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년 9월 20일
○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볼래면 신금리 401번지
○ 봉래사(蓬來寺)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로, 나로도의 덕암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경내에서 나로도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송광사(松廣寺)에 주석하던 주판암(朱判岩)스님이 1935년 봉래면 덕암산 아래에 초가 3칸을 건립하여 송광사 승려 이명송 수인
(李明松 守寅)을 거주하게 함으로써 비롯되어졌다. 이명송수인이 초벽만 발라진 초가 3칸을 완성하였다.
1938년 여름에 법당 4칸을 창건하여 비로소 신흥암이라 하였다. 1941년7월17일 칠성정(七星幀)을 조성하여 신흥암에 봉안하였다.
칠성정화불사에 참여한 인물은 증명(證明)에 삼화상(三和尙), 회주비구 김경봉, 송주비구 봉욱, 지전비구 일청, 주지비구 이명송,
공사 이복렬이며, 대시주자는 봉래면에 거주하는 김승규와 그의 가족이다.
1949년 이명송 스님이 송광사로 가버리고 남원 실상사의 남벽운성범(南碧雲性梵)화상이 안거하면서 암자명을 봉래사로 개칭하였다.
수년을 살다가 신도 김경린과 합의하여 사동 조용섭의 임야 신금리 산 66번지 8의 2,400평을 신도의 도움으로 매입하였다.
1961년 남벽운화상이 봉래사에서 입적하게 되자, 그 후임으로 송광사 승려 이백은(李栢垠)화상이 와서 안거하였다.
1962년 법당을 헐어버리고 법당 4칸을 재건하여 같은 해에 완공하였다.
1965년 산신각(山神閣) 1칸을 신건하였는데 이 때의 신도 회장은 홍금표였다. 1974년 초가 3칸을 헐어버리고 같은 해에 염불당 4칸을
신축하였다. 1976년 신도들에게 권선하여 범종(75관)을 조성하였다. 1977년 종각과 전기를 가설하였다.
1983년 주존불(主尊佛)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였는데 시주자는 김홍양이었다. 1986년 법당 4칸을 허물어 버리고 신도의 도움으로
900만원을 만들어 법당 3칸의 3차 중건을 마쳤다.
1987년(불기 3531년) 극락전불상(極樂殿佛像)과 청동좌불(靑銅座佛)을 서울 성종사에서 조성(무게 140근) 봉안했다.
이상의 기록은 봉래사 중창주(重創主)인 주지 이백은 화상이 1987년 당시 80세의 나이로 봉래사사적(逢萊寺事蹟)을 기록한 것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자신의 주석한 사찰 봉래사의 연혁은 물론, 절의 소지명품 당우(堂宇)의 규칙, 화전지(花田地)의 면적, 사전유서
(死前遺書), 법당 3차 중건기, 극락전 불상 조성기, 성보(聖寶)와 건물 연대기를 집대성하여 대학 노트에 싸인펜으로 기록한 것이다.
현재 봉래사에는 석가여래좌상과 나한상 2구,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범종각·요사채·강당 등이 있다..
나로고등학교(봉래종합고등학교) 건너편 도로가에 초입..
길게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따라가면 대나무숲 사이로 사찰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요사채..근래에 지은 건물로 극락전 편액이 걸려있다..
대웅전 이전에 절의 본전이 극락전 이었는데 그때 사용하던 ‘극락전(極樂殿 )’ 편액으로, 크기는 30.5cm× 79cm이다..
대웅전..
1986년에 제3차 중창 때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 형태의 시멘트 지붕이다.
내부에는 본존으로 석가여래좌상과 나한상 2구, 지장보살좌상이 있고, 신중탱화와 아미타회상도, 후불탱화 및 칠성탱이 모셔져 있다.
주련은 佛身普遍十方中 / 三世如來一切同 / 廣大願雲恒不盡 / 汪洋覺海妙難窮
외벽화로 관음도와 목탁유래가 그려져 있다..
본존불은 총높이 96㎝로서 상호뿐 아니라 우견편단의 법의나 신체균형이 잘 조화되고 있어 최근작으로서는 손꼽힐만한 불상이다.
나발의 머리에 높고 큼직한 육계가 솟아있고 상호는 계란형이며, 눈․코․입 등이 사실적인 표현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법의는 우견편단인데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옷주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무릎은 결가부좌를 들고 있는데 상단의 불신폭에 비해 좀 과대해진 것 같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원만한 상호와 당당한 어깨 등은 최근작이 아니라는 착각이 있을 정도로 뒷마무리가 잘 정돈되었으며 의습 역시 유려하게 처리되었다..
붉은 바탕에 그려진 후불탱화는 중앙에 석가여래를 배치하였는데, 그 모습은 결가부좌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다.
부처님의 머리에는 높이 솟은 육계(肉髻)와 그 정상에 계주를 표현하였고, 그 곳에서 흰 서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석가여래의 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고, 지장보살과 관음보살도 표현하였다.
또한 불보살과 그 권속들을 보호하는 외호신으로서 사천왕이 화면 좌우에 표현되었는데 손에 든 지물로서 각 천왕을 구별할 수 있다...
우측의 아미타회상도는 좌우대칭이 되는 구조로, 가운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과 2대 제자를 구성한 불화이다.
크기는 91cm× 197cm이며, 화기는 없다...
칠성탱은 화기에 따르면 1941년(昭和 16년) 나로도의 신흥암(新興菴 봉래사가 처음 지어질 때의 명칭)에서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불화는 상하단으로 구분되는데 상단에는 주존인 치성광여래 좌우로 일광·월광보살, 칠여래와 노인성(老人星)을 상반신만 표현하였고,
하단에는 칠원성군이 배열된 구도이다.
치성광여래는 감청색의 연화좌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이중윤광(二重輪光)을 등지고 신광은 여러색으로 빗살무늬를 묘사하였다.
통견의 적색법의를 입고 수인은 오른손은 어깨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금륜(金輪)을 쥔 채 발위에 얹고 있다.
해와 달이 묘사된 보관을 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합장하고 있다.
그 옆으로 4위와 3위씩의 녹색두광을 한 칠여래가 합장하고 있으며 긴 이마의 북극성이 묘사되었다.
칠원성군은 모두 입상으로 관대조복(冠戴朝服)을 하고 3위는 합장을 4위는 집홀(執笏)을 하고 있다..
대웅전 뒤편 산기슭에 자리한 산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식의 세멘 시레트 건물이다.
‘산신각(山神閣)’이라는 현판이 있고, 내에는 산신탱이 한 점 있다..
범종각은 1977년에 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덕암산봉래사(德巖山逢萊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내에는 다른 사물은 없고 범종이 1구 걸려 있다...
범종의 용뉴는 단용이며 음통이 있는데 윗면이 봉합되어져 있다.
대체적으로 대좌, 유곽의 모습을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옆에 매달아 놓은 당목도 물고기 모양으로 독특하다.
주조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며, 단좌 바로 밑에 주조처가 성종사라고 양각되어져 있다.
종신의 양쪽에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 봉래사 주지 이종택’, ‘화주보살 홍수님 신도회장 이판구’라고 양각되어져 있다.
그리고 종신과 천판에 많은 시주자들이 이름이 한글로 음각되어져 있다..
대웅전 앞에서는 고흥 나로도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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