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4국 8박10일(제4일) - 1. 유사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 베르사유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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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서유럽

서유럽 여행 4국 8박10일(제4일) - 1. 유사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 베르사유궁전..

by 정산 돌구름 2018. 7. 17.

서유럽 여행 4국 8박10일(제4일) - 1. 유사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 베르사유궁전..


 

 

  - 4일차 (7월 10, 화) - 

기상 후 인근 산책 ⇨ 호텔 조식(사실상 실내에서 햇반) ⇨ 호텔 출발 ⇨ 베르사유 궁전 ⇨ 파리역 ⇨ 고속열차(TIR) ⇨ 벨포트 ⇨ 인터라켄 ⇨ 석식 ⇨ 호텔 하이마트 투숙

 

세계 문화의 중심지, 파리(Paris)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프랑스의 정치·경제·교통·학술·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의 중심지이다.

BC 3세기 무렵 켈트계의 파리시 인(Parisii)이 시테 섬을 중심으로 살았으며, 파리라는 이름도 파리시(Parisii)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로마 인들은 루테티아(Lutetia)라고 불렀으며, 파리라는 이름은 3세기부터 사용되었다.

교외를 포함한 파리 데파르트망(Department)’은 면적 2,844, 인구 약 1,041만 명(2009)이다.

오랫동안 센 데파르트망의 수도였으나 1964년부터 파리만으로 독립 데파르트망이 되었다.

프랑스의 정치·경제·교통·학술·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고 불리며 프랑스 사람들은

스스로 빛의 도시라고 부른다.

세계의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여 몹시 좁은 편에 속하지만 둘레 36km의 환상도로(옛 성벽 자취)에 둘러싸인 부분이 1860

이래의 파리 시가지이다.

그러나 프랑스 전체의 0.25에 이르는 면적에 전인구의 약 6분의 1이 집중해 있는 대파리는 해마다 1015만 명씩 인구가

불어나고 있다. 재정지출이나 상업거래량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도 집중현상은 프랑스의 특징 중 하나다.

센강()이 남동쪽에서 시가지로 들어와 생루이섬과 시테섬을 감싸면서 북쪽으로 크게 만곡을 이룬 다음 남서쪽을 거쳐 시외로

흘러나간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뱅센 숲, 서쪽으로는 불로뉴 삼림공원이 이어진다.

센강의 남쪽을 좌안(左岸:리브고슈)’, 북쪽의 보다 넓은 지역을 우안(右岸:리브드루아트)’이라고 부르며, 시 주변에는 로마의

일곱 언덕을 연상시키는 언덕이 줄지어 솟아 있다.

행정상 20개의 구(아롱디스망)로 나누어지고 각 구는 번호로 불리는데 각각 4개의 소구(카르티에)로 구성된다.

구마다 현()의 지사가 임명한 구장(區長)이 있다.

1구는 시테섬의 서반부(西半部)와 루브르 등을 포함하며 시의 거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1구의 북쪽에 오페라코미크·국립도서관 등이 있는 제2구가 있고, 우측으로 회전하면서 각 구가 소용돌이꼴로 배열되어 있다.

6구까지가 시의 중심부를 이루는데 이곳에 낡은 건물과 좁은 도로가 집중되어 있다.

시가지의 중앙에서 남북 방향으로 생미셸거리·세바스토폴대로가 뻗어 있고, 이들 대로와 직각을 이루면서 우안(右岸)에는

리볼리거리·포부르생탕투안거리가 있고, 좌안에는 생제르맹거리가 있다.

시가지는 좌안의 카르티에라탱이 문교지구, 우안은 상가·오락가(샹젤리제·그랑불바르·몽마르트르), 서쪽은 고급주택·관청가,

동쪽은 근로자 주택지이다.

시테섬은 파리의 발상지이며, 이곳에 있는 노트르담대성당 앞 광장의 중앙이 파리의 원점(原點)이다.

여러 지방과의 거리는 이곳을 기점으로 계산된다. 센강을 건너는 32개의 다리는 돌로 만들어진 아치형이 많다.

유명 인사의 묘가 늘어선 묘지, 조상(彫像기하학적 식목·분수 등으로 꾸며진 공원, ·식물원 등 녹지대가 많으며,

모든 가로에 보도가 딸리고 대로변에는 가로수가 줄을 잇는다.

한편 세계 최대의 콩코르드광장을 비롯한 많은 광장·로터리가 있기 때문에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가옥은 대부분 18601914년에 건설되어 대개 78층이지만 최근에는 20층에 이르는 고층 주택도 들어서고 있다.

센강 우안을 따라 고속도로가 완성되고 남북을 종단하는 2개의 고속도로도 건설되었다.

경치 좋은 장소가 수없이 많고 도시미관은 세계 제일이다.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 베르사유 궁전(Le Château de Versailles)

베르사유 궁전(Le Château de Versailles)은 파리 서남쪽 23km에 있는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이다.

'짐은 국가다.(L'Etat, c'est moi)' 라고 했던 태양왕 루이 14(Louis XIV)20년에 걸쳐 세운 궁으로 이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Marie Antoinette)가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비운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건물의 규모면에서나 절대왕정의 예술품에서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이라 할 수 있으며, 100ha 나 되는 대정원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대형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루이 14세는 신하인 재무장관 푸케(Nicolas Foucquet)의 보 르 비콩트(Vaux-le-Vicomte)성을 둘러보고 온 후 그 어마어마한

화려함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보 르 비콩트의 건축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을 불러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하게 된다.

이에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쥘 아르두엥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 실내 장식가 르 브룅(Charles Le Brun),

조경가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등이 참여해 50년 동안 막대한 비용을 들여 궁전을 지었는데, 원래 습지였던 이 땅의 자연

조건을 완전히 바꾸어서 숲을 만들고, 분수를 만들기 위해 몇 개의 강줄기를 바꾸고, 거대한 펌프를 만들어 센 강의 물을 150m

길어다 부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의 상판에서 천장의 못 하나까지 모두 장식을 할 정도로 화려하게 궁전을 지었다.

1682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왕궁이 옮겨 온 이래 매일 수백 명의 귀족들이 모여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이것은 루이 14세에게 언제 반기를 들지 모르는 귀족들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나약하게 만들려는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대 접견실(Grands Appartements)

대 접견실은 한편으로는 레하클레스 살롱,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이라 불리는 6개의 살롱과 그 유명한

거울의 방으로 구성된 리셉션 장소이며, 다른 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공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베르사유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생활이 화려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

이탈리안 바로크 양식으로 금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한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한

건축물로서, 일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이다.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은 뷔페 연회가 열렸던 풍요실(Salon de l'Abondance)과 루이 14세 때에 당구장으로

쓰인 다이아나실(Salon de Diane), 원래는 대기실이었으나 때때로 리셉션 장소로 쓰인 군신실(Salon de Mars), 각국 외교 사절

들을 접견하던 Salon d'Spollon, 화려한 천장화가 유명한 비너스의 방(Salon de Venus)로 구성되어 있다.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

베르사유궁전의 중앙에 있는 본관(本館)2층 정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1687년 완성한 거울의 방은 J.H.망사르(Mansar)가 설계하고, 내부장식은 C.르브룅((Charles Le Brun)이 총지휘하였으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길이 75m, 높이 12m의 회랑으로서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북쪽 끝에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

남쪽 끝에는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가장 호화로운 대표적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의 방에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데,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 역시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졌으나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부분은 오늘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을 배치하였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이궁(離宮)인 그랑트리아농(1687)과 프티트리아농(18세기)이 루이왕조의 장려함과 섬세한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그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멩뜨농(Maintenon) 부인을 위해 지은 별궁이다.

원래 트리아농은 1670년부터 1687년까지 외관을 자기로 장식하고, 루이 14세가 몽테스팡 부인(Madame de Montespan)과 함께

간식을 먹으러 잠시 들르던 곳이었으나 결국 견고하지 않은 자기는 파손되었고 그동안 루이 14세의 애첩이었던 몽테스팡 부인은

총애를 잃게 되었다. 그 후 망사르는 6개월 만에 대리석으로 된 견고한 트리아농을 새로 지었으며 지금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장밋빛 대리석으로 된 외관과 실내장식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