국사가 머물렀고, 길재(吉再)가 세속을 피하여 은거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해운사 사천왕문..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한다.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그는 흔히 잡어(雜語)·비호보(非好報)·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그의 권속으로는 용(龍)과 비사사(毘舍闍) 등이 있다.
사천왕문 뒤편의 편액은 해운사..
대웅전 좌측의 감로당..
정면으로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이며 팔작지붕 건물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금장을 하였다..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상(阿彌陀三尊佛像)과 후불탱, 신중탱화, 칠성탱화, 소종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을 대웅전에 모시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아미타불은 무량광(無量光)과 무량수(無量壽)를 보장하며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이다.
양쪽에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뒤에는 감지금니화(紺紙金泥畵)의 후불화가 봉안되어 있다.
삼존불상은 결가부좌하여 당당한 체구에 개금된 불상이다
.
대웅전 칠성탱화(七星幀畵)..
민간신앙으로 하늘의 성진일월을 주관하는 북두칠성의 신을 불교에 흡수하여 여래로 승격시켜 도상화한 것이 칠성탱화이다.
칠성의 대표인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붉은 해를 들고 있는 일광보살과 하얀 달을 든 월광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뒤에는 칠성(七星)이 나란히 줄지어 배치되어 있고 앞의 좌우에는 칠원성군과 필성(弼星)이 묘사되어 있다..
대웅전 신중탱화(神衆幀畵)..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으로, 많은 신들을 불교화하여 그렸기 때문에 복잡하고 다양한 구도를 보인다.
인도 고유 토속신의 대표신 인드라를 불교에 수용하여 제석천(帝釋天)으로 승격시킨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늘의 병사 천룡은 날개관을 쓰고 무장한 신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합장한 두분의 천신이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인 구도이다..
대웅전 옆 다층석탑과 약사여래..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두손을 합장하고 있는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각(三聖閣)..
사해운사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삼성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의 구조에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이다.
연등천정에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안에는 산신탱화(山神幀畵)와 독성탱화(獨聖幀畵)만 봉안되어 있다.
세 분의 성인을 모시고 있는 전각을 삼성각이라고 하는데, 보통 삼성은 칠성(七星), 산신(山神), 독성(獨聖)을 말한다.
해운사에는 아직 칠성탱화(七聖幀畵)를 모시지 않았다.
향좌에는 산신탱화로 산의 신령으로 숭배되어온 호랑이를 백발의 산신(山神)으로 변화시켜 큼직하게 배치하고
옆에는 다정한 포즈에 애교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진짜 호랑이를 그렸다.
향우측은 독성탱화(獨聖幀畵)로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은 아라한으로 열반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는 나한이다.
보통 독성을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부른다..
대웅전 앞 포대화상..
대웅전 우측의 지장보궁..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석가모니의 부촉을 받아 그가 입멸한 뒤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의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여섯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그 신력(神力)과 자비와 지혜와 변재(辯才)가 불가사의한 보살이며, 모든 악업에서 해탈하게 하는 보살이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보살로 신라시대 이후로 이 신앙은 가장 일반적인 신앙으로 신봉되었다.
특히 죽은 사람을 위한 49재(齋) 때에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는 보살로 받들어지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4개의 초석 위에 원주를 세운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다포계형식이다..
안에는 사물인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봉안하고 있다.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범종은 그 장엄한 소리로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근래 조성된 범종은 항아리 모양의 종신부에는 보상당초문(寶相堂草文)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속을 비운 후 두들기는 목어는 물속 중생의 고통에서 구제한다는 의미와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감지 않고 정진하라 뜻의 의식구이다.
법고는 축생의 모든 중생에게 기쁨을 만끽하게 하는 의식법구이다. 또한 수행정진을 위한 법구이기도 하다..
도선굴(道詵窟)..
대혜폭포 우측 절벽의 천연동굴로 신라 말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참선하여 도를 깨우쳐 풍수지리설의 창시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야은 길재선생이 이곳에서 수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굴의 폭과 높이는 각기 5m 쯤, 길이는 10m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에서 눈아래 펼쳐지는 경관 또한 일품이다.
도선이 득도한 곳이라하여 도선굴이라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따르면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 칸 있었다.”
고 하며,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 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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