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기행] 전남도유형문화재 제113호, 함평향교(咸平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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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기행] 전남도유형문화재 제113호, 함평향교(咸平鄕校)

by 정산 돌구름 2015. 1. 25.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함평향교(咸平鄕校)..

 

○ 탐방일 : 2015년 1월 24일

○ 소재지 : 전남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590-1

○ 함평향교 소개

  전남도유형문화재 제113호(1985년2월25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설립연대는 미상이며,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의병으로 활약했던 노경덕의 행장에 전해진다.

  원래는 함평읍 내교리 외대화 동쪽에 있었다하며, 현재 외대화 마을 동쪽 산에 향교의 잔해로 보이는 주초석과 기와편들이 남아있다.

  그뒤 1599년에 초가로 재건되었고, 1625(인조 3년) 현감 박정청(朴炡淸)이 십정지지(十井之地)라 하여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아

  중건하려 했으나 정묘호란으로 중단되었다.

  1631년 함평 유림 22명의 발의로 대성전과 명륜당을 완공하여 향교의 규모를 갖추었다.

  함평향교와 관련된 사건으로, 1643년 인근 장성에서 유생 김형복, 김형우 형제가 저지른 유안(儒案)이 불에 타버려 향교 이건 때

  핵심인물이었던 정지현과 통문을 주고받아 전라도 일대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1662년 이황의 위패가 유출되어 물의를 빚었고 1816년에는 화재가 발생하여 대성전 일부와 명륜당이 불에 타 다시 중수하였다.

  현재 건물은 1967년 중수한 것으로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맞배집이며, 뒤편의 향사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敎官) 1인이 정원 30명의 교생(校生)을 가르쳤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향교의 위치가 평지일 경우에는 전묘후학(前墓後學)의 배치형식을, 경사지일 경우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 향교는 문묘(文廟)인 대성전을 앞쪽에 배치하여 전묘후학의 예를 따르고 있으며 이런 예는 흔하지 않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고(典祀庫)·양사재(養士齋)·고사(庫舍)·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향교의 경제력으로는 논 4,300평, 밭 1,515평, 임야 14,327평과 300점의 제기, 20벌의 제복, 27기의 제상을 갖추고 있다.

  정기 제향은 매년 2회(2월과 8월 상정)에 실시하는데, 상정이란 매월 1~10일 사이 간지(干支) 중 정(丁)자가 들어간 날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