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야은 김용훈을 기리는 정자, 야은당(野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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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야은 김용훈을 기리는 정자, 야은당(野隱堂)

by 정산 돌구름 2015. 1. 12.
야은 김용훈을 기리는 정자, 야은당(野隱堂)..

 

○ 탐방일 : 2015년 1월 10일

○ 소재지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 559-1

○ 야은당(野隱堂) 소개

  광주 서구 서창동 세동마을 입구 위치한 야은당은 1936년 자제들이 거사의 취지(趣旨)와 절의(節義)를 사모하여 노래(老來)에

  일세의 고난을 다 버리고 건강과 안락과 서회(敍懷)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고 액호(額號)를 야은당이라 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에 2칸으로 정내 중앙에 내실로 두었으며 팔작지붕이다.

  주련은 한말 대사성, 도승지 등의 벼슬을 지내기도 했던 문신이며 서화가였던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이 썼으며, 조선말 판서를

  지냈던 석하(石下) 김만수(金晩秀), 판서 소호 조영희 양정 기남도 의제 기우정 등이 시를 남겨 그에 대한 인품을 대변하고 있다.

  임진왜란 공신 병조참판 삽봉(揷奉) 김세근(金世斤)의 9대손인 조선 후기 거사 야은(野隱) 김용훈(金容燻)은 1876년(고종13년)

  8월27일 자부인(慈夫人)의 몽별(夢鱉)로 잉산(孕産)하였고, 1948년8월2일 73세에 노환으로 본제(本第)에서 고종(考終)하였다.

  휘(諱)는 용훈(容燻), 자(字)는 봉현(奉賢), 호(號)는 야은(野隱), 우호(又號)는 우재(愚齋)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과 덕행이 깊어 18세(1893년)에 본향(本鄕)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29세(1904년)에

  통훈대부(通訓大夫) 강릉참봉(江陵參奉)을 제수되었으나 시국난간(時局難艱)을 한탄하며 관직에 나가기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봉양하고 고향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