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의 여행, 동료들과 함께 오른 지리산 천왕봉, 그리고 철쭉평전..
직원들과 지리산 1박2일 산행을 목표로 어제 오후 6시30분에 백무동 느티나무산장에서 합류하여 하룻밤을 보냈다.
푸짐한 안줏거리에 소맥으로 얼큰하게 취하여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병어로 끓인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산행을 시작한다.
백무동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것은 지난 2012년10월21일에 오른 이래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6시5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르는데 안개속에 약한 안개비가 내리고 참샘, 소지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에 올라선다.
이른 시간이지만 운무가 가득한 장터목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고 천왕봉으로 오르는 인파는 그리 많지 않다.
제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걷히었다 끼었다를 반복하여 천왕봉이 보였다 사라지곤 한다.
천왕봉에 올라서니 조망이 확 트이지만 온통 운해가 가득하여 구름바다만 내려다 보이고 이따금 중봉과 제석봉이 나타난다.
인파가 그리 많지 않아 정상에서 인증샷을 날리고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서 그냥 내려설까 하다가 세석대피소로 이어간다.
세석대피소를 가는 길은 운무에 잠겨 있지만 활짝 핀 철쭉이 가득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세석대피소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내려서 백무동 느티나무산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 산행일자 : 2018년 5월 19일(토)
○ 기상상황 : 흐린 후 맑음(아침에는 안개비, 제석봉에 올라서니 많은 하늘이었으나 운무로 조망은 없음 10~26℃)
○ 산행인원 : 17명(직원들 23명 중 6명은 중간 포기)
○ 산행코스 : 백무동~참샘~소지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장터목~촛대봉~세석~한신계곡~백무동(경남 산청, 함양)
○ 구간별소요시간 : 약19.0km(트랭글 GPS 17.9Km), 9시간15분소요
백무동 느티나무산장(06:05)~하동바위(06:45~50)~참샘(07:15)~소지봉(07:35)~망바위(08:10~20)~장터목대피소(08:45~09:05)~제석봉(09:25)~통천문(09:40)~천왕봉(09:55~10:10)~쉼터(10:35~50)~제석봉(11:00~05)~장터목대피소(11:15~25)~연하봉(11:35~40)~화장봉(11:45)~삼신봉(12:15)~촛대봉(12:35~45)~세석대피소(13:00)~한신폭포(13:30~40)~오층폭포(14:30)~가네소폭포(14:40)~첫나들이폭포(15:00)~느티나무산장(15:20)
○ 주요봉우리 : 지리산 천왕봉(1,915m), 제석봉(1,808m), 소지봉(1,312m), 촛대봉(1,703m), 연하봉(1,730m)
○ 교통상황 : 광주(17:00)~88고속~지리산IC~60번~1024번~백무동주차장(18:30)
○ 산행지 소개
민족의 영산 지리산(智異山 1,915.4m)은 웅장하고 뛰어난 절경으로 1967년12월31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은 한국 8경, 5대 명산 중의 하나로써 그 넓이가 4백84㎢가 넘는 면적으로 여의도의 52배쯤 된다.
3개 도, 5개 시․군, 15개면에 걸쳐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 전북 남원에 접하며,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하는 명실공이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지대이다.
노고단(1,507m)에서 천왕봉까지 25.5km의 주능선은 반야봉(1,751m), 삼도봉(1,550m), 토끼봉(1,537m), 명선봉(1,586m), 덕평봉(1,522m), 칠선봉(1,558m), 영신봉(1,652m), 촛대봉(1,704m), 연하봉(1,730m), 제석봉(1,806m) 등 1,500m가 넘는 봉우리만 16개나 이어진다.
또, 1백10여 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 하천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룬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지리10경』을 만들어 냈는데, 제1경 천왕일출(天王日出), 제2경 피아골단풍(稷田丹楓), 제3경 노고운해(老姑雲海), 제4경 반야낙조(般若落照), 제5경 벽소명월(碧霄明月), 제6경 세석(細石) 철쭉, 제7경 불일현폭(佛日顯瀑), 제8경 연하선경(烟霞仙景), 제9경 칠선계곡(七仙溪谷), 제10경 섬진청류(蟾津淸流) 등 비경을 이룬다.
지리산은 예부터 봉래산(蓬萊山 금강산), 영주산(瀛州山 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속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였으며, 일명 방장산(方丈山)이라 일컬어왔다.
또한, 백두산에서 산맥이 뻗어 내렸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는데 간혹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에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으로 적기도 한다.
이와 달리 두류산이란 명칭에 관해서는 전체적인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두루뭉술하며, 또 사방으로 산들이 첩첩이 둘러쳐 있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우리말 ‘두루’, ‘둘러’가 한자로 표기, 전착되는 과정에서 두류(頭流)로 되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있다.
전설에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려 할 때에 전국의 명산에 기도를 올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업의 뜻을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만이 반기를 들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여 반역산(反逆山), 불복산(不伏山)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또한,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속시킴은 물론 역적을 지리산록의 전라도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고 전한다.
때때로 이 전설에 맞춰서 지리산(智異山)을 ‘지혜롭고 기이한 산’, ‘지혜와 다른 산’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은 또, 두류산(頭流山),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해발 1,915.4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天王峰)...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또한 구름바다를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정상에서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 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정구역상으로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함양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고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 정상에는 지난 1982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다.
전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정상 바로 아래의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감댐의 발원지로서, 이 샘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른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天王日出)과 석양낙조(夕陽落照)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 하는 일출광경을 허락치 않는다는 속설과 함께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있는 것이 그것이다.
3개도 5개 군에 걸쳐 있는 광활한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은 산세가 수려한 명산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한 산으로 사계절 두루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위에 랭크되어 있다.
7~8월 여름휴가를 이용한 여름산행지로 가장 인기 있고, 여름의 시원하고 수려한 계곡과 산에서 2박3일이 소요되는 지리산 종주산행이 보편화되면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찾는다.
지리산은 피아골과 뱀사골의 단풍이 아름다운 단풍명산으로 10월 중순에서 하순사이 단풍산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신라 5악중 남악으로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주봉으로 노고단, 반야봉 등 동서로 100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이루러 ‘지리산 12동천’을 형성하는 등 경관이 뛰어나고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생태계 보고이며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
금요일 오후 6시30분에 도착한 백무동 느티나무산장.
백무동은 옛날부터 ‘지리산의 지혜로운 기운을 받기위해 100명이 넘는 무당이 머물던 곳’이라하여 백무동(百巫洞)이라 하였다.
또한, ‘안개가 늘 자욱하게 끼어있는 곳’이라 하여 백무동(白霧洞)이라고도 하였다.
지금은 ‘무사가 많이 배출하였던 곳’이라 하여 백무동(白武洞)이라고 한다..
백무동에는 세석평전에서 시작된 약 10km의 한신계곡(백무동계곡)이 흐르고 있다.
한신계곡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명승 제72호로 지정되었으며, 칠선계곡, 뱀사골계곡과 함께 지리산 3대 계곡이다..
자리를 잡고 준비한 회와 술로 저녁식사를 겸한 파티를 한다..
모두들 즐거운 시간.. 건배로 첫날 일정을 시작한다.
10시가 넘도록 한잔씩 하다가 내일 새벽의 일정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담하고 깔끔한 방..
아침에 일어나니 약한 안개비가 내린다..
6시5분, 백무동 느티나무 산장을 출발하여 산행길에 오른다..
탐방안내소를 지나고..
한신계곡 갈림길에서 좌측 장터목대피소 방향으로 오른다..
자욱한 안개 속에 하동바위에 도착한다.
함양에 있는 바위를 왜 하동바위라 했을까?
그 유래는 옛날 함양원님과 하동원님이 내기 바둑을 하여 하동원님이 이겼다.
하동원님이 “원님!, 졌으니 무얼 주시겠소?” 하니 곰곰이 생각하던 남원원님이 지가 가져가겠나 생각하며 큰 바위를 가리키며,
“저 바위나 가져가시오~” 하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동바위가 되었다고 전한다...
물기 머금은 야생화가 아름답다..
하동바위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올라 참샘에 이른다..
참샘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오른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백무능선, 좌측 백무능선을 따라가면 칠선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지만 통제구간..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아랫소지봉..
잠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가면 망바위에 이른다..
망바위에서 바라본 제석봉과 멀리 천왕봉..
남부능선 방향은 운무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망바위에서 잠시 쉬어간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분홍빛 철쭉..
장터목대피소에 올라선다.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산청 시천주민과 북쪽의 함양 마천주민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었던 곳이다.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하며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많은 등산객이 모이는 종주 능선의 마지막 산장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제법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천왕봉을 향하여 오른다..
아름다운 철쭉..
제석봉의 고사목과 파란 하늘..
제석봉(帝釋峰)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중봉(1,875m) 다음 가는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지리산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첫 봉우리로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 한층 유명하다.
이 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제석봉은 예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지가
되어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 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은 고사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나무 없이 초원만 펼쳐져 있다.
고사목들이 한두그루도 아니고 10만여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다..
고사목의 훼손은 물론 이곳에서 야영과 취사행위, 그리고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한다.
이곳의 고사목들은 해발 1,700m이상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50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한다.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이곳에 불을 질러 모든 나무가 죽어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운무에 잠겼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제석봉은 정상에서 약 0.7m 떨어진 곳에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천연암굴인 통천문(通天門)이 있고,
통천문에서 0.4㎞를 더 가면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이르게 된다..
천왕봉을 향해 나아간다..
제석봉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통천문(通天門)’이다.
통천문은 자체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시인 고은은 통천문의 위용을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고 표현하였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이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통천문에서 바라본 제석봉 운무..
가파르게 올라서면 칠선계곡을 따라 오르는 탐방로는 굳게 닫혀있다..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온다..
정상 천왕봉의 거대한 바위를 예로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를 풀이해 천주라 불러 서쪽 암벽에 “천주(天柱)”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언제 누가 새겼는지를 정확한 기록은 없다.
남명선생이 일찍이 ‘萬古天王峰 天嗚猶不嗚’이라며,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로 장엄함을 찬탄했다고 한다..
민족의 영산, 한민족의 가상이 발원되는 지리산 천왕봉...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함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정상에는 82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있는데,
전면에는「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1982년 초여름 당시 이규호 경남도지사와 민정당 실력자 권익현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남도가 세웠다고 한다.
1.5m높이의 표지석을 세우는 날, 천왕봉에서 쓰레기수거작업이 열렸는데 경남도내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되어 천왕봉 일대
쓰레기 수거작업을 했고, 도지사 등 일부인사는 헬기로 천왕봉에 도착했다고 한다.
마침 휴일이어서 일반등산객들도 많았는데 천왕봉에 많은 인파로 일시에 뒤덮은 것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천왕봉이란 이름은 언제 어떤 이유에서 불려졌는지 아직 밝혀진 바 없고, 문헌상 기록도 없다.
옛날엔 지리산 정상 천왕봉을 일월대(日月臺)라고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일월대란 이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으며, 월출과 월몰을 한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정상은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한가하여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주능선은 운무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질 아노는다..
이따금 건너편 제석봉만이 얼굴을 드러낸다..
정상을 내려서며..
아쉬운 마음에 다시한번 인증샷을 남긴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선다..
통천문에서 바라본 제석봉, 한쪽이 운무에 잠긴채 그 모습을 숨기고 있다..
제석봉을 오르기 전, 잠시 쉬었다가 간다..
다시 돌아온 제석봉..
함께 한 직원들과..
철쭉이 활짝 피어나고..
다시 돌아온 장터목대피소..
장터목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이어간다..
세석으로 가는 능선에는 철쭉이 만발한 꽃길이 펼쳐진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길..
연하봉이 다가온다..
연하봉에서..
모두들 장터목에서 하산하고 5명이 세석으로 이어간다..
세석과 장터목 사이 연하봉은 계절에 따라 향기 그윽한 꽃들이 만발하고, 기암괴석은 천년의 고색창연한 이끼를 입고 서있다.
한신계곡을 넘어온 운무가 봉우리에 잠시 머물면 신선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꿈같은 선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탁트인 전망, 기암괴석, 주변의 기화요초와 고사목,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천연의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연하선경(煙霞仙境)을 연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운무에 잠겨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파란 하늘이 펼쳐지지만 발아래는 온통 구름바다..
운무에 잠긴 능선을 따라간다..
조망이 없는 화장봉..
이어 나타나는 삼신봉에도 조망은 전혀없다..
다시 내려섰다가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촛대봉..
촛대봉에서 잠시 쉬어간다..
촛대봉은 정상이 촛대처럼 생겼다하여 촛대봉이라 불리며, 해발 1,703m로 설악산 대청봉(1,708m)보다 5m 낮다..
맑은 날이면 멀리 천왕봉이 팔을 뻗치면 손에 잡힐듯 바라보이지만 오늘은 아무런 조망도 없다..
촛대봉에서 마시는 캔맥주, 참으로 별미이다..
잠시 쉬었다가 내려선 세석고원..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이용됐으나 6.25를 전후해서는 빨치산 근거지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석산장이 들어서있다..
세석고원은 습지로 이루며 산상의 화원을 연산케 한다..
세석평전의 철쭉은 아름다움은 저 한다..
세석대피소에 내려선다.
세석대피소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3억원을 투입 96년1월1일 완공, 개장한 통나무식 대피소이다.
수용인원이 300명으로 완공당시 지리산내 대피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운치가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였다.
2층 앞쪽으로는 주능선 남사면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겸 휴게소가 있다.
잔돌평전이라 하는 세석(細石)은 화개 땅의 영신봉과 산청 땅의 촛대봉사이의 1,600m 고지대에 있는 평야지대이다.
이곳에 있는 수만 그루의 철쭉이 되는 5월 하순은 요염한 철쭉의 붉은 색과 등산객들의 오색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백무동 6.5km 이정표를 따라 올랐다가 내려선다..
한신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아직도 운무에 잠겨 희미하다..
가파른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면 한신폭포..
한신계곡(韓信溪谷)은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산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 한신이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서석고원에서 백무동까지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면서 10㎞에 걸쳐 흐른다.
백무동 위에서 세석까지 흐르는 본류 외에도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과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계곡 등 4갈래의 물줄기가 엄천으로 흘러 남강 상류를 이룬다.
본류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을 흘러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한다.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으며, 지리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과 절벽 사이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2㎞ 정도 오르면 20여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첫나들이폭포(바람폭포)가 나오고,
다시 1㎞를 더 가면 폭포수와 넓은 반석, 울창한 수풀이 어우러져 계곡의 절정을 이루는 가네소폭포가 나온다.
15m 높이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며, 사철 변함없는 수량을 자랑하는 검푸른 소(沼)를 만들어 기우제 장소로도 유명하다.
가네소폭포 아래부터 본류까지 오층폭포와 한신폭포를 따라 세석으로 흐르고,
내림폭포를 따라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한신지계곡이 흐른다.
가네소폭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폭포가 5층으로 이어지는 오층폭포 또는 오련폭포가 나오고,
다시 계곡을 건너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계곡의 상징인 한신폭포가 나오는데, 여기서 1㎞를 더 가면 세석고원이다.
한신계곡 일대의 명승지는 2010년8월18일 명승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병꽃도 아름답게 피어나고..
오층폭포를 지난다..
가내소폭포를 지나며 가내소의 전설을 생각해 본다..
가내소전설은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 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해서 가내소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마천면 주민들은 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 가내소를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계곡에서 잠시 땀을 씻고 내려선다..
기나긴 한신계곡을 내려서면..
어느덧 첫나들이폭포에 이르게 된다..
이제 부드러운 길이 이어져 속도를 내어본다..
지리산 머고할미의 전설을 생각해 본다..
지리산 천왕봉에는 마고(麻姑)라고 하는 성모천왕(聖母天王)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성모천왕이 산을 내려다보는데 ‘법우’라는 도행(道行)이 높은 화상이 도를 닦고 있었다.
성모천왕은 ‘내가 저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어 하늘의 뜻을 펼치리라.’ 하고 마음을 먹고 산꼭대기에서 소변을 보았다.
법우화상이 홀연히 보니 산골짜기에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 큰 시냇물이 흘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큰 물줄기가 생겼을까?’ 궁금해 하며 천왕봉 꼭대기로 올라간 법우화상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성모천왕은 “내가 인간 세계에 귀양을 내려와 있었는데, 그대와 인연을 맺고자 물의 술법을 이용하였다.”라고 하였다.
둘은 드디어 부부가 되어 딸 여덟을 낳았고, 이들에게 무업(巫業)을 가르쳐서 조선 팔도에 보냈다.
지금 팔도의 무당들은 이들의 후손이다.
지리산 성모는 ‘성모천왕’, ‘마고’, ‘마야고’ 등으로 불리며, 그 다양한 명칭만큼 시대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신모(神母)가 고려 태조의 어머니 위숙왕후라고 했다.
이는 김종직의 『두류산록(頭流山錄)』에도 언급되어 있어 오랜 기간 동안 널리 구연되었던 신화였음을 알 수 있다.
『두류산록』에는 이외에도 신모가 석가의 어머니인 마야(摩耶)부인이라는 이야기를 승려들에게 들었다고 하는데,
‘마고(麻姑)’, ‘마야고(摩耶姑)’라고 불리는 신모의 명칭에 기인한 전승이라 보인다.
현재 보편적으로 전승되는 <지리산성모 이야기>는 이능화의『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 기재된 신모와 법우화상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지리산에 있는 백무동(百巫洞)이라는 지명이 상징하듯 무당이 많이 거주하기도 하였고,
타지의 무당들도 지리산을 ‘큰 산’으로 섬기며 치성과 참배를 하는 대상이 되면서 유포된 이야기인 듯하다.
백무동(白武洞)이 원래 100명의 무당이 있었다고 하여 백무동(白巫洞)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리산 마고할미의 전설을 생각하며 어느덧 백무동야영장에 이른다..
느티나무 산장이 다가와 산행을 마무리한다..
기나긴 산행을 미무리하고 차를 달려 지리산IC 인근의 황토옹기 한식뷔페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한다.
힘들었지만 직원들과 함께 한 1박2일의 여정,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의 한페이지를 남기고 아쉬운 마음으로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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