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천년고찰, 구례 천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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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역사, 문화, 그리고 여행

지리산 자락 천년고찰, 구례 천은사에서..

by 정산 돌구름 2022. 8. 12.

지리산 자락 천년고찰, 구례 천은사에서..


2022년 8월 12일, 지리산 자락 천년고찰, 구례 천은사에서..

남원 달궁계곡에서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 구례 천은사에 도착한다.

천은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덕운선사와 인도 승려 스루가 창건하였고,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고 한다.

헌강왕 1년(875년)에 보조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중축하였으며,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무더운 날씨에 상생의 길 걷기는 포기하고 잠시 경내를 둘러보고 떠난다.

천은사를 끝으로 2박3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이름이 난 천은사(泉隱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펼쳐지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다.

산문과 일주문을 지나 독특하고 운치있는 수홍문을 건너 절을 찾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하다.

지리산의 빼어난 산수와 풍광, 그리고 그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3년(828년)에 인도의 덕운(德雲)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리산에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의하면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緣起 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唐 僖宗 乾符二載 緣起相形而建設 德雲因勢而增修.....>"

그런데 일제시대에 간행된 구례읍지에는 이 기록에서 창건주 연기는 도선국사의 별호인데 이것을 유래로 잘못 해석하여 도선국사 이후의 스님인 덕운을 창건주로 왜곡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들이 도선국사가 창건주로 되어 있다.

이는 중국 유학시 일행선사로부터 3천8백 비보사찰을 중건 혹은 창건토록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신라 조정에 긴밀히 모의하여 신라 국토 곳곳에 사찰과 탑을 건립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천은사도 바로 이러한 경우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볼 때 인근 화엄사의 창건연대(544년)와 비교해 볼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 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 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후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610년(광해군 2년)의 일이다.

당시 절의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뒤이어 숙종 5년(1679년)에도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절이름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중건 당시 감로사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로부터는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 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이 사찰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서 절에 큰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그 때 조선 4대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智異山泉隱寺(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 넣은 현판을 일주문에 걸게 한 뒤로는 다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신운(神韻)의 물소리가 연연히 들린다고 전하여 내려온다.

숙종 41년(1715년)에는 팔상전에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고, 영조 25년(1749년)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하였다.

영조 50년(1774년) 5월에는 혜암선사(惠庵禪師)가 그 전 해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중수하면서 절을 새롭게 중창하였다.

혜암선사는 수도암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에게 도움을 구하여 2년간에 걸친 중창불사를 원만히 이루어냈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이 1774년에 중건한 것으로 보물 제2024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 응진당(應眞堂), 칠성각, 삼성전(三聖殿), 첨성각(瞻星閣), 감로전, 불심원, 회승당(會僧堂), 보제루(普濟樓), 방장선원(方丈禪院), 일주문, 수홍문(垂虹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수홍문은 무지개가 드리워 내린 듯 계곡과 함께 아름다운 운치를 띤다.

극락보전 그 외 문화재로는 보물 제924호 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 보물 제1340호 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546호 금동불감(金銅佛龕), 보물 제1888호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보물 제1889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 등이 있다.

현재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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