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남해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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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남해충렬사..

by 정산 돌구름 2020. 12. 3.

남해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남해충렬사..


2020년 11월 30일, 남해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충렬사에 가다..

충렬사는 코로나 19로 폐쇄되었지만 남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아직도 가을의 여운이 남아있는 풍경이 아름답다..

남해대교는 경남 내륙 하동과 남해도를 잇는 연육교라는 점에서 ‘남해대교(南海大橋)’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로서 길이 660m, 총폭 9.6m, 유효폭 7.2m, 높이 32.3m이며, 경간수 3개, 최대 경간폭은 404.m이다.

상부 구조는 현수교, 하부 구조는 라멘식 교각이다.

남해도를 연결하기 위하여 1968년 5월에 착공하여 1973년 6월 22일에 준공되었다.

준공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준공식에 참석하여 다리를 직접 건너며 축하하였다.

당시 동양 최대의 불록 정착식 현수교였고, 일본과 국내 합작 설계로 이루어졌다. 현수교 핵심 부품인 와이어는 전량 수입하였다.

준공 이후 남해대교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부식이 많이 진행되어, 1994년에는 주탑의 붉은색 페인트 대신 회색을 덧칠하였다.

그러나 2003년에는 다시 주탑을 붉은색으로 칠하였다.

아울러 2003년 9월 1일부터는 안전상의 문제로 통행 제한 하중을 40톤에서 32.4톤으로 변경하였다.

남해대교는 국도 19호선 상에 위치하며, 1일 교통량은 7256대이다.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려 개통 후 관광 명소가 되었으며, 인근의 관광객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관광 산업이 확대되었다.

남해대교가 설치된 노량해협은 통영·여수를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이며,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전적지인 동시에 전사지로서

인근에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가 있다.

남해대교는 현재도 ‘한국의 금문교’라 불리고 있다.

2018년 9월 13일에 남해대교를 대체할 노량대교가 신설되어 남해대교의 기능을 분산하고 있다.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세워졌다.

안에는 사당·재실(齋室)·비각(碑閣) 각 1동,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비(碑) 4기(基), 가분묘(假墳墓) 1기 등이 있다.

1598년(선조 31년) 11월 19일 이순신장군이 노량 앞바다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처음 이곳에 유해를 안치하였다가 충남 아산의 현충사(顯忠祠)로 이장하였고, 현재 이곳에는 봉분(封墳)뿐인 가분묘만 남아 있다.

이순신장군이 순국한 지 35년 뒤인 1633년(인조 11년) 초사(草舍)와 비를 세워 치제추모(致祭追慕)하였다.

1658년(효종 9년) 사당을 건립하고 비도 다시 세웠으며, 1662년(현종 3년)에는 ‘충렬사(忠烈祠)’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 사당은 1661년(현종 2년)과 1899년(광무 5년)에 중수하였는데, 비 하나에는 1661년 중수한 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송시열(宋時烈)의 비문이 있다. 사당을 세운 당시에는 사당 옆에 호충암(護忠庵)이라는 암자가 있어 화방사(花芳寺)의 승려 10여 명과 승장(僧將) 1명이 교대로 수직하였다.

충렬사는 사적 제233호(1973년6월11일)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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