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호이안-후에 여행(제3일) - 3. 베트남 문화의 중심지, 티엔 무 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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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베트남

베트남 다낭-호이안-후에 여행(제3일) - 3. 베트남 문화의 중심지, 티엔 무 파고다..

by 정산 돌구름 2018. 12. 6.


베트남 다낭-호이안-후에 여행(제3일) - 3. 베트남 문화의 중심지, 티엔 무 파고다..



여행 3일차 아침은 비가 약간 소강상태인 듯하였으나 바나산에 오르니 빗줄기가 거세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아침식사를 마친 후 7시가 되지 않아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나선다.

선택관광인 바나산테마파크 관광을 위해 새벽부터 서두른다.

바나산 테마파크에서는 세찬 빗줄기가 내렸으나 후에가는 길에는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맑은 날씨이다.

1시간40여분을 버스로 이동하여 후에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후에왕궁을 거쳐 티엔무 파고다를 둘러본다..


 < 3일차, 12월 1일 > 

05:30 기상 06:10 호텔 뷔페식 06:55 호텔 체크아웃, 가이드미팅 07:05 버스이동 07:45 바나산테마파크 입구 07:55 케이블카 탑승 08:20 골든 브릿지 08:30 케이블카 08:35 바나산 테마파크(~10:20) 10:25 케이블카 하산 11:00 버스이동 12:45 점심식사 13:15 후에왕궁 14:20 버스이동 14:30 티엔무 파고다 15:25 민망황제 왕릉 15:55 후에로 이동 16:20 맛사지 18:00 저녁식사 18:40 유러피안 거리 19:15 호텔 20:00 마트 쇼핑 후 한잔


1) 후에로 이동

  바나산 테마파크에서 버스를 타고 후에로 이동한다.

  1시간40분여를 달려 후에에 도착하여 현지 한국식당 경복궁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2) 후에왕궁 관람

  점심 식사 후 후에왕궁으로 가서 왕궁을 둘러본다.

  후에 전동카가 포함되어 전동카로 이동한 후 다시 전동카를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날씨가 맑아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무더위에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맑으면 덥고 비가 오면 볼 품이 없고 난감한 베트남이다.


베트남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후에(Hué )

후에(Hué )라는 명칭은 투안 호아(Thuan Hoa)에서 "Hoa"를 프랑스인이 잘못된 발음함으로써 얻게 된 베트남의 가장 잘

알려진 고대 수도의 이름이다.

16세기이후 투안 호아는 전략적인 지리 때문에 매우 번창하여 왔다.

구엔(Nguyen)군주는 그들의 핵심지역으로 후에를 선택하였다.

구엔 안(Nguyen Anh)1802년에 베트남 수도를 건립하였고 이후 그는 테이 손(Tay Son)을 물리치고 지아 롱(Gia Long)이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오르게 된다.

지아 롱 왕(1762~1819)은 자신의 왕국의 거점으로서 건물과 요새화된 후에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구엔왕조의 계승자들은 지아 롱 왕을 이어받아 이곳 후에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구엔왕조는 13대에 걸쳐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의 수도로서 이곳 후에에 많은 것들을 이룩하였다.

유네스코는 1993년 후에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그 가치를 되새기고 보존을 지원하고 있다.

투아 티엔 후에는 길이127km, 60km70%정도를 산과 숲으로 이뤄진 지역으로 행정구역상 투아 티엔(Thua Thien)에 위치한

후에(Hue)는 베트남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하노이에서 660km, 사이공에서 1,080km 떨어져 있고, 베트남 최대 쌀 생산지인 붉은 빛을 띠는 델타강과 메콩 델타의 거점이

되고 있다. 강물은 후옹(Huong), (Bo), 트루오이(Truoi), 오라우(O Lau) 등을 지나 후에 경계선 동쪽방향으로 흐른다.

지리학적으로 투어 티엔 후에는 북쪽으로 쿠앙 트리(Quang Tri)의 경계이고, 남쪽으로 다낭(Da Nang), 서쪽으로 라오스 국경에

인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120km넘는 해변이 펼쳐져 있다.

투어 티엔 후에는 5,009의 자연지형으로 펼쳐져 있으며, 105만명의 인구(1997년 현재)가 전체의 1.5%내지는 1.4%지역에서

제각기 살고 있다. 후에는 아열대의 남쪽과 열대의 서쪽이 만나는 열대 계절풍의 영향을 받고 있다.

폭풍우와 허리케인이 동반되는 우기는 9월에 시작하여 11월까지 이어진다. 5월에서 8월 사이에는 건기이다.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후에는 남중국해 연안에서 약8㎞에 있으며 얕고 넓은 향()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남제국의 왕궁 다이노이가 있는데 후에[]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식민지시대에 프랑스인들은 강 오른편에 거주했으며 오늘날 이 도시의 동쪽에는 상업지구가 들어서 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년경에는 참족()이 지배하였다.

이후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중부 및 남부 베트남을 지배하던 구엔가()의 수도가 되었으며,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구엔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1883년부터는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가 패퇴하고 1940∼1945년 일본

점령하에 있었으며 1947년 4월에는 비공산계의 베트남 임시 행정위원회가 여기서 조직되기도 하였다.

1949년 7월 1일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이 수도를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으로 정하면서 예로부터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1946∼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초기에 피해를 입었고 1963년과 1965년 심각한 내란에 휘말렸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베트공의 공습으로 심한 피해를 당했다.

이때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도서관·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후 재건사업을 추진하고 일부가 복구되고 있다.

호찌민과 하노이를 연결하는 철도·도로변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종교·문화·상업의 중심지로, 정미·제재·섬유·시멘트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후에대학·후에제국행정대학이 있고 응우옌왕조의 무덤들이 부근에 있다.


베트남 문화의 중심지, 티엔 무 파고다(Tien Mu Pagoda)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문화의 중심지 중의 하나인 티엔 무 파고다는 가장 순수한 불교도의 수도생활을 대표한다.

파고다 건물은 높이 21m의 불탑으로 8각 모양의 7층으로 이루어졌다.

티엔무는 1600년대부터 종교의 중심이 되었지만, 1844년인 19세기에 들어서야 티에우 트리(Thieu Tri)왕에 의해 티엔무 파고다가

건축되었다.

건축 당시에는 각 층마다 금동불상을 안치해 놓았는데 지금은 도난당하고 없다.

파고다의 뒤편에는 수도승과 수녀들을 위한 건물이 있다.

전쟁 중에 이곳은 불교도들의 항거 중심지였다.

티엔무 파고다는 사이공에서 희생되었던 반체제 수도승 쿠앙 둑(Quang Duc)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훗날 그는 저항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티엔 무에서 정치시위를 제한하므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약해진 지금은 파고다의 제정지원을 위해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