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 구례 운조루(雲鳥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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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 구례 운조루(雲鳥樓)..

by 정산 돌구름 2019. 1. 10.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 구례 운조루(雲鳥樓)..



2019년 1월 4일(금), 구례 여행길에 만난 운조루..


운조루(雲鳥樓)는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영조 때 류이주(柳爾胄)가 낙안부사로 있을 때 99칸을 건축했다고 한다.

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칠언율시에서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나오고, 새는 날다 지치면 돌라올 줄 아네.>

큰사랑채 대청 위의 상량문에 따르면 영조 52년(1776년)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건축물이다.

-자형 행랑채, ㅜ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그대로 보존되어있고 사당과 연당이 남아 있다.

큰사랑 대청 위 상량문의 기록은 1776년(영조 52년)에 세운 것으로 규모나 구조가 당시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현존하는 주요 부분은 사랑채와 안채이며, 그 밖에 행랑채·사당·연당 등이 있다.

사랑채는 3채가 있는데, 큰사랑은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높이 약 1.2m의 축대 위에 있다.

중문쪽이 온돌방, 가운데가 마루방, 서쪽 끝이 누마루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높이 약 60cm의 활석을 쌓아 올린 기단 위에 있으며, 초석은 큰 괴석을 사용하였다.

운조루가 자리한 터는 <조선의 풍수>를 지은 일본 풍수지리학자 무라야마 지준의 글에도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진 명당이다.

오미리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형상이다.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 몇백년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명성이 자자하여 이곳이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곳에는 위쪽에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의 금구몰니(金龜沒泥), 중간에 금환낙지,

아래쪽에 다섯가지 보석이 모여 있는 형상의 오보교취(五寶交聚)의 명당이 있다.

중간의 금환낙지는 운조루가 이미 차지했지만, 금구몰니와 오보교취의 명당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운조루는 1,400평의 대지에 건평 273평인 99칸(현재는 70여칸) 저택으로 문중 문서에 따르면 한때는 883마지기의 농토가 있었고

대한제국 말에만 해도 농사를 짓기 위해 한 해에 2백~4백여 명의 노동력이 조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