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기행]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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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기행]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by 정산 돌구름 2012. 11. 20.
[해남기행] 두륜산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과 3층석탑..

 

탐방일 : 2012년 11월 17일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소개

  두륜산 노승봉 아래에 있는 북미륵암의 거대한 암벽에 양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높이가 420cm에 달하는 거대한 여래좌상으로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오다가 2005년9월28일 국보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바위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 있는 이 마애여래좌상은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으로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

  본존불의 육계(肉髻)가 뚜렷한 머리는 언뜻 머리칼이 없는 민머리(素髮)처럼 보이나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단정한 얼굴은 살이 찌고 둥글넓적하여 원만한 상이다.

  그러나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입을 굳게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귀는 큼직하니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유난히도 굵고 짧아진 목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삼도(三道)를 나타내었다.

  손과 발은 항마촉지인에 오른 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냘픈 듯 섬세하고 가지런히

  묘사하여 사실성이 엿보임과 더불어 곱상한 느낌을 준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그 주름은 거의 등간격으로 선각화(線刻化) 하여 사실성이 뒤떨어지고,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마치 키를 드리운 것처럼 늘어지는 등 도식적(圖式的)인 면이 강하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시대로 이행해 가는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대좌(臺座)는 11엽의 앙련과 12엽의 복련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대좌로 두툼하게 조각되어 살집 있는 불신(佛身)과 더불어 부피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다른 예에서와는 달리 자방이 높게 솟아올라 있어 특징적이다.

  두광(頭光)와 신광(身光)은 세가닥의 선을 두른 3중원(三重圓)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火焰紋)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위·아래로 대칭되게 4구의 천인상을 배치하였다.

  둔중한 체구로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본존불과 달리 경주 석굴암 내부 감실(龕室)의 보살상을 연상케도 하는 4구의 천인상은 날렵한

  모습으로 부드러움과 함께 세련미가 엿보인다.

  천인상들의 조각표현은 이 당시의 거의 유일한 예이자 우수한 조형미를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요사..

 

 

용화전(龍華殿)..

본존의 주위로 4구의 비천상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오른 무릎은 세우고 왼다리를 꿇은 자세로, 얼굴은 위를 향하고,

왼손은 왼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에는 지물을 들고 연화좌에 앉아 있다.

상체에는 고려시대 보살상에 크게 유행하던 착의법인 천의자락을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돌려 가슴 앞으로 묶어내리는 보살옷을 입고,

하체는 상의(裳衣)를 입었다. 이 뒤로 천의자락이 휘날리고 있어서 하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용화세계란 미륵불이 주재하시는 정토세계를 의미하는데,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현재 이 마애불이 모셔져 있는 목조전실(木造前室)은 용화전(龍華殿)으로 되어 있다...

 

 

마애불 공양상(磨崖佛 供養像)..

마애불 좌우에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무릎을 굽혀 오른손으로 차공양을 하고 있는 여인상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용화전 탱화..

 

범종..

 

북미륵암 삼층석탑(北彌勒庵 三層石塔)..

1963년1월21일 보물 제301호로 지정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 약 30m오른쪽에 있다.. 

높이 400cm로 기단부는 이중 기단으로서, 하층 기단은 하대석과 중석을 합쳐 4매의 장석으로 짰고 우주와 탱주를 목각하였으며

갑석은 여러 매의 두꺼운 석재로 구성하여 상면에 호형(弧形) 괴임을 새겨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중석을 짜고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으며 갑석은 하면에 부연(副椽)을 크게 모각하고 상면에는 각형 괴임을

새겨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초층 옥신을 4매의 판석으로 짜고 2, 3층 옥신은 한 덩어리의 석재로 쌓았는데 초층 옥신에 비해

2, 3층 옥신의 높이가 급격히 줄어든 모습을 하고 있다.

옥개석은 비교적 넓은 편이나 추녀가 얇고 경사가 완만하며 받침은 초층과 2층은 4단,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앙화 모양의 석재만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전형을 따랐지만 각 부재의 짜임 방식이나 간략화된 양식은 고려석탑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산신각..

 

 

 

삼층석탑-동탑(北彌勒庵 三層石塔-東塔)..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형식면에서 흡사하여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3층 옥개석이 결실된 채 남아 있었는데 1995년 북암, 요사 중수와 함께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서산대사유물관에 전시된 3체의 금동불상이 1970년 바로 이 탑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동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조성된 듯한데, 이 두탑의 아름다운 조화가 대둔팔경(大芚八景)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더욱 흥미록운 것은 이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바위가 오른손 손바닥 형태로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는 점이다.

풍수지리석에 의하면 북미륵암을 중심으로한 이 일대가 마치 바다의 게[蟹]와 같은 형상이라 그대로 석불을 조성하면 무너지게 되므로

게의 오른발에 해당되는 곳에 보물 제 301호인 서쪽 삼층석탑을 세우고 게의 왼발에 해당되는 지형에 동쪽 삼층 석탑을 세워 땅의

기운을 눌러 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뒤 북미륵암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